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한참 떠들썩했던 가인의 결혼소식을 일순간 잠재운 건 그로부터 5일이 지난 주말이었다.
수현의 연락을 받은 가인이 서둘러 tv 뉴스를 틀자 폴리스라인과 함께 과학수사대 및 경찰이 둘러싼 평창동 살인사건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때맞춰 소식을 전하는 중이었다.
내용인즉, 오늘 새벽 종로경찰서 서장 박영일이 자택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속보였다.
발견 당시 안방 안쪽 문 앞에는 그가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고 했다.
사력을 다해 문을 긁어댄 통에 서장 손톱에는 하얀 페인트와 긁힌 나무 조각이 다수 박혀있었으며 그의 목덜미에는 선명한 주삿바늘자국과 함께 적출된 안구 위로 오색 바느질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연쇄살인을 상징하는 낙인 ‘peace’ 또한 쇄골 아래 선명히 찍혀있었다고 기자는 전하고 있었다.
현장조사가 무색한…… 누구라도 알아볼 연쇄살인마의 짓이었다.
최초 목격자이자 신고자는 서장의 동거녀 김세현으로 그녀는 새벽 6시경, 따끈한 물을 준비해 안방 문을 두드리다 잠옷 차림으로 쓰러져 있는 서장을 문 틈 사이로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현장을 봉쇄한 경찰은 충격이 큰 김세현을 인근 병원으로 보낸 후 현장 감식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소파에 앉아 뉴스를 시청하던 가인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 한동안 잠잠했던 연쇄살인마의 살인행각이 다시 시작된 탓이었다. 게다가 서장은 연쇄살인마에게 납치된 후 살아 돌아온 유일한 목격자이자 비서 수현의 불륜남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어진 뉴스 속보는 곧 가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진술 도중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진 김세현이 2시간 후 병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소지하고 있던 커터칼로 손목을 그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전해졌다. 수액을 맞고 깨어난 뒤 두통기가 있어 좀 더 자고 싶다며 간호사에게 방해하지 말 것을 부탁한 게 김세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만 유서나 기타 심경이 담긴 메시지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기자는 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속보를 접한 가인은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김세현의 ‘선택’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인은 세현이 끔찍한 살인현장을 목격한 충격으로 죽음을 택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붙잡고 있던 유일한 끈, 박영일이 사망하자 조만간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을 거라는 짐작이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가인의 예상대로 세현은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셈이었다.
“안타깝지만 서장도 김세현도 수현이에게는 잘된 일이야.”
***
재림의 차량이 멈춘 곳은 풍납동 번화가를 한참 벗어난 오래된 상가 앞이었다.
3층으로 된 상가건물 외벽은 35년이란 세월의 풍파에 꺾여 금이 가거나 모서리가 부서져있었고 흰 벽은 겹겹이 쌓인 시커먼 먼지로 퇴색된 채 칙칙하게 변질되어 있었다.
“여기도 곧 재개발한답시고 들썩거리겠네.”
아직 옛것의 정취가 남아있는 거리를 바라본 재림이 곧, 1층 부동산과 세탁소 사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 반지하에 위치한 교회 문 앞에 섰다.
과거 재림이 다녔던 오한음 목사가 있는 교회였다. 재림은 자신의 결혼소식을 목사에게 직접 전하고자 금요일 오후 교회를 찾았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재림이 교회 안으로 발을 디뎠다.
“역시.”
지난 시절이 떠오른 재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낡은 외벽과 달리 깨끗한 내부와 잘 정돈된 의자, 눈에 익숙한 오래된 단상이 그를 반항기 가득했던 시절로 돌려보냈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때마침 안으로 들어선 오 목사가 2년여 만에 만난 재림을 보자 반갑게 다가왔다.
62세의 나이에 머리숱도 적어진 데다 그마저도 희끗희끗해진 장년의 목사는 손에 성경책이 아닌 세정제가 든 분무기와 걸레를 들고 있었다. 재림에게는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잘 지내셨어요?”
역시 반갑게 다가간 재림이 청소도구를 바닥에 내려놓은 오 목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새 굵직한 주름들이 얼굴 곳곳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인자한 기품에 천진난만한 목사의 눈웃음은 흡사 재림의 눈과 닮아있었다.
“나야 늘 똑같지. 근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좋은 소식이 있는데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좋은 소식 좋지! 아, 이럴게 아니라 방으로 가지.”
목사를 따라 목양실에 들어선 재림은 다수의 종교서적으로 둘러싸인 비좁은 공간 가운데 푹 꺼진 낡은 소파에 앉아 그간 나누지 못한 담소를 나누었다.
