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별인이라고 알아?”
내 짝 영후가 두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모, 모르는데.”
가슴속이 따끔거렸다. 차라리 몰랐다면 지금처럼 입술이 바싹 마르지는 않았을 텐데.
“난 별인이가 좋아. 별인이보다 날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영후가 반달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발그레해진 영후 얼굴을 바라보았다. 산처럼 높은 콧대, 송충이같이 짙은 눈썹, 우유처럼 맑은 피부. 별인이도 영후를 좋아할 게 분명했다.
“너희 부모님은 뭐라 안 하셔?”
“응. 우리 엄마아빤 내 친구들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어. 매일 바쁘시니까.”
“…….”
마른 혓바닥이 입천장에 들러붙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엄마 아빤 별인이를 못마땅해한다. 내가 '별'자만 입밖에 꺼내도, 나쁜 애들한테 물든다며 언성을 높인다. 그냥 친구를 사귀는 것뿐인데 말이다.
신이 난 영후가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아이돌 그룹 댄스 영상이었다. 영상 속 사람이 팔을 꺾으면 영후도 팔을 꺾는 시늉을 했다. 골반을 돌리면 영후도 슬금슬금 골반을 따라 움직였다.
“나 이거 연습해서 별인이 보여줄 거야. 별인이도 좋아하겠지?”
영후가 들뜬 어깨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머릿속에 영후의 긴 팔과 다리가 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별인이가 하트 화살을 뿅뿅 날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몸치인 데다, 키도 작고 통통하다. 영후와 나란히 앉아있으면 오이와 호박이 따로 없다. 뭉툭한 내 손가락들이 자꾸 손바닥 안으로 숨으려 했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짱돌 같은 주먹을 점퍼 주머니 속에 애써 감추었다.
‘나도, 별인이를 좋아해.’
쉬는 시간이면 영후는 꼭 별인이를 찾았다. 그때마다 영후는 녹아내린 촛농처럼 헤벌쭉 웃었다. 별인이와 재밌는 얘기라도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반 아이들 사이에서 영후와 별인이는 벌써 공식 커플이 되어가는 듯했다. 별인이 근처에도 못 가본 나는 마음이 콩 볶는 것처럼 쓰라렸다. 좁다란 콧구멍에선 뜨거운 콧김이 푸, 새어 나왔다.
반장인 영후가 선생님을 도우러 잠시 교무실에 내려갔을 때였다. 별인이는 혼자 남아있었다. 엄마 말대로라면 별인이와 친한 영후는 성적 꼴등에 말썽쟁이여야 했다. 하지만 영후는 여전히 공부를 잘했고, 선생님도 인정하는 인기 반장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별인이를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별인이가 점점 궁금했다. 나도 영후처럼 친구가 되고 싶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안녕?”
인사 한마디 건넸을 뿐인데,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엄마 얼굴이 머릿속에 스쳤지만 금세 잊혔다.
의외로 별인이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학교에선 유령이나 다름없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며 말했다.
“안녕? 넌 김승호지? 네가 말 걸어주길 기다렸어.”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별인이가 날 기다리다니.
“나를?”
“응. 영후 짝이잖아. 너랑도 친해지고 싶었어. 내 친구의 친구면 누구든 다 좋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끌어내리느라 양볼이 욱신거렸다.
“나, 나도야! 나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샘솟았다. 영후처럼 잘생기고 똑똑하지 않아도 별인이랑 친해질 수 있는 거였다. 엄마 아빠 때문에 별인이를 멀리했던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영후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별인이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우리는 잘 맞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까르르 웃음꽃이 피었다. 별인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했다. 다른 애들은 잘 모르는 고전 게임기도, 희귀한 액체 괴물 영상도 별인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술 더 떠서 최신형 미니카 사진도 내게 보여주었다. 그건 얼마 전부터 나 혼자 관심 갖고 보던 장난감이었다. 별인이는 내 마음을 우리 엄마보다도 잘 알았다.
‘별인이는 날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영후가 아니라.’
교실로 돌아온 영후가 어김없이 별인이를 찾았다. 나와 별인이는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입술이 절로 씰룩거렸다. 영후에게 들킬까 일부러 턱을 괴고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별인이를 찾던 영후가 휴대폰을 열었다. 영후 얼굴에 얼떨떨한 미소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승호야! 이것 좀 봐!”
“왜?”
“별인이가 하트를 보냈어. 것도 50개나!”
영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50개?”
“응, 역시 별인이는 보는 눈이 있다니까.”
