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설정한 마인드셋에 따라 삶의 방향을 맞춰 갈 수 있는 존재이지만 다양한 일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인드셋이 리셋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상황에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루이스 하우즈의 <그레이트 마인드셋>이었다.
'두려움은 인간의 디폴트 모드'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자기 계발 분야의 강연자 댄 밀먼(Dan Millman)은 청중에게 “실패를 두려워한 적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라는 말을 하면 언제나 80퍼센트 이상이 손을 들었다고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성공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들을 우리는 매 회 매 순간 이겨내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번아웃이 시작되기 전, 살면서 가장 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고 그것은 인생 최대의 위기로 다가왔다. 그 속에 매몰되어 버릴 때까지 그것이 위기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번아웃이라고 느꼈던 것보다 더 앞서경험했던 연속적인 패배자로서의 모습들, 경험이 반복될수록나는 그런 사람인 듯 살게 된 것 같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을 듣고 발표를 한다는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 호기롭게 유학 생활을 시작하며 HRM 대학원에 입학했고, 첫 학기 수업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눈치코치로 이해하는 척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만 주입했었다. 그렇게 첫 학기, 첫 팀 프레젠테이션이 있던 날 나는 준비한 스크립트를 며칠 동안 달달 외워서 학생과 교수님 앞에 섰다. 본업인 강의를 할 때도 떨거나 더듬는 경우가 없었기에 익숙한 상황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스크립트를 넘기며 발표를 마쳤고, 교수님은 발표를 편안하게 잘했다며 학생들에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도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만족스러운 점수를 주셨다.
미천한 영어 실력이라도 외우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학기에도 발표 프로젝트 수업들을 위주로 수강했고, 몇몇 학생들은 이전 수업에서 나의 발표를 보고 자신감 있는 태도가 좋았다며 함께 팀을 이뤄보자는 제안을 했다. 첫 학기에는 팀을 찾지 못해 혼자 멀뚱 거리다 중국인 학생들로 구성된 팀으로 들어가 중국어로 회의를 하는 통에 힘들었는데, 2학기에는 로컬과 유학생이 조화를 이룬 팀이라 더 나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자신한 탓이었을까. 가장 점수를 잘 받았던 발표에서 연속으로 실수를 하게 되면서 팀 구성원들에게 미안하면서 민망한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3학기가 되어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자 영어는 외우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마저도 해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학기를 최상의 기분에서 최악의 기분을 경험하게 되었고 마지막 학기를 남겨 두고 이번만은 잘해보자다짐했다.그러나 또 실수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다 보니 더욱 긴장을 하게 되면서 내용이 뒤섞여 버렸고, 파트를 나눠 함께 발표한 팀원들 덕분에 그나마 전체 발표는 무난하게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발표가 실패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고 그것이 직업에 대한 번아웃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미국 작가 로버트 그린은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실패를 피할지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불안이 두 가지로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우리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불안에 계속 발목을 붙잡히고 실패의 고통을 피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절대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둘째, 불안을 동기부여로 삼아 최선을 다함으로써 실패를 피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제대로 이용하기만 하면 끈기와 임기응변 능력을 길러주고 혁신의 연료가 된다.'
이 책이 몇 년 전에 나왔었더라면 나의 두려움은 감기처럼 지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의 내용처럼 실패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았다면 어땠을까. 어느 날은 견디기 힘든 강력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어느 날은 얕은 두려움으로 지나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뭐라고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나를 맞추려고 안달했었는지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숨기고 싶었던 혹은 외면하고 싶었던 번아웃의 이유를 찾게 되니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두려움 중 가장 큰 것은 나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뭐든 열심히 하고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는 부담을 안고스스로 의심하는 순간부터 그 안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시실 사람들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의례적으로 혹은 일회성으로 내놓은 말들에 붙잡히도록 내버려 둔 것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과거를 회상하며 번아웃의 원인과 나의 태도들을 되짚어보지 않았다면 10년, 20년 패배자의 마음으로 자기 비하를 일삼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설정한 마인드셋에 따라 삶의 방향을 맞춰 갈 수 있는 존재이지만 다양한 일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인드셋이 리셋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언제든 재점검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 책과 함께한다면 더 일찍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주기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경험하는데, 항상 즐거운 일만 있지도 슬픈 일만 있지도 않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먼저 살아 본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배우고 또 상기시키면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책의 힘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담 보따리를 피하기 위해 인간관계를 차단하기 시작했지만, 후유증으로 자괴감 보따리를 떠안고 말았다. 인간관계가 부담될수록 더욱 책을 가까이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또 강한 존재인지, 생각의 전환과 마음먹기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