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지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신분제도가 있는 세상에서 노비나 백정으로 태어났다면 과연 순응하고 살았을까?
양반으로 태어났다면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동등한 인간이라 존중하며 살았을까?"
보고 배울 수 있는 권리조차 제한된 세상에서 지금의 생각을 동일하게 갖고 태어난다면 저항을 하다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내 안의 순종적 본성과 진취적 본성이 충돌하여 그 시대에 적응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상의 끝은 항상 지금, 현대 사회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에는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나름 평등한 사회에서 노력을 통해 삶의 방향을 바꿔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불평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의 성장마인드에 기인한 당연한 순리일지도 모른다.
100년 전 근로 환경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일하기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산업환경도 달라져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집중된 일들이 많아졌다. 이에 대해 슈테판 아르스톨은 <이토록 멋진 휴식>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지식 근로자의 하루 8시간 근무는 산업 근로자의 하루 16시간 근무에 맞먹는다." 그럴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에 발맞춰 적응하고 응용하는 능력 또한 고도화되고 있다. 육체보다 머리를 쓰는 일에 익숙해지고 그에 맞는 창의성과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정신력을 고갈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육체는 보이는 것으로 충분히 상태를 가늠할 수 있지만, 정신은 곪아 터지기 전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지키기 위한 '자아성찰'이 더 중요하다. 나는 어떤 때 능률이 오르고, 여가 때 휴식이 필요하며, 어떻게 하면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 탐구하고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판 국제질병분류에 번아웃을 포함시키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에너지 고갈과 피로감, 직장이나 업무와 관련한 거부감과 부정적인 생각 및 냉소주의 증가, 업무 효율 감소.”를 번아웃의 세 가지 핵심 증상으로 제시했다.
번아웃에 대한 인식, 먹고사는 생사의 기로에서 육체노동을 주로 하며 살던 시대에는 번아웃이라는 말을
"배부른 소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육체가 힘들면 다음날의 노동을 위해 밤에 쓰러져 잠들기에 바쁘니
정신의 고통에 집중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를 많이 쓰면 고갈이나 후유증이 따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육체노동에도 후유증은 생길 수 있다.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하며 자주 사용하는 손이나 발, 해당 부위에 통증이 생기거나 외부 작용/기계 등에 의한 사고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지식 노동은 뇌 사용 시간과 양이 증가하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업무 과부하와 외부 반응으로 인해 번아웃처럼 다양한 후유증들이 생길 수 있다.
노동의 형태가 육체에서 정신으로 바뀐 시대.
과거에 없던 질병이 새로운 코드로 생성되고,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부각하는 시대.
우리는 지금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문명은 발달했고, 인간은 진화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람'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시대적 관점으로 정신력을 재단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현시대에 맞는 시선과 가이드가 필요하다.
번아웃 전문 정신분석학자 조시 코헨은 “내면의 자원을 소진했으나 그럼에도 계속 가야 한다는 강박적 신경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번아웃을 느낀다. 그 강박적 신경증이 바로 내면화된 프로테스탄트 근로 윤리다. 그리고 해독제는 바로 타임오프다."라고 말했다.
내면의 자원을 모두 소진한 느낌은 번아웃이 아니 더라 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순간 스스로 압박하며 자신에 대한 점검이나 관리 없이 계속 나아가길 재촉하다 보면 제풀에 나가떨어져 '번아웃'을 겪게 된다. 번아웃이 오기까지 수많은 신호가 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을 혹사시킨다면 번아웃을 극복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르게 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번아웃을 부정하며, 정신력에 의지하며 쓰러진 나를 끌고서 기어코 앞으로 나아가려다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내야 했다.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대화를 수시로 해야 한다.
"나는 지금 괜찮은지,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언제 휴식기가 필요한지, " 타인에게 물어보고 찾을 수 없는 답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그리고 타임오프를 통해 내가 잡을 수 있는 긍정적 기회를 기대하며 강박을 내려놓는 마음을 훈련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타임오프'가 필요한 시점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