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주위를 둘러쌓은 돌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쩌다 백 원이 생겼다. 백 원을 가진 기쁨이라니 잘 때도 놀 때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주머니가 터졌을까 불안해서 자꾸 손을 넣어 확인했고 심지어 입 안에 넣어 맛을 보기도 했다.
어느 날 동생과 함께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산소에 가서 놀았다. 네모나게 산담이 둘러져 있었다. 그 안에 서 있는 동자승이 서로 마주 보며 누군가의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쯤 되는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무덤과 비석들은 아이들에게는 노는 장소 이상 별 의미가 없었다. 인동초가 노랗게 필 무렵 종종 꿀을 따 먹으러 그곳에 다녔다.
동생과 산담 위를 달리며 놀다가 그만 나의 기쁨이자 내 존재의 일부 같았던 백 원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동전은 나의 키를 훌쩍 넘기며 하늘로 솟았다가 한 번 반짝거리고는 이내 직선을 그으며 하강했다. 그리고 묵직한 산담 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 안돼!”
얼마나 깊고 좁은 곳으로 떨어졌는지 동전의 쨍그랑 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내 비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충격에 빠질 새도 없이 돌 사이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았다. 다급하게 이리저리 손을 움직여 보았지만 백 년이 넘도록 아귀가 맞아 온 담은 꼼짝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워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랐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조차 화를 내지 못했다.
한참을 동전이 떨어진 돌 틈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언니, 아주 멀리 가버렸나 봐.”
“못 찾을 거야.”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파릇한 잔디에 덮여 있는 무덤이 을씨년스러웠다.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해가 조금씩 저물고 있었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알았다. 나의 백원은 분명 거기에 있지만 나는 다시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수십 년이 지난 후 아버지를 묻으러 산소에 갔다. 장례 절차를 거치고 타지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기에 눈물을 흘릴 새가 없었던 것 같다. 얼핏 어머니를 힘들게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만 떠올랐다. 분묘 의식인지 소리 내서 울어야 한다는 친척 어른의 말씀에도 슬픔이 일지 않아 가만히 고개만 숙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네모난 산담 안에 들어차 있을 때 문득 그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백 원이 생각났다. 묵직한 돌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버겁게 느껴졌다. 분명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있겠지.
“아이고, 아이고..”
기다랗게 파인 땅으로 아버지의 관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본격적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어머니가 울어서 나도 눈물이 났다. 언젠가 아버지를 위한 눈물도 흘리리라 마음먹었다. 인부들이 삽으로 관 위에 흙을 뿌렸다.
어느새 나의 아버지는, 미소 짓던, 흔들거리며 걷던, 나를 부르던 아버지는 완벽하게 묻혔다.
동생과 어머니를 부축하고 타고 왔던 봉고에 올랐다. 차창 밖 산담 안에는 붉은 흙으로 덮인 새 무덤이 오후의 진한 햇살을 받고 있었다. 차가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거기에 있지만 우리는 다시 그를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