“이제 내 건강은 그쯤 확인하고 좋은 소식 갖고 왔다면서.”
“……내년 2월 4일, 저 결혼합니다.”
“결혼?”
적잖게 놀란 오 목사의 눈시울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눈에 반항기만 가득하던 녀석이 벌써 결혼을 한다고 찾아오니…… 이제야 세월이 실감 나는구먼.”
경사스러운 날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급히 손으로 눈물을 훔친 목사가 대견하다는 듯 재림을 바라봤다. 아직 예비신부가 누구인지 모르는 가운데 형성된 훈훈한 분위기였다.
“근데, 신부는 안 데려온 거야?”
“네.”
“아쉽네. 많이 이해하고 포용해 달라고 미리 얘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쉬움이 깃든 목사에 말을 아낀 재림이 곧장 화두를 돌렸다.
“근데 교회가 저 다닐 때 그대로네요. 요즘 사정은 좀 어떠세요?”
“전과 다를 게 있나.”
“그럼 여전히 힘드시겠어요.”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
‘축 개업’ 로고가 박힌 머그컵을 든 목사가 잔기침에 국화차로 목을 축였다. 일부 지워지긴 했지만 식당개업 홍보용으로 받은 사은품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소망이 있으시잖아요.”
“소망인지 욕심인지는 모를 일이지.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 이곳을 용이하게 드나들지 못하는 건 문턱을 낮추지 못한 내 죄이기도 하고.”
계단 없는 교회입구에서 교인을 맞이하는 건 목사의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월세 내기도 빠듯한 작은 교회에서 30여 년간 버티고 있는 것 또한 그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웅장한 인테리어에 첨단 설비를 갖춘 대형교회로 하나 둘 빠져나가는 교인들을 차마 잡을 수조차 없었으니까.
가끔 몰래 교회에 들러 헌금함에 돈을 넣고 가는 재림 덕에 목사는 그나마 월세를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근데 재림이 넌, 여전히 따지는 중이냐?”
물어오는 목사에 재림이 웃었다. 목사와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답이 없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
재림이 부친 손에 이끌려 처음 이곳에 온 건 이두원에서 공재림이 된, 16살 어느 봄 무렵이었다.
칼에 찔린 상처가 회복된 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재림은 폐쇄병동에 이어 절, 성당, 유명 목사가 있다는 교회, 기도원 등을 거치며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려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치유받지 못한 채 뛰쳐나왔다.
형사인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고 출소한 강도 전과자가 재림을 찌르고 모친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재림은 살인현장을 목격한 트라우마와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런 재림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아버지는 마음이 치유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데려가 아들이 나아지기만을 소망했다. 행여 재림이 또다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까 우려했던 거였다.
그만큼 15살의 재림은 위태로웠고 절망적이었으며 내일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데려가는 곳마다 되레 적개심만 가득 채우며 문제를 일으키자 부친은 결국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이후 병원진료도 거부한 채 한동안 집에 머무른 재림은 암막커튼을 친 깜깜한 방에 은둔하며 일절 입을 닫았고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이는 야윈 아들에 부친은 망연자실했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사정을 전해 들은 동네 어르신이 밑져야 본전이라며 부친에게 오한음 목사를 소개했고 부친 이철영은 재림을 교회로 데려가기 전, 목사를 만나 순탄치 못했던 아들의 16년 인생을 전했다.
이철영이 처음 그 아이를 만난 건 8년 전, 재림의 나이 8살 때였다.
당시 서울의 한 놀이동산에서 벌어진 유치원생 유괴살해사건을 수사 중이던 이철영은 아이와 공범들을 살해한 후 도주한 차진수를 찾지 못한 채 결국 사건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런데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유가족들이 이튿날 밤, 연탄가스누출로 인해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이철영은 급히 부산으로 내려갔다.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터라 안 그래도 한 번은 방문하려던 찰나, 일이 벌어진 거였다.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가족이 사망선고를 받은 직후였다. 그렇게 모두가 숙연한 가운데 놀랍게도 멈췄던 아이의 심장이 기적적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고 의료진들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물론 아이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채 실려 왔던 데다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 골든타임인 4분이 지났기에 행여 아이가 깨어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은 힘들 거라는 게 조심스러운 의료진의 견해였다.
그러나 이소원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 이두원의 보호자를 자청한 이철영은 포기하지 않았고 매일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아이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5일 후, 두원은 눈을 떴고 당시 아이가 없었던 이철영 부부는 긴 상의 끝에 9살이 된 두원을 입양했다. 그런 가운데 이철영은 일가족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처음 보도기사를 정정하지 않았다.
아이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