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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청 Sep 26. 2024

부질없는 시간들

소모뿐인 대화



 음침한 스토킹으로 인한 아침 출근길의 날벼락 이후, 엄마는 이사를 고민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어렵게 대출을 받아 들어온 집이며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보탬이 되지 않는 나도 문제였지만, 겨우 자리잡은 회사에서 이직을 하기 힘들어 고민하던 엄마는 그저 이 파란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개월 시간이 지나 엄마에게 고모가 연락을 했다. 동네로 갈 테니 얘기 좀 하자고. 나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는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요청에 응했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리들을 듣고 내게 와 물었다. 아빠 보고 싶은 생각 없냐고,


 "고모가 뭐라는데요?"

 "니 아빠가 너 너무 보고 싶다고 운단다."

 "하! 이제 와서?"

 "그리고 아빠가 하도 괴롭혀서 힘들다더라. 죽겠대."


 아줌마를 정리한 게 아니라 본인이 정리를 당했는지 의지할 데가 없어 고모에게 죽자사자 매달린 모양이었다. 고모는 수시로 걸려오는 아빠의 연락에 노이로제가 생긴 상태였고, 그걸 또 엄마한테 와서 한탄을 하고 있었다. 집안 꼴 정말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껍데기뿐인 말에 엄마는 무엇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그 뒤로도 아빠를 보고 싶지 않냐며 이따금 묻고는 했다. 연 끊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해도 엄마는 천륜은 안 끊어진다고 말했다. 나는 고작 인간 사이의 연에 하늘 천자를 쓴다는 자체를 항상 우습게 생각했기에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늘의 인연이 이렇게 량한 거라면, 나는 얼마든지 저버릴 수 있었다.


 후에 이 집에서 나 혼자 살고 엄마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방법도 얘기했지만, 이건 엄마가 나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아님을 후에 알았다. 엄마가 만나던 버러지*와 다른 지역에 아파트까지 알아보고 계약금까지 넣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집에 온 서류를 보고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둘이 싸웠는지 계약은 파기됐지만. 여담이지만 엄마는 아직도 내가 그 서류를 봤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무튼 다시 고모 얘기로 돌아오자. 이렇게 찾아오기 전에 고모의 딸, 그러니까 내 사촌언니가 절연 선언 이후 내게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언니는 천성이 착하고 다정다감했다. 고모 부부가 싸워도 울면서 말릴지언정 피하지 않았고, 꾸준히 고모에게 잘했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엄마인 고모의 말을 잘 듣고 가족끼리의 분열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사촌언니는 미끼를 던지듯 어떻게 지내냐며 물었고 나는 이 부자연스러운 연락 뒤에 고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구를 던졌다. 고모 때문에 연락했냐고. 언니는 아니라고 했지만, 곧 내게 말했다. 'ㅁㅁ야. 너 이러면 안 돼.'


 자세한 내막도 모른 채 제 엄마의 채근에 나를 다그치는 인간의 태도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거기에 뭐라 더 대답을 했는지, 바로 차단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이후 사촌언니를 차단했다. 그랬더니 소통의 창구가 전부 없어져 고모가 또 아빠의 채근에 찾아온 것이었다. 묻지 않아도 뻔했다. 장남인 아버지 아래로는 둘째인 작은아버지와 셋째인 고모, 넷째인 막내 작은아버지가 있었지만 서울에 사는 둘째 작은아버지는 중풍 환자로 제 몸조차 건사하기 힘들었고, 막내 작은아버지는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 그렇게 소거법으로 제하고 남은 건 고모뿐이었으니 아빠는 최선을 다해 들볶았을 것이다. 곤란한 일은 남을 앞세워 뒤에서만 요란 떨기를 좋아하는 아빠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리 난리를 쳐도 엄마와 나에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엄마도 나도 더는 그 인간이랑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시 그 인간이랑 엮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고모와 엄마의 만남 뒤로 더는 친가쪽에서 접촉시도가 없었다. 엄마의 차단함에는 무언가 쌓여있겠지만, 번호를 아예 바꾼 내게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강박적으로 차단 메시지함을 수시로 보며 괴로워하던 자가 고문에서 벗어났고, 시간이 흘러 어느정도 마음이 안정된 나는 새로 취직을 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씀씀이가 크지 않았던 나는 평범한 삶의 궤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기복이 있기는 해도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던 일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고, 운동도 시작하며 내 심신을 돌봤다. 연차의 사용도 다른 직장보다 자유로웠기에 친구와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까지 시작되어 그 대단한 '천륜'은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나는 그토록 저주했던 굴곡 가득한 과거를 돌아보다 현재를 보고 이런 삶이라면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 도망가야 돼. 니 언니가 엄마 죽이러 온대."



 어느 날 새벽에 엄마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를 깨우는 일만 없었으면 그랬다.








*아직 회사에 다닐 때, 새벽퇴근하는 나를 보고 쫓아와 집에 가지 못하게 몸으로 막고 자기 집에 가서 쌀을 받아가라던 남자였다. 당시 잠든 엄마를 깨워 울며 이 사실을 얘기했지만, 엄마는 별 거 아닌 걸로 짜증나게 하지 말라며 내게 윽박질렀다. 이 사건 후에도 둘은 만남을 이어갔는데, 그놈이 암에 걸려 수술했다는 소식 이후로 얘기가 없는 걸 보니 엄마가 버린 것 같다. 참고로 둘은 그 버러지가 이혼하기 전부터 내연 관계로 만나던 사이였고, 그 댁 아내랑 아들이 집까지 와서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다.
물론 그 사건 뒤로도 둘은 계속 만났고 싸우기도 지겹게 싸워서 그새끼가 술을 퍼먹고 집까지 쫓아와 문 부수기 전에 열라고, 죽여버린다고 해댄 덕에 경찰이 온 적도 있었다. 엄마는 별 일 아니라며 경찰앞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체면치레를 해 내 원망을 샀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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