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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나 Sep 13. 2024

7년 차 교사가 묻다, 학교는 안전한 사회인가

아이를 지키는 마을

무뚝뚝하지만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구. "제가 깠어요." 조회 시간에 친구를 때렸다고 당당히 고백하면서도 지구에게는 종이학을 접어 선물하는 세진. 지구는 "기다릴게요."라는 세진의 문자를 보고 늦은 시각 공원으로 향한다. 거꾸로 태어났다는 세진에게 지구는 소주와 맥주라고 생각하라며 포카리스웨트와 콜라를 건넨다. 숫자로는 꿀리더라도 네가 앞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향해 나아가라고. 얼마 후 세진은 학교 옥상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친구는 없고 가족은 세진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거꾸로 태어난 사람은 거꾸로 가야 해요." 세진은 뛰어내린다. 세진을 말리려던 지구도 함께 떨어진다. 물론 땅바닥이 아니라 에어매트 위로. "사람 하나 구했어."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던 지구는 이내 "난 걔를 두 번 죽인 거야."라며 무너진다. 지구는 함께 옥상에서 뛰어내려서라도 세진을 구할 수 없었다.


tvN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의 에피소드이다. 직업병인지 언젠가부터 학교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등장하면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지 못하는 순간순간이 있다. 위태로운 학생이 기댈 곳은 왜 퇴근한 교사의 선심뿐인가. 학생은 꽤 오랫동안 최선의 날갯짓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렸는데 어른들은 왜 아이를 지키지 못했나. 교장선생님은 왜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다니! 말도 안 되지!" 학생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그런 부차적인 말을 외치는가 하면 119에 신고하는 방법도 모를까. 어디서부터가 풍자일까.


교사나 교사를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혹은 부모가 된다면 한 번쯤은 '나만의 교육 철학'이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모든 아이들은 챔피언이 필요하다." 나의 교육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40년 간 교사로 재직하며 테드 강연에 출연했던 리타 피어슨의 말이다.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 다만 나를 지지하는 어른의 존재. 그것이 있냐 없냐에 따라 아이가 고통을 이해하고 나아가는 방식은 판이하게 달라진다고. 나는 언젠가부터 생각해 왔다.


교단에 처음 섰을 때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선생님들이 너무나 친절하다는 거였다. 나의 학창 시절엔 교무실 문을 여는 일이 잘 없었다. 선생님이 부르면 상담을 받으러 가거나 필요한 유인물을 받으러 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 보니 아이들에게는 개학 첫날부터 교무실로 몰려오는 것이 당연한 것 같았다. "선생님, 클리어 파일 있으세요?"학생의 물음에 그런 건 미리 준비해와야 한다고 답변하려는 찰나 두 세분의 선생님들이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자리 서랍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 근무하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되었다. 필기본을 pdf 파일로 전부 올려준다거나. 가정통신문을 놓고 올 것이 분명하다며 조회를 들어가는 길에 10부씩 복사해서 간다거나. 고교학점제가 도입된 이후부터는 아이들의 수강 신청 내역을 일일이 확인해 졸업에 필요한 과목을 모두 맞게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 때로는 나의 업무상 편의를 위해, 또 때로는 아이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담임교사를 찾는 학교에서 타의에 의해 그렇게 했다. - "1년짜리 과목인데 지금 1학기만 신청하고 2학기는 다른 과목을 신청했네. 둘 중 어떤 과목 할 거야?"하고 물으면 "제가 두 과목 뭐 했는데요?"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이를 교무실로 불러 앉은자리에서 함께 수강신청을 고쳤다. "언어와 매체 할래 화법과 작문 할래?" 하는 식으로. 자신의 치열한 고민으로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보니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자신이 신청한 과목이 뭐였는지 쉽게 까먹곤 했고 그래서 교과서 배부나 학기 초 이동 수업이 시작될 때면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의 선택 과목 파일을 늘 가까이 두었다.


나의 새내기 시절을 돌아보면 첫 수강신청이 굉장히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저학년일수록 선택의 폭은 좁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양 과목에는 약간의 자유가 있었고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선택의 순간은 처음 경험하는 거였으니까. 동기들 5명과 카페에 모여 '이거 튕기면 곧바로 이거 누르자' 하는 플랜 B, C를 머리 모아 만들었다. 19살과 20살은 고작 1년, 생일에 따라 그 미만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 20살의 성인은 졸업하기 위한 모든 복잡한 요건을 스스로 갖출 수 있어야 하고 19살의 고등학생은 앞으로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만한 큰 결정 대부분을 부모나 학교나 학원의 어른에게 의지해 내린다. 자유로운 대학 시절을 만끽하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에 혼란을 느낀다는 졸업생들도 종종 찾아온다.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의 결정을 따라가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실패를 감당해야 한다면 얼마나 버거울까.


정답이 있다면 맞히는 것. 효율적인 길을 찾는  것. 한 번 할 일을 두 번 하지 않고 한 번에 끝내는 것.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런데 정답이 없는 문제라면. 돌고 돌아서라도 타인이 아닌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갈 기회가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실패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어른들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실패해 볼 안전한 환경과 실패해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학교는 모든 것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결국 어떤 것으로부터도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직에 6년 간 종사하며 세진과 같은 아이들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지구처럼 아이에게 연락이 와서, 혹은 내가 걱정이 되어서, 때로는 학부모님이나 상담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퇴근 후 개인 시간에 아이나 학부모님을 만나거나 연락한 일도 많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은 마음에 잠 못 이루고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라 간절하게 기도한 밤도 많다. 그럴 때마다 느낀 건 어쩌면 나는 챔피언이 아니라는 것. 학부모님들은 종종 "아이가 제 말은 잘 안 들으니까 선생님께서 좀 지도해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럼요. 제가 더 신경 써서 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하곤 하지만 30명 남짓한 학생들과 그보다 많은 학부모님들을 상대하며 수업 4시간, 조회와 종례 시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국한돼 아이들을 만나는 입장에서 한계를 분명히 느낀다. 아직도 상담을 권하면 "우리 애는 문제가 없어요."라고 발끈하는 학부모님들도 계시고 "잔소리는 제가 할게요.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니 집에서라도 편이 되어 주세요."라고 부탁해도 "애한테 좋은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라고 직접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말하는 학부모님도 계시다. 가정, 학교의 시스템과 관리자, 학교 전담 경찰이나 상담 센터 등의 지역 네트워크도 절차상의 복잡함으로 당장의 도움을 줄 수 없어 교사 개인이 하나의 안전망이 되려고 하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그러나 나의 오랜 교육 철학과는 다르게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함께 촘촘한 그물망이 되어주어야 한 아이를 지킬 수 있다.


세진이 추락하지 않고 날아오르는 상상을 해본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는 분위기. 서서히 마음을 여는 가족들. 마음이 아픈 날이면 상담 선생님을 만나 털어내는 비밀. 시간과 사유를 따지지 않고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소. 마음껏 시도해 보고 실패해 보고 다시 회복해 보는 시간. 인정해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학교. 그저 선생님이 좋아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과목. 그렇게 애정이 싹트며 생겨나는 친구들. 이런 사람이 되거나 저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


꿈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사실은 현실 가까이에 한 끗 차이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입시 과열의 학교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쏟으며 챔피언이 되려고 하는 선생님들께 응원을 보낸다. 그러나 개인 혼자서는 챔피언이 될 수 없다고. 때로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환경을 탓해 보라고. 그렇게라도 힘을 빼보라고. 더불어 힘 빠지는 소리도 요란하게 실어 보낸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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