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유한할 것처럼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산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쳐가는 육체와 정신. 하루를 또 반복해야 하는 아침이 오면 그저 번개처럼 시간이 흘러서 휴식하는 저녁이 오기를 바란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이런 삶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찾고 싶어지게 한다.
나는 타인의 행동 결과물로 태어났으나 매일을 나의 생각과 선택으로 만들어왔다.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은 조금 더 성장하고, 오늘의 선택으로 내일은 조금 더 후회하게 되는 그런 나날들의 반복이 권태로울 때가 있어도 다들 그렇게 산다며 위안하며 습관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보내며 정신력은 메말라가고, 육체는 젊은 시절과 달리 하나씩 고장이 나서 수리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어디를 고쳐줘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육체적 정신적 통증은 쉽게 낫지 않고 더 나빠지는 것만 같다.
마치 총량의 법칙처럼 주어진 총량을 다하면 서서히 탈이 나기 시작하는 것일까. 강의를 많이 하다 보면 목소리 변형과 성대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운동을 많이 하다 보면 반복된 동작에 마모된 연골로 고통을 받고,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들다 보면 손가락과 뼈 관절에 변형이 와서 굵어지고 틀어지듯이 총량의 법칙에는 육체와 정신력도 포함인 걸까?
육체의 총량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취미로 운동을 했었고 유년기에 만들어 놓은 근력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도 잘 버틴 것 같다. 태권도, 검도, 유도, 합기도, 마라톤 등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일수록 근육통을 동반하는 쾌감이 좋아서 계속 운동을 하게 되는 묘미가 있다. 반면 요가나 핫요가, 필라테스 등을 해 봤지만 정적인 몸의 움직임은 나와 맞지 않는지 지루함을 느껴 오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육체는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여 무릎 관절이 닳아서 뛰는 것은 어려워졌고, 어깨 관절이 닳아서 운동화 솔질 3번에도 통증이 생기니 나에게 주어진 육체적 총량에 다다를수록 신호가 오는 것만 같다.
정신력으로 극복해 보겠다 마음을 먹어도 총량을 다 쓴 연골은 다시 살아나기가 불가능해 보였고, 그럴수록 세월을 한탄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자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생각의 전환과 현실 인지를 통해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없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는 있으니 지루하게 생각했던 정적인 운동들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명상을 하거나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세심한 동작을 해나가면서 땀을 흘리고 안 쓰던 부위의 근육 통증을 느끼면서 정적인 운동의 묘미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래. 육체의 총량은 동적인 것 플러스 정적인 것이니 어느 것이든 반대로 전환한다면 다시 총량은 넉넉한 상태에서 시작될 수 있다. 생각만 전환하면 삶의 활력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력의 총량
그렇다면 정신력의 총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열정을 다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그 마음이 변하는 것은 단순한 변심인 걸까, 총량을 다해서일까?
번아웃이 깊어질 즈음, 나에게 주어진 정신력의 총량을 모두 소진해 버려서 더 이상은 회생이 불가하다고 생각했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 그로 인해 더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보자면 이번 생은 끝일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러나 1년, 2년, 3년 끈질기게 번아웃에서 벗어 나오기 위한 노력들을 하면서 번아웃의 늪은 적당히 말라갔고 주변에는 작은 나뭇가지들이 뻗어져 잡고 나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쓸모없는 일은 없다.
아직 그 쓸모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번아웃을 계기로 정신력의 총량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정신력이 0을 넘어 마이너스까지 소진되더라 해도 어떠한 계기와 생각의 전환으로 재충전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정신력은 총량의 법칙에서 예외인 것이다.
오히려 총량을 다 소진하고 깊은 늪에 매몰되었다 다시 나온다면 더 강인하게 무장한 정신력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 성장에는 분명 정신력의 성장도 포함될 것이다.
어느 순간 정신과 육체의 고갈을 느끼게 된다면, 너무 실망하지 않기를.
육체적 고갈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해보고, 정신의 고갈은 바닥을 찍고 지하로 내려가더라 해도 삶을 붙잡고 있는 한 무조건 재충전될 것이다. 그러니 그 끈만 놓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