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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산담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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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문희 Oct 22. 2024

아버지의 죽음 II



  아버지의 죽음은 잠시 어머니에게 비장한 생기를 안겨 주는 듯했지만 장례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버지가 항상 누워 계시던 그 자리를 차지한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나에게 물 한 잔 떠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술에 취해 성가시게 굴었던 아버지가 안 계신 게 어색했는지 몸을 뒤척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이제 아무 낙이 없다. 밭 일을 하면 무엇하냐. 마당을 쓸면 무엇하냐.”


  어이없어 코웃음이 나왔다. 평생 자식들 학비 한 번 벌어다 준 적 없이, 일하느라 밤낮으로 바쁜 어머니를 두고 그저 친구가 좋아서 술이 좋아서 밖으로 돌았다. 말년에는 집에서 어머니를 귀찮게 하면서도 정당한 남편 대접을 받고 싶어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우리 집의 부끄러움이자 짐이라며 우리들 앞에서 하소연하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실은 우리 몰래 아버지를 사랑했던가. 그동안 밭일하고 마당 쓰는 일조차 우리 아닌 아버지를 위한 일이었나. 이 생각에 미치자 화도 났다. 그래도 며칠간 장례를 치르고 온 어머니를 일단 침묵으로 위로했다. 어머니는 실로 오랜만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깊은 잠을 주무셨다.


  아버지가 죽어서 홀가분했다. 아버지의 고통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더 이상 아버지를 탓하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일 없어졌고 고향에 갈 때마다 아버지 때문에 조마조마하는 일없이 산뜻하게 머물다 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그 후 제주를 떠올릴 때마다 죽은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글씨가 예쁜 아버지, 운전면허에서 떨어진 아버지, 어머니를 웃겨 주시던 아버지, 캡모자를 쓴 아버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아버지.

아버지로서 사랑받지 못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이런 아버지도 있다고 내 옷깃을 붙잡고 있었다.


그 후 조금씩 아버지라는 우주를 탐색하는 일을 시작했다. 사라지고 나서야.

자식의 원죄는 이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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