영후가 머리를 쓱 쓸어 넘기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나랑 비밀스럽게 대화하던 별인이였다. 믿어지지 않았다. 별인이가 잘못 보낸 게 아닐까? 그 하트는 내 거였어야 하는데. 영후가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날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별인이였다. 영후에게 가버린 하트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내 마음에 꽂혔다. 나는 별인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것들을 찾아 헤맸다. 처음엔 셀프 카메라로 틈틈이 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영후 얼굴보다 내 얼굴을 더 기억해 주길 바랐다. 밥 먹기 전엔 꼭 예쁘게 차려진 밥상 사진을 찍어두었다. 밥알이 차게 식어 굳더라도 먹음직스럽게 찍으려 안간힘을 썼다. 별인이가 좋아하는 메뉴가 있으면 하트를 보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사였던 신상 액체 괴물을 엄마 몰래 사 오기도 했다. 일주일 용돈이 이틀도 안 되어 바닥이 났지만 괜찮았다. 별인이에게 하트를 받을 수만 있다면 이 정도쯤은 참을 수 있었다.
하트를 50개나 받고도 반장 영후는 바빴다. 지난주에 걷었던 노트나 교구들을 받아오는 일이 잦았다. 나는 영후가 자리를 비우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별인이를 만날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승호야. 이거 한번 볼래?”
별인이는 내 관심을 끌만한 것들을 종종 준비해오곤 했다. 오늘은 내게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로 발견한 고전 게임 영상이거나 액체 괴물 영상인 게 분명했다. 별인이는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까.
“이건…… 영후잖아?”
“맞아. 영후가 이렇게 춤을 잘 추는지 몰랐어. 아주 깜짝 놀랐다니까?”
영상 속에는 관절을 꺾어가며 춤추는 영후가 있었다. 며칠 전 내게 자랑했던 그 춤이었다. 별인이 눈에서 하트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게 보여준 적 없는 눈빛이었다. 가슴속에 커다란 불덩이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용돈까지 털어가며 노력하는 나를, 영후가 자꾸 방해하는 거 같았다.
“그깟 춤이 뭐라고? 팔다리만 휘적거리다 끝나네, 뭐.”
마음에도 없는 말이 제멋대로 나왔다.
“승호 네가 영후보다 잘 춰?”
별인이가 넌지시 물었다.
“박영후보단 내가 훨씬 잘 추지! 얘는 얼굴만 허옇지, 비쩍 말라서 춤을 춰도 태가 안 나잖아. 이런 것도 자랑이라고, 참 별꼴이야.”
별인이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별인이가 말이 없었다. 갑자기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뒤통수가 뻐근해지더니 진하게 아려왔다.
“김승호. 그거 내 얘기냐?”
영후가 교구를 양손에 가득 든 채 나를 불같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영후와 함께 짐을 나누어 든 친구들도 나를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차가운 적막이 교실 안에 퍼져나갔다. 별인이는 내 옆에서 끝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영후는 별인이를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춤 연습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온종일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도 은근히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쟤야, 쟤.”
“맞아. 반장 욕한 애.”
“참, 그거 봤어? 김승호가 셀카 잔뜩 찍어놓은 거?”
“진짜? 어디서 봤는데?”
“별인……이랬나.”
“그리고 희한한 액체 괴물 사진도 죄다 모아놨더래.”
“으, 그거 찐득거리는 게 징그럽던데.”
숙덕거리는 소리가 모여 교실은 왁자지껄했다. 학교에 있는 내내 눈물이 나오려 했다.
휴대폰이 징, 울렸다.
별인이였다. 다른 말 없이 쓸쓸한 하트 하나를 보내왔다. 그토록 원했던 별인이의 하트.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눈이 벌게지도록 눈물을 참았다.
언제부턴가 학교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챙기는 시간이 되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시거나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영후가 벌써 선생님께 이르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나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며칠간 나를 본체만체하던 영후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
“그냥 그렇다고.”
“어어, 고마워……. 근데 왜?”
“내가 말하면 너 혼나잖아. 엄마한테 아주 많이.”
영후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분명 옅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건, 네가 바라던 거 아니야? 나는 네 흉도 봤고 또…….”
“너랑 비교당하기 싫었어. 내가 하트를 몇 개나 받던 우리 엄만 관심도 없어. 근데 넌 아니잖아. 하트랑 상관없이 너희 엄만 너를 혼내고 걱정해. 난 그게 싫어.”
“…….”
영후와 나 사이에 작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작은 별인이였다. 내가 영후 이목구비를 구석구석 보게 된 것도, 짤막한 내 팔다리가 싫어진 것도, 공부도 잘하는데 춤까지 잘 추는 영후가 미워진 것도.
“그래서 말인데.”
영후가 목을 한두 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같이 지울래? 별인 말이야.”
가슴속에 꽁꽁 얼어있던 무언가가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응, 그러자.”
우리는 서로에게 조그만 미소를 띄워 보냈다.
영후와 나는 휴대폰을 열었다. 자줏빛 어플이 배경화면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장식하고 있었다. 어플을 꾸욱, 길게 눌렀다. 별인이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메시지가 배경화면에 떴다.
[ '별인그램' 앱을 정말 지우시겠습니까? ]
우리는 망설임 없이 ‘예’를 눌렀다.
오래도록 박혀있던 가시를 뽑아낸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가시가 뽑혀나간 구멍은 그냥 비워두기로 했다. 영후와 나는 다르니까. 그리고 우리는 둘도 없는 짝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