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의 상황에 매몰되어 외부 상황에 대해 신경을 쓸 여력도 관심을 가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단순하게 소액의 월 정기 기부를 하는 것 외에는 없었지만 그 마저도 나부터 살겠다는 마음이 생기니 중단하게 되었다. 나 하나 눈 감고 귀 닫는다고 큰 일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번아웃 극복을 위해 매일 책을 읽으며 타인의 생각 속에서 나의 마음을 깨닫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읽으면서 지구상에서 풍요를 누리는 반대 방향에서는 삶과 죽음, 착취와 약탈의 피해에서 평생 고통받아야 한다는 것에 현실을 자각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기도 했었고, 그렇게 살아왔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꿈, 버킷리스트를 떠올리게 되었다.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으로 죄수들을 사형할 때 목을 맨 상태에서 교도관들이 양동이를 치워버리기 전에 죄수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죽기 직전에 소원을 들어주던 것에서 유래했다면, 그 소원이 더 절실한 것이어야 할 것만 같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떠올리며 노트에 적어 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려운 일,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어린 날의 꿈
어린 시절부터 감사하게 생각한 것들이 있었다. 건강한 신체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고, 고아원이나 어딘가에 버려지지 않고 할머니댁에 맡겨진 것에 감사했고,비를 피하고 부족하나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했다. 그때부터나보다 힘든 상황에서 살아내는 사람들을 더 연민하며 내가 제 몫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여 꼭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혼자만의 경쟁의식과 욕심 속에 파묻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린 시절의 생각들은 실천하지 못한 채 '나'라는 존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번아웃을 겪는 동안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더 큰 꿈이 사회와 사람들을 향해 있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향하는,방향성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후자의 경우라 해도 나쁜 것이 아니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낸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삶을 다시 살아보기로 한 후에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갔고, 이제부터라도 삶의 방향성재설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가?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고,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해질 수 있다.나를 무한 희생하면서 타인을 살리는 것은 나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평생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며,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가 있었다. 그러면서 어릴 적 소망하던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교육 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가정환경이 어려울수록 배움을 통해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기아와 경미한 질병으로도 사망하는 아이와 어른들이 있고, 가까운 우리나라에서도 가정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방황하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여 극단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그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평생 풀지 않은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기분일 것만 같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작은 날갯짓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웃에게 그리고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죽기 전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다시금 상기시키며 그 소망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한 발짝 내디뎌 보려고 한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