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
머리로는 이해해야 한다 말하지만 마음은 따르지 않는 역지사지의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느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이르기 힘든 경지인지를. 나 역시도 번아웃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을 보면 시도해 보기도 전에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아서 좋게 생각할 수 없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기억 속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 내 삶을 살아내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 패턴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해한다"라는 말 보다 "다 힘든데 왜 너만 그래"라는 공감의 벽으로 막혀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기보다 반사시키게 되었다. 그것이 강인한 정신력이라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더욱이 세상에는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하고 싶다고 생각되면 일단 해보는 것이 기본 마인드가 되었다. 시도해 보고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삼 세 번 정도는 해보겠다는 의지가 그렇게 습관처럼 심신에 물들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환경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비슷하거나 더 나아 보이는 사람들이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는 더욱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진정한 역지사지는 이제부터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전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경험하지 않고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일반 사람들보다 더 큰 마음이나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진정한 역지사지는 번아웃을 겪으면서 평생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 자기 비하, 인생무상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러한 감정을 경험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를 무능하다 결론 내린 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부정적 생각에 지배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무용함을 느끼거나 의지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체념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상태에 매몰되어 1년 이상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2년 이상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을 치면서 시시때때로 부정적 감정에 휩싸였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는 현실적인 성향인 나로서는 경험적으로 깨닫지 않는 한 더더욱 알아차리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전까지의 나는 과하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면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나의 친한 지인들을 둘러보니 100에 90은 나를 믿고 지지하고, 공감해 주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에게 혹시 나의 편협했던 생각과 말들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뒤늦게야 미안함과 걱정이 밀려온다.
이해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1일 1독을 통해 읽었던 책 중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에서 인지적 공감에 대해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이 연습을 통해 타인의 생각과 그가 느끼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라는 말이 깊게 다가왔다. 번아웃으로 인해 무기력감과 자신감 및 의지 저하, 비관적 생각, 우울감 등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상대가 얼마나 답답한 신발을 신고 있는지, 발이 옥죄어 힘든 상황인지, 짓물러 터지고 피가 나는 상황인지, 왜 뛰지 못하고 어기적 걸을 수밖에 없는지를 평생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어떻게 100%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혹여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도 개개인의 생각과 상황이 다르므로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언제고 처절하게 겪은 상황마저 미화하며 그 감정들을 눌러버리거나 무시해 버리고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시로 자신을 일깨워 주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며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혹은 섣부른 반감을 표하는 대신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 사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엇을 경험했기에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리고 과한 공감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많은 말이나 표현보다는 오히려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꼭 무슨 말을 해주고 싶다면 그저 담백하게 "그랬구나"라고 진심을 담은 눈빛과 목소리로 짧고 굵게 전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리고 과한 공감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많은 말이나 표현보다는 오히려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꼭 무슨 말을 해주고 싶다면 그저 담백하게 "그랬구나"라고 진심을 담은 눈빛과 목소리로 짧고 굵게 전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세상에 완전하거나 완성된 사람은 없다. 하물며 수십 년간 수양한 성직자나 성인들도 수시로 번뇌와 집착, 마음의 동요를 겪으며 성찰을 이어간다고 하니, 아직 수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미완의 상태일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사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므로 순간순간 나의 생각과 행동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역지사지의 마음을 익혀갈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은 <스스로 행복하라>에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인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감정을 교류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과정을 지나며 괜찮은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 내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며.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