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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청 Oct 08.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야 하기에



 제 때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에 대한 지루한 변명부터 시작하자면, 나는 또 병이 도졌었다. 이름하야 '우리 엄마가 제일 불쌍해' 병이다. 엄마는 나를 죽고 싶게 만들 정도로 정서적으로 쓰레기같이 나를 대했지만 그녀의 삶은 기구했고 어쩌구저쩌구.


 나는 뭐에 홀린 양 그렇게 엄마의 일대기를 쭉 적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거기에 내가 기여한 게 있나? 그걸 내가 참작해줘야 하나? 단 두 마디짜리 내면의 날카로운 질문에 끝도 없이 길어지던 글은 깨끗이 지워졌다. 그리고 나는 태블릿의 덮개를 닫고 키보드를 껐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족과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는 그다지 건실하게 살지 않았기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취업난 속에서 이미 곯아터진 내 속만 파먹던 나는 이렇게 돈 떨어지는 것만 걱정하며 살다 죽기 싫다며 한도 끝까지 대출을 쥐어짜 내고 카드의 한도까지 돈을 쓰고 다녔다. 원하던 걸 갖는 짧은 순간의 쾌감과 당장 수입이 없어 갚을 수 없는 빚이 쌓인다는 두려움이 뒤섞여 나는 날로 늘어가는 카드 대금에 떨면서도 거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쇼핑중독에 빠졌던 것이리라. 그러다 운 좋게 취업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최악이었다. 애저녁에 적금은 바닥났으며, 월급으로도 감당되지 않는 카드빚에, 카드론의 높은 대출이자와 묵직한 원금이 나를 압박했다. 고작 최저시급을 겨우 웃도는 급여를 받는 나는 홀로 이 채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가족한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댈 수도 없었다.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을 차린 나는 눈이 벌게지도록 이 채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고,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나는 신청 당시 연체내역이 없었기에 신속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첫 대출에서 텀을 두고 또다시 대출을 받은 탓에 다시 신청하는데 두어 달이 더 걸렸지만, 다행히 채무조정 결정이 되었고, 상환 일정과 금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갚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금액이 결정되었기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군가는 신속채무조정에 들어가면 상환기간인 10년간 카드도 통장도 쓸 수 없기에 되도록 신청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성실상환 기간이 길어지면 카드 발급도 다시 받을 수 있고, 정지된 통장에 대해 거래 정지를 풀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다. 또한 성실상환자의 경우 심사를 거쳐 신용회복위원회의 소액대출(생활비 목적)도 받을 수 있었기에 나는 정확하지 않고 사람을 겁주는 거짓 정보에 현혹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었다. 지금도 이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렇게 큰 산 하나를 넘었으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같이 사는 엄마와의 분리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우려와는 달리 금방 해결이 되었다. 엄마가 보증금을 대주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이건 지방이기에 보증금이 높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어플이며 네이버 부동산을 들락거리며 매물을 비교하고, 50여 개의 매물 리스트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몇 곳을 추려 부동산에 연락을 돌렸고, 당일 방문이 가능한 곳을 돌았다.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대충 짐을 싸서 싸구려 호텔에 단기숙박을 잡은 참이었고, 아예 밖에 나와있을 때 모든 걸 해치우고 싶었다.


 첫 번째는 12평 원룸 오피스텔이었는데, 가관이었다. 중개사는 뒷짐을 지고 멀거니 내가 방을 둘러보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고, 집안 구석에는 곰팡이가 안 핀 곳이 없었다. 그나마 냉장고는 20평대 아파트에서 쓸만한 크기였지만, 주방은 턱없이 좁았다. 옵션으로 준다는 침대에는 현 세입자의 속옷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가스가 샐 것 같은 노후된 보일러와 오래된 집 특유의 냄새가 신경을 자극했다. 사람들이 거르라는 짭짤한 냄새. 벌레가 산다는 증거. 그것이었다. 거기에 나는 당시 태블릿에 체크리스트 이미지를 띄워놓고 필기를 해가며 방을 보고 있었는데, 가구 뒤에 어마어마한 곰팡이를 보고 별 표시를 하니 힐끗대던 중개사가 갑자기 말을 쏟아냈었다.


 "아니, 그건 집주인이 알고 있어요. 알고 있고, 여기 사시는 분이 여름에 지낼 때 낮에 없으니까 에어컨을 안 틀어서 찜솥이잖아. 그래서 관리가 안 됐어요. 들어오면 도배해 주죠."


 나는 그냥 웃어 보이고 도망치듯 오피스텔에서 빠져나왔다. 다른 매물도 있다며 연락을 돌리던 중개사는 전화가 되지 않자 집주인과 통화가 되면 연락 주겠다며 쏟아지기 시작한 비를 피해 후다닥 가버렸고, 나는 우산을 사러 빗속을 걸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지만 시작이 좋지 않아 신경이 곤두섰다. 근처 가게에서 우산을 사고 근방에 있는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다음 매물을 볼 시간을 기다리는데, 난데없이 두 번째 매물을 보기로 한 중개사에게 다른 매물도 괜찮겠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멀지 않은 곳이라 수락할까 고민했지만, 사진도 보지 않은 매물을 덥석 보러 가기는 싫었기에 거절하고 세 번째 보기로 한 작은 9평짜리 원룸 매물을 보았다. 시간을 앞당기려 전화를 거니 금방 만날 수 있다 해서 나는 지체 없이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두 번째 매물은 9평 원룸 빌라였다. 아파트 단지와 학교로 둘러싸여 있고 편의시설도 즐비해있어 입지 하나는 기가 막힌 곳이었다. 좁은 걸 감안하고라도 내부는 깨끗했고 벽지에도 자잘한 흔적 외에는 얼룩이나 곰팡이도 없었다. 샷시도 잘 되어있는지 보일러실에도 곰팡이 하나 없었고 화장실에는 창이 있었으며, 부엌도 깔끔했다. 그리고 중문이 있어 부엌과 방과의 분리도 가능했다. 이전에 공부방을 운영하다 나간 곳이라 벌레 꼬일 일 자체가 없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미 더 큰 매물을 보고 온 나에게 9평은 너무 비좁았다. 나는 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내 방에 있는 것들을 여기로 옮겨온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졌다. 붙박이장 하나 없는 곳에 잡동사니와 뒤엉켜사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중개사분은 정말 친절해서 따로 명함까지 받았지만, 여기는 1순위가 아니었다. 밝은 인상의 중개자분과 헤어지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매물 리스트를 보았지만 이미 오후 1시가 지났기에 차순위의 매물에 연락을 돌려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단 일을 마친 친구 혜와 점심약속이 있었기에 나는 버스를 타고 친구의 동네로 향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조금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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