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의 가치를 확인하니 새로운 목표가 싹텄다 ― 만당
행복하고 뿌듯한 마음이다. 지난 3년여 시간을 꼼꼼히 되짚어보니 그렇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협력하여 이뤄낸 걸 회고하는 기쁨이 작지 않다. 함께 뚜벅뚜벅 걸어왔고 한 단계씩 도약하는 과정 아니었을까?
첫 시작은 수강생 자격이었다. 2021년 COVID-19 1년을 지날 무렵 서울시 50 플러스센터 북부캠퍼스에서 두 차례 강좌를 개설했다. 첫 강좌는 ‘통일의집과 함께하는 디지털기록 전문가 양성 과정‘. 나는 ‘디지털기록’이라는 것에 꽂혔다. 내가 가진 자료들을 디지털 형태로 기록, 보관하는 데 도움을 얻어보겠다는 작은 기대를 가졌다.
‘양성 과정’에 이어 ‘활동 과정’까지 두 차례 강좌 참여를 통해 아카이브라는 분야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통일의집을 만났다. 호기심으로 참여한 두 차례의 강의가, 이때 만난 긍정에너지 가득한 사람들과의 모임이, 이후 2년 동안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게 될 줄 누 가 알았겠는가!
두 번째 수강 종료 후 6~7명이 커뮤니티(50+센터 내 소모임)를 결성했다. 아카이브에 관심 깊은 홍산의 주도적 역할 덕분이었다. 그가 회장, 나는 총무 역할을 떠맡았다. 커뮤니티 이름은 ‘50+아카이브 지원단’. 우린 아마추어니까 아카이브 전문 작업을 도와주는 그룹이란 의미였을 것이다.
우리 커뮤니티는 아카이브 전문 지식 습득과 개인 아카이브 구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8~9월에 걸쳐 학습과 토론, 온라인 세미나 참관 등을 진행했다. 회원들의 예상치 못한 열의에 놀랐다. 난 별다른 고민 없이 참여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카이브에 대한 소양이나 준비가 상당한 듯했다. 리더를 따라 먼 목표를 상상하며 진도를 좀 내봤지만, 사실 실행 가능성은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다섯 번째 모임에선, 각자 구상해 본 아카이브 아이디어에 대해 업계 리더로부터 코칭받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디어가 보다 더 선명해졌다. 1개월 동안,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고 머리를 맞댄 50대 퇴직자들이, 다소 무모한 듯한 발상을 하며 짧은 시간을 불태웠다는 생각이 든다.
9월 중순,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통일의집을 처음 방문했다. 여기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강의를 거쳐 모임 활동에 이른 길을 열어 준 통일의집에 대해 보답하자는 취지가 있었다. 그동안 배운 아카이빙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기회, 즉 현장 체험이라 여겼다. 개인별 아카이브 구축이란 목표를 향한 노력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던 상태였다.
봉사활동 내용은 통일의집 소장 자료를 아카이빙하는 작업이다. 봉사 장소는 강북 수유리의 한신대학교 내 수장고. 북한산 중턱 수유동이라 북한산 줄기와 인수봉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 풍광. 대여섯 개 건물의 단출한 캠퍼스지만 기품 있는 소나무와 염소 뛰노는 잔디밭이 멋진 곳. 일주일에 한 번, 대학 캠퍼스를 방문한다는 즐거움까지 누리는 봉사활동이었다.
활동 인원은 두 팀으로 나누어 화요일과 수요일에 수작업 노동을 수행했다. 사료 목록과 실물을 확인하고, 넘버링하고, 사료를 보존용 봉투에 넣는 등, 빠른 손놀림과 단짝과의 호흡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강도 높았지만(?), 사료 정리가 내 체질에 맞다 생각하며 즐겼다.
봉사활동 시작한 후 곧바로 흥분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문익환- 박용길(늦봄-봄길) 부부의 편지 사료들을 직접 만지고 대면한 것이다. 감옥 생활 기간 외에도 연애 시절, 미국 유학 시절, 전쟁 시기 등에 주고받은 무수한 편지들, 그 속에 담긴 삶. 사료 정리 중에 아주 잠깐이나마 편지를 읽어보면 마음이 찡했다. 봄길의 편지는 형태와 꾸밈에서부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쓴 표시가 역력한 100퍼센트 수제품 편지들이 즐비했다. 색색 가지 한지에 쓴 것, 나뭇잎 붙인 것, 의미 있는 그림이 인쇄된 종이의 여백을 활용한 것 등등.
재미있는 수작업 봉사활동은 한마디로 감동적인 사료와의 짜릿한 만남이었다. 통일의집 박물관과 수장고, 디지털 아카이브에 대한 경험을 통해, 공식 봉사활동 종료 후 우리 팀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찾게 되었다. 그것은 콘텐츠 생산, 늦봄 아카이브의 기록을 가공하여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주도한 홍산의 안목이 빛났다. 봉사 팀 원들이 가진 퇴직 전 경력은 콘텐츠 생산에 필요충분한 역량이라는 판단이었다.
콘텐츠! 이게 뇌리를 때렸다. 퇴직 전 광고 부문에서 일했던 나에게 최근 10년간은 콘텐츠가 최대의 화두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한 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콘텐츠란 것을 직접 다뤄볼 기회가 왔다는 기대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늦봄 아카이브를 책임진 아키비스트 지노 역시 우리 팀의 역량을 활용할 방도를 생각하고 있었다며 우리의 계획에 동의했다. 2021년 12월에 구상이 구체화하였고, 2022년 새해를 열며 봉사활동 인원과 늦봄 아카이브 담당자들이 공동 참여하는 ‘콘텐츠 제작팀’을 발족시키기에 이르렀다.
새해 1월은 들뜬 논의의 시간이었다. 통일의집에서도 우리의 생각을 적극 뒷받침해 주었다. 사료에 대한 접근권을 아낌없이 열어주었고, 제작 팀명도 정할 것을 조언했다. 활발한 논의로 일은 술술 풀려 나갔다. ‘아카이브 기반 콘텐츠 제작 그룹’이라는 정체성 위에, 팀명은 ‘콘텐츠플러스’라 이름 지었다.
팀원들 역량으로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텍스트 형태 콘텐츠부터 만들고 동영상 콘텐츠는 차후로 미루자, 1년 동안 해 보자, 인쇄물까지 발행하자, 제호는 『월간 문익환』으로 한다 등등, 준비 작업이 진행되었다.
2022년 1월 마침내 ‘콘텐츠플러스’는 닻을 올렸다. 2월에 1년 치 로드맵을 그려보았고, 3월 말 『월간 문익환』 1호를 선보였다.
글쓴이_만당
콘텐츠에 관심 많은 전직 광고인. 퇴직 후 자료의 디지털화 방법에 대해 궁리하다가 아카이브를 알게 되었고, 늦봄 아카이브에 빠져 자원봉사와 콘텐츠 제작에 열중이다.
● 아카이브에서 『월간 문익환』 기사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GroupView.do?con_group_id=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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