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을 지나는 데 큰 기회가 되었던 서류평가위원 업무를 계기로 조금씩 일을 다시 하고 있다.
다시는 돌아갈 일 없을 것 같았던 일터로 조금씩 복귀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한데,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 또 번아웃의 늪에 다시 빠지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번아웃 경험자로서 그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과제이다. 서두르지 않으며 나의 속도에 맞는 방식으로.
김종원 작가의 <너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말>에서 요즘 나의 생각과 맞닿은 글을 찾았다.
나는 뭐든 목숨을 걸지 않아.
대신 일상을 걸고 하지.
목숨은 한 번만 걸 수 있지만
일상은 매일 걸 수 있잖아.
나는 매일 점점 더 꿈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어.
연말 연초에는 정규 채용 및 인턴 채용으로 인해 서류평가위원들도 바빠진다.
ㅇㅇ은행의 서류평가위원으로 참여하며 며칠 동안 출퇴근 하던 지하철 역에서 문득 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지하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진 기나긴 에스컬레이터가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지하철 역 안.
아침 출근 시간에는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사람들이 적은 쪽으로 가기 위한 눈치 싸움을 하는 것이 보인다. 시간 여유가 있었던 나는 조용히 출근 무리를 뒤따르며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우리에게는 에스컬레이터 우측에는 서서 가는 사람들 그리고 좌측에는 걷어 가는 사람들의 길이라는 통념이 있으니, 나는 우측에 섰다.
지하에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니 마치 미래 세계에 온 듯한 거리감과 삭막함이 느껴진다. 에스컬레이터에 좌측에서는 사람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주변을 살필 마음도 이유도 없이 오로지 발걸음에 눈길을 두거나 앞만 주시하며 무표정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우측에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에 맞춰 서서 가는 사람들이 있다. 흔들림 없이 에스컬레이터의 힘을 이용해 편안하게 올라간다. 그런데 양측 긴 에스컬레이터 사이로 가운데에서 검은 바둑알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계단을 걷는 사람들의 정수리였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사이의 높이 차이로 인해서 머리끝만 보였지만 분명 그들도 출구를 향해 걷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을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사이를 보며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
나는 어떤 방식을 선택하며 살았나 생각하게 됐다.
에스컬레이터의 속도 에너지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지에 편하게 도달할 수도 있고, 그 속도에 자신의 걸음까지 더해 더 빨리 도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묵묵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
때로는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음에도 타인의 속도와 방식에 조바심과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그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방식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든다. 어영부영 자신의 방향성을 잃은 채 휩쓸려 가다 보면, 빠른 시간 안에 출구에 도착하더라도 자신이 목표하던 출구가 아닐 수 있고, 빨리 가려는 사람들 틈에 치이며 적대감과 불쾌감으로 마음이 요동칠 수도 있다.
반면 자신의 선택으로 계단을 걷는 사람들은 속도에서는 뒤처질지 몰라도 체력과 의지는 더 높아질 수 있다. 기나긴 오르막 계단을 하체의 힘과 호흡을 맞춰 걷다 보면 매 순간 극기를 하는 것 같지만 매 순간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제는 저만큼에서 숨이 찼지만 오늘은 이 만큼을 더 왔군." 하며.
어떤 방식이든 선택에 따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능력보다 빠르게 가는 방법, 불안정하지만 모든 요건을 활용해서 더 빠르게 가는 방법, 그리고 자신의 역량을 키우며 꾸준히 가는 방법. 그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목적지를 잃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면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방식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