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는 것보다야 낫겠지
‘또 월요일이야... 미치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진짜 오늘은 꼭 그만두겠다고 말해야지. 괜히 부스럭거리며 침대에서 어렵게 일어나 준비하는 출근길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퉁퉁 부은 눈에 어지러운 거실 한쪽 처박힌 손때 묻은 물감들과 붓통이 눈에 들어오니 단번에 더 우울해졌다. 대체 무슨 패기였는지, 졸업 후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면 물감을 먹겠다"라고 외치며, 끝내 패기 넘치게 집안의 기둥을 뿌리 뽑아 순수미술 학위와 맞바꿨다.
나름 학년 친구들에 비해 수상도 몇 번 했고, 전 학기 장학생이자 학년 대표로 졸업했으니 최선까진 아니어도 여차저차 전도유망하게 잘 졸업했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특히 졸업 후 환경에 떠밀려 학창 시절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안정성을 찾아 시작한 회사 생활은 정말 최악이었다. 도대체 네가 무슨 생각으로 앞뒤 계획도 없이 술이나 먹다가 졸업을 했냐고 과거의 나에게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너무 늦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며 가치 있다고 느꼈던 스스로의 장점은 회사에서 초라하게 빛을 바랐다. 마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삶이 이렇게나 괴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금요일에는 기분이 좋았다가 토요일 밤부터는 우울해지고, 월요일이 다가오는 일요일에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엄마에게는 걱정 말라고, 밥벌이 열심히 하고 미국에 정착해서 내 학비로 들어간 부모님의 땀과 눈물을 보람으로 보상해 드리겠다고 큰소리쳤었는데. 아침에 한국에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나마 들어야 겨우 힘을 내 출근할 수 있었던 그 시절, 더 이상 이렇게 불행하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쭈뼛거리는 손으로 사직서를 냈다. 턱 끝까지 차오르던 불안을 억누르며 용기를 내어 회사를 그만둔 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미국에서 산다는 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일이었고, 나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당장 찾아야 했다.
탁자에 앉아 종이에 적어본 나의 다음 직업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손재주 있는 내가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일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회사 생활을 피할 수 있는 일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일
비교적 자유롭고, 회사 생활 같은 인간관계없이 내 창의력과 재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일. 대체 뭐가 있나? 문득 평소 동경하던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잘 버는 사람은 꽤 잘 번다던데? 이미 영화에서 본 것처럼 약간은 위험한 느낌의 신비로운 타투이스트가 된 내 모습이 생생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거 정말 멋있잖아. 그리고 종이에 그리는 것과 사람에게 그리는 것이 뭐가 그렇게 다르겠어? (물론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이 주는 쿨함과 왠지 모를 자신감에 이끌려 주저 없이 타투이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때는 모든 게 쉬울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