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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월·문 코너) 과거에서 온 편지

40년 전의 편지를 오늘 받는 느낌이란 ― 지노

by 콘텐츠플러스

이 코너를 기획하게 된 것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2021년도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아카이브 수장고도 조금은 잠잠해졌고 박용길 편지 정리작업이 마무리되어 완성된 박스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여유가 좀 생겼다는 생각이 들자 미뤄두었던 아카이브 페이스북을 시작해 볼 마음이 생겼다.


빨간 참돔이 있는 편지 한 통을 뽑아들고 날짜를 몰라 따로 빼어 놓은 박용길의 ‘날짜 미상편지’ 중에 빨간 참돔이 들어있는 편지 한 통을 뽑아 페이스북 프로필사진으로 정하고 시범 삼아 시리즈물을 시작했었다. 40년 전 오늘 박용길이 쓴 편지 올리기였다. 형식은 단순했다 40년 전 오늘 쓴 편지를 제목, 날짜 그리고 과거의 오늘 #매일매일 보낸 편지 #박용길의 당신께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는 것이었다. 그때가 2021년 12월 21일이었으니 1981년 12월 21일 편지부터 매일 한 통씩의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인상적인 문장을 추가한 날도 있지만 편지 그 자체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연말 연시를 꽉 채우고 올리기를 마쳤다.


매일 40년 전 오늘 쓴 편지를 올리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하루 하루를 세어가며 따라가다 보니 같은 날짜라는 것만으로도 40년이라는 시간을 거스르는 듯했다. 곧 해가 바뀌어 편지 속 연도는 1982년으로 변했고 나는 2022년을 맞았다. 먼 듯 가깝게 느껴지는 과거의 편지를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나의 지금이 더 의미있게 느껴졌고 40년 전 꼬맹이였던 나를 떠올리니 똑같은 시간을 다르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이 경험을 나눠보고 싶었던 것 같다. 기록을 읽을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즌2 나의 코너 이름은 <과거에서 온 편지>로 짓고 그달에 쓴 편지 중 한 편을 골라서 소개하기로 했다.


복병은 너무도 많은 편지들이었다. 이 가득한 편지들 중에서 어떻게 한 통을 고를 것인가…. 처음엔 달마다 쓴 편지들을 전방위적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참에 박용길 편지를 좀 읽어볼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매달 작성한 편지 숫자는 일정하지는 않았는데 문익환의 감옥생활 기간이 그때그때 달랐기 때문이다. 언제 수감되었는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았다. 우선 내용 중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엿볼 수 있고 또 가족의 일상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 주목했다. 읽다 보니 문익환의 감옥과 관련된 특별한 사건이나 한국 근현대사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어느 시점이 지나자 내용의 줄거리가 특정 시기를 넘어 인생 전반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를테면 매월 3.1절은 그녀만의 특별한 날이었고 8월 17일은 장준하의 기일이었다. 10년 동안 2,400여 통을 썼으니 같은 날짜 편지가 여러 통 있었고 맥락이 통했다. 이런 기준 속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것을 뽑아 일상, 기념일, 감옥, 사건, 역사, 부부, 기술을 키워드로 총 열 편의 기사를 작성했다.


한 통의 편지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고받은 편지인 문익환 편지를 비롯해 연관된 기록들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 외에도 공공기록인 문익환의 수용기록부를 분석하는 것이 편지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수용기록부는 비공개 기록이라는 한계가 있어 이번 콘텐츠에서 제대로 소개할 수 없어 아쉬웠다.


못한 이야기들도 남아있다. 가장 기억나는 것으로 수유리 ‘백십자약국’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박용길 편지에는 문익환이 감옥에서 복용할 약을 알려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때 등장하는 곳이 백십자약국이다. 현재도 운영되고 있어 『월간 문익환』 팀이 출동했지만 점심시간(12시 30분-3시 30분)이 맞지 않아 만남은 아쉽게도 불발되고 말았다.


백십자편지.png 백십자약국의 처방을 전하는 박용길 편지(1989. 8. 2.) 일부와 약국에 출동했던 『월간 문익환』 팀.



글쓴이_지노
초대 늦봄 아카이브 아키비스트. 늦봄과 봄길 편지를 정리하며 기록 관리에 ‘마음’이 깃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때때로 잠이 안 올 때 늦봄 아카이브에서 편지를 찾아 읽는다.



● 아카이브에서 『월간 문익환』 2023년 5월호 <과거에서 온 편지> 기사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ArchiveCollectionView.do?con_id=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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