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콘텐츠가 있었다 ― 에바
대학원 3학기 때였다. 기록학 전공으로 지노가 담당하는 과목을 수강했는데 그때 기말 평가 과제가 ‘문익환 아카이브의 콘텐츠 만들기’였다. 지노는 당시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의 아키비스트였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와 시사상식에 관심을 두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문익환이라는 인물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문익환은 살아생전 다양한 경력을 가졌는데 그나마 ‘성서 독자’라는 실낱같은 공통점을 붙잡고 접근할 수 있는 주제가 『공동번역 성서』 번역이었다. 문익환이 속한 성서번역위원회의 원칙은 중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부분에 특히 반했다. 어린 백성을 가엾이 여겨 편안하게 하려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다정함에 반해 세종대왕에 입덕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달까. 그렇게 문익환의 언어에 호감을 느끼고 성서번역 원고, 신문 기사, 저널 등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콘텐츠 두 개를 과제로 제출했다.
실제 출간된 『공동번역 성서』(1976)에는 문익환의 명쾌하고 신선한 표현이 상당 부분 다듬어져 있었다. 원사료에서만 볼 수 있는 문익환의 언어를 이용자들이 발견하고 아카이브에 흥미를 느끼길 바랐다. 마침 일을 쉬고 있을 때여서 날이 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자료를 조사했고, 웹페이지 서식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그 콘텐츠는 지노 보기에 좋았다.
학기가 끝나고 지노에게서 내년부터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에서 일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코로나19 상황이라 화상면접을 보고 그렇게 2022년 2월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핫팩이 잔뜩 쌓인 수장고 회의 테이블에서 직원인 지노, 유 인턴과 봉사활동가 홍산, 백총, 만당, 코스모스하고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이 모임의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작년에 기록 정리 활동으로 문익환 기록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콘텐츠를 매개로 하여 뭔가 해본다는 내용이었다. 한 명씩 자기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어필하기도 하고 떠넘기기도 하면서 의욕이 드러나는 대화가 오갔다. ‘콘텐츠’라는 말을 하루에 그렇게 많이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다들 콘텐츠 전문가처럼 보였다. 한 분에게 조심스레 “무슨 일 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니 “뭐 하는 게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왜 나만 안 알려줌?’
나는 궁금한 것을 아주 잘 참고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이어서 ‘내 일은 아닌가 보다’ 지레짐작하고 오가는 이야기를 살짝 흘려듣고 있었다.
글쓴이_에바
중심보다 주변에 눈이 가 밖으로 도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 『월간 문익환』에서 <이웃 아카이브 탐방>과 <수장고 통신> 등을 썼다. 고치고 깨끗하게 하는 걸 좋아해서 문화재 보존 공부를 시작했다.
● 아카이브에서 <공동성서 번역> 사료설명서 읽기 #대학원과제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Webpage.do?page_id=270
● 문익환은 누구인가? https://namu.wiki/w/문익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77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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