[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재림을 비롯해 바닷속에 함께 들어갔던 다이버들이 하나 둘 물 위로 떠올랐다.
쌀쌀한 날씨에다 바람에 의한 너울성 파도로 여건이 좋지 않다는 선장의 신호 때문이었다. 곧 배 위에 올라온 다이버들의 손에는 각종 해양쓰레기들이 들려있었다.
살인무기나 다름없는 찢긴 폐그물, 바위틈 사이에 낀 철제구조물 등 대부분 선박에서 쓰던 녹슨 장비들이었다. 거기다 수중의 물고기만큼이나 많은 페트병, 플라스틱 등의 일상쓰레기는 미처 다 수거가 안 될 정도였다.
그렇게 배 한쪽에 모아놓은 쓰레기를 바라보던 재림이 자그마한 소망을 염원했다.
‘오늘 하루 이만큼의 오염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각되었기를…….’
오염 물질은 전염이 확산되기 전, 되도록 빠른 수거와 소각을 요한다. 전염을 방관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팬데믹은 오염되지 않은 모든 저항을 비웃기 때문이다.
“내 집 청소도 못했는데 주말에 남의 집 청소라니.”
쓴웃음을 짓는 재림에 모두가 공감한 듯 따라 웃었다.
사실 재림은 그리 홀가분하지 못했다. 배에 올라타기 전 석현이 전한 소식 때문이었다.
조승남. 결국 굴복해 버린 그의 멘탈에 재림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내몬 선동자이기에 재림은 그가 당연히 맹독을 품고 있을 거라 여겼다.
조승남은 누군가가 죽어가는 과정을 즐긴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단 한 번의 발길질에 무너졌다.
그 어린 나이의 김성호도 3개월을 버텼다. 때문에 재림은 조승남이 측은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빨리 굴복한 그가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조승남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솜털 같은 죗값이야 차치하더라도 신분이 공개된 이상, 세상의 비난은 면치 못할 테니.
때마침 머리 위로 날아가는 한 무리의 갈매기 떼에 고개를 젖힌 재림이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잔혹하게 살해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재림은 뚫어질 듯 하늘을 노려보며 저주받은 자신의 운명을 허락한 신을 원망했었다.
꽤나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분노하던 그때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할 만큼 15살의 소년은 진심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37살이 된 아직까지도 신과 대적하고 있는 그였으니까.
“재림 형! 보스와는 통화했어?”
조승남을 납치해 야산까지 끌고 갔던 25살 황태현이 다가와 재림에게 물었다.
“숙소 도착하면 하려고. 아마 아들 성호 방에 계실 거야.”
“소식 들어도 기뻐하시진 않겠지……?”
말끝을 흐리는 태현을 재림이 가만히 응시했다.
“왜, 너도 소식 들었을 때 그랬었어?”
물어오는 재림에 불현듯 숙연해진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의 모친은 20여 년간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며 홀로 두 남매를 키우고 계셨다.
그런데 어느 날, 4살 터울의 친언니가 그녀를 찾아왔다.
시세보다 무려 40%나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사탕을 안고.
홀로 가정을 이끄느라 월세와 전세를 전전했던 그녀에게는 정말이지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친언니 정보이니 더더욱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녀의 친언니는 넉살과 말주변이 좋았다. 적어도 일평생 떡볶이만 만들어온 순진한 동생에게는…….
그렇게 결국 태현의 모친은 일평생 모아둔 목돈을 친언니 손에 쥐어주었고 그날로 친언니는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진 이모의 행방을 묻는 태현에 이모 가족들은 엄마이자 아내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물론 경찰 신고도 했지만 작정하고 사기 친 후 행방을 감춘 이모를 당장 찾을 길은 없었다. 게다가 아무런 증거확보도 없이 모친 스스로 친언니에게 돈을 건넸기에 사기죄 성립도 불분명하다는 게 경찰 측 입장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태현의 어머니는 직접 언니를 찾아 돌아오겠다며 작은 쪽지 한 장만 남겨둔 채 집을 나갔고 그 후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지방의 한 폐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아사였다. 이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모든 게 끝났다고 여긴 태현이 절망에 빠져있을 무렵, 재림을 처음 만났다. 불현듯 다가와 그에게 손을 내민 재림은 1년이 지나 태현의 이모를 찾아냈다.
동생으로부터 거액을 가로챈 그녀는 사업에 실패한 아들 빚을 모두 갚아준 뒤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가족들과 꽤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재림은 소식을 듣고 경찰에 신고하려는 태현을 막아섰다.
“사기죄 성립도 어려운 데다 솜털 같은 형량으로는 의미가 없지. 태현이 네 어머니는 돌아가셨잖아.”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다.
태현의 이모는 어느새 중독에 빠져있었다. 도박이었다.
