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어떻게 달면 좋겠어요? ― 백총
“백총 님! 제목을 어떻게 달면 좋겠어요?”
“예? 제목이요?”
“네, 제목이요.”
‘아! 제목이라….’
가벼운 탄식이 절로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 내겐 너무나 친숙했던 단어, ‘제목’.
언론사를 30년 다닌 내게, 특히나 편집자로 20여 년을 근무한 내게 ‘제목’이란 매일매일의 ‘머리 쓰는’ 노동이자 나의 직장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해 주는 단어였다. 퇴직 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제목’이란 녀석을, 아카이브 봉사 현장에서 전혀 예상치 않게 마주하게 되었다.
“예전에 관련 업무를 하신 것 같아서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사실 초기 봉사활동은 반복적이면서 지루한 것이었다. 라벨을 떼어서 봉투에 붙이고, 그걸 받은 옆사람이 사료를 봉투에 집어넣고, 그다음 사람은 라벨 번호를 기록하고…. 나름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컨베이어 벨트의 노동자 같은 단순 작업의 반복은 봉사자들을 쉬 지치게 했다.
당시 아카이브를 담당했던 지노가 이를 눈치채고 좀 더 효율적인 봉사업무를 고민했나 보다.
“제목을 어떻게 달아야 하는지 도움을 주셨으면 해요.”
아카이브를 담당하는 지노의 요청에 내 안 깊숙이 잠자고 있던 편집자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박용길의 편지를 전사하고 이를 목록화할 때 제목을 붙이는데, 이에 대한 통일성이 필요했다. 지노는 ‘제목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에 대한 토의를 제안했고, 내가 발제를 맡게 되었다.
내심 신이 났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재능이 쓰임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퇴직 후 잃어버린 자존감에 작은 불씨가 지펴지는 느낌이었다.
2021년 10월 21일. 수장고 3층 복도 공간에서 책상을 펼쳐놓고 제목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2시간의 열띤 토론 끝에 나름대로 제목의 원칙들을 정하고 이를 정리했다.
사료 제목에 관한 <제목 모범답안 찾기>. 첫 공동창작 콘텐츠였다. 아키비스트와 봉사자들의 컬래버로 만든 첫 결과물. (종이책 37페이지에 있는 자료 <제목 모범답안 찾기>가 그때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는 『월간 문익환』의 가능성을 서로에게 확인시켜 준 공동창작물이기도 했다.
나의 전력을 눈치챈 봉사자 커뮤니티 회장 홍산이 넌지시 제안하셨다.
“이참에 백총이 편집장을 맡으시죠.”
‘그래, 해보자.’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신문을 만들어본 나의 작은 재능이 뜻있게 쓰일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봉사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이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해봅시다. 매달 발행하는 거로, 그래서 아예 『월간 문익환』이란 이름으로요….”
글쓴이_백총
전직 편집기자. 조직의 장이 되길 한사코 거부하는 I형 인간이지만, 조판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편집장을 떠맡았다. “안 해도 된다”라며 편하게 해 주는 척 하지만 알고 보니 원고 떠맡기기의 고수다.
● 아카이브에서 <제목 모범답안 찾기> 콘텐츠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GroupView.do?con_group_id=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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