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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나 Sep 20. 2024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고?

고등학교 영어 교사가 진짜로 하고 싶은 수업

교황님께서 단상에 올라와 뛰어다니는 아이를 그냥 두시고는 "이 아이는 자유롭습니다. 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고 하신 말씀이 몇 주째 마음속에 있다. 학생들이 마음껏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과 상식은 갖추었으면 좋겠는 욕심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왜 나는 강당 무대에서 열렬히 강연하시는 강사님 앞에서 엉망진창의 자세로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가장 괴로운 것일까.
2018년 12월 9일


성함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중학교 시절의 미술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껌을 종류별로 나눠주시면서 마음껏 씹으면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다른 시간에 혼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껌을 씹지 않았다. 자유와 즐거움은 미술 시간에 있었으니까.


교사가 되고 보니 학교에는 학생 때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많은 규칙들이 존재했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지만 튀거나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아서 나 역시 그 많은 규칙들을 꽤나 열심히 지켰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선을 지키고 이기적이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규칙을 준수하도록 지도했다. 굉장히 힘 빠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하면서. 


그러나 '이곳에는 정말 낭만도 없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수업 시간에 껌을 씹게 한다고 아이들이 껌을 그것이 예의가 아님을 배우지 못할까. 사실 한 번의 결정보다는 평시의 행실이 훨씬 중요하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유연하게 사고하며 굉장히 똑똑하기도 하다. 


그렇게 교사로서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무게를 재며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렸고 그에 대한 책임을 느꼈다. 일례로 나는 시간을 쪼개고 채우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라 아이들에게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라도 자서 수면을 보충해라!", "나중에 밤새서 할 생각하지 말고 자투리 시간에 복습해라!" 따위의, 가치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에 따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라는 잔소리를 많이 했다. 그런데 스스로 바쁜 학교에서 휴식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끼면서, 때로는 다 같이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며 소리치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엄마 미소로 관찰하며 깨닫기도 했다. 여유와 행복도, 아니 어쩌면 여유와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에게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들까지 아이들에게는 가르치고 싶다는 것을.


영어 교사로서 하는 수업에 대한 고민의 결도 이와 비슷했다. 아직도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에서는 '문법 번역식 교수법(Grammar Translation Method)'이 자주 쓰인다. 교사가 영어 문장의 구조를 설명하고 의미를 해석해 주는, 말은 못 하지만 독해는 기가 막히게 해내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방식의 수업이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나 고전 그리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등장했기 때문에 이 교수법을 사용하는 교실에서는 언어의 구조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동교과 선생님들과는 "이 문장은 무슨 구조인가요? A 구조로 봐야 하나요, B 구조로 봐야 하나요?" "C구조로 쓴 문장은 틀리게 채점해야겠죠?" "틀리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문법 규칙은 무엇일까요?"와 같은 대화를 자주 했다. 정답으로 존재하는 문법에 아이들의 언어를 끼워 맞추는 방식에 가까웠다.


대학원에서 '창발론(Emergentism)'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접하고 약간은 숨통이 트였던 기억이 난다. 창발론은 언어를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대두된다고 본다. 이해하고 이해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때문에 언어가 사용되는 과정에서 규칙과 패턴이 생기며, 이 체계는 굳어지는 대신 언어의 사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 '짜장면'이 '자장면'과 함께 복수 표기어로 인정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 언어의 구조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런 관점에 따르면 언어를 잘하는 전문가는 존재할 수 없다. 언어를 사용하는 참가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영어를 잘한다는 말, 또는 원어민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런 이상이 명확하기에 완벽한 문법을 먼저 갖춰야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우리 역시 오류를 범하지 않나. 발음이 틀릴 때도, 비슷한 단어를 잘못 말할 때도, 존재하지 않는 문법적 구조로 문장을 구성하기도 한다. 핵심은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결국 언어를 사용한 경험이 누적되어야 의미의 전달과 상호작용을 위해 필요한 규칙을 만들어나가고 조정할 수 있다.


인성 지도와 영여 교육이라는 서로 다른 길은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곤 했다.: 아이들에게 테니스 라켓을 잡아볼 기회도 주지 않고 유명한 테니스 선수의 자세를 이론적으로 분석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진짜로 해주고 싶은 건 뭘까? 나는 아이들 손에 테니스 라켓을 쥐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어디까지 칠 수 있을까. 기회를 주고 지켜보고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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