그녀를 도박장으로 끌어들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동생에게서 갈취해 간 돈을 수거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갖고 있던 현금을 모두 잃자 돈이 되는 물건을 팔아 도박장을 찾은 그녀는 두 배로 돈을 따자 이번에는 차량을 팔아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후, 태현 이모는 본인 명의로 된 아파트를 팔았다. 가족들은 그제야 그녀가 도박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결국 불법도박 혐의로 경찰에 넘겨진 이모는 수감되었고 태현은 모친이 잃었던 돈의 절반을 돌려받았다.
사건이 해결되었음에도 태현은 홀가분하지 않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 만큼 똑같이…… 아니 그 이상의 복수를 한다 해도 절대 채워 넣을 수 없는 게 있었다.
누군가의 빈자리였다.
재림이 가해자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건 그들이 상실한 죄책감이었다. 스스로 무슨 짓을 했는지, 타인에게 어떤 고통과 흉터를 남겼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망각된 뇌가 깨어나기를 바랐다.
그런 이유로 재림은 계획을 실행하기 전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그들에게는 죄를 깨달을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선택하지 않았다.
태현과 함께 당시 일을 떠올린 재림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마 보스도 너와 같은 마음일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 해. 우리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
중랑경찰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성 경사와 마주 앉은 수현은 잔뜩 굳어있었다.
자신을 낳아준 송미호의 실종을 두고 걱정을 해야 할지 아니면 담담해야 할지…… 수현은 감정을 선택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런 수현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 경사가 뜬금없이 한마디를 건넸다.
“뉴스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실종됐다는 보도가 나오면 대게는 잠깐이라도 염려하기 마련이죠.”
마치 수현의 속을 꿰뚫어 봤다는 듯 베테랑 형사가 조언하자 수현이 성 경사와 시선을 맞췄다.
“실종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오늘로 5일째입니다.”
형사의 답변에 수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결코 형식적인 염려는 아니었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수현의 한마디에 이제야 말이 통하겠다 싶었는지 성 경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7일 전, 송미호는 중랑구의 한 찜질방에서 밤을 보냈다고 했다. 수현이 건넨 돈으로 가급적 오래 버티기 위해 찜질방에서 머물기로 작정한 듯, 송미호는 다음날 일찍 생필품을 사들고 다시 찜질방을 찾았다고 했다.
성 경사가 수현에게 보여준 cctv 영상 속에는 꽤 들떠 보이는 송미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11시경, 누워있던 송미호가 갑자기 전화를 받더니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을 나가는 게 보였다. 영상의 마지막이었다.
“송미호가 찜질방을 나가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손님들은 소지품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수사가 시작됐고 개인사물함을 조사하다 송미호 씨 사물함에서 훔친 지갑과 핸드폰이 발견됐습니다.”
경청하는 수현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사기가 주특기지만 절도도 능수능란한, 늘 그렇게 살아왔던 여자였으니까.
“이게 마지막 목격 영상인가요?”
“아니요. 당시 찜질방을 나온 송미호 씨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평창동으로요.”
“네? 방금…… 뭐라고 하셨죠?”
수현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한 송미호가 평창동에 오는 건 자신에게 돈을 뜯어갈 때뿐이기 때문이었다.
“송미호 씨는 택시를 타고 평창동 그린우드 오피스텔 앞에서 내렸습니다.”
점점 수현의 두 눈이 커지는 가운데 경사가 말을 이었다.
“제가 왜 나수현 씨에게 전화드렸는지, 아시겠죠?”
“…….”
혼란스러운 수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린우드 오피스텔은 바로 그녀의 거주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뭔가 잘 풀리지 않는지 살짝 머리를 긁적인 성 경사가 경계의 눈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송미호 씨는 그 오피스텔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네?”
“택시에서 내린 송미호 씨는 뒤쪽 골목사이로 들어갔고 그 후 송미호 씨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
순간 수현의 머릿속에 빠르게 그림이 그려졌다.
오피스텔과 마주하고 있는 주택단지 사이에 비좁게 형성된 골목.
골목을 나가면 도로와 연결된 큰길가가 나왔다.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동네 주민들이 종종 이용하는 지름길이었다. 만약 송미호가 그 길로 나갔다면 분명 다른 차량에 올라탔을 터였다.
수현에게 시간을 준 성 경사가 짧은 헛기침과 함께 날카로운 눈빛으로 설명을 이었다.
“송미호 씨 폰은 밤 11시 42분경 끊겼습니다. 아마 누군가를 만난 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누군가가 저라고 생각하시는 눈빛이네요.”
직설적인 수현에 웃음을 보인 성 경사가 다시 물었다.
“그날, 송미호 씨를 만났습니까?”
순간 수현은 깨달았다.
자신이 송미호의 가족으로 불려 온 게 아니라 용의자로 앉아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