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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러뱅interrobang Oct 27. 2024

5. 런 라이크 헬

-살아있는 게 괴로워지는 나날들-

*본 글은 자살 및 우울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故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주인공 "가츠"는 말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딱히 낙원을 꿈꾸며 도망을 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여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바랄 뿐이죠.

하지만 그 도망치고 싶은 곳이

자신의 최소한의 생명 활동이 이뤄지는 삶 그 자체라면 어떨까요?




정말 극한으로 우울해지면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

 내가 처한 문제와 상실은 계속 진행 중이고

나는 여전히 그것에 대해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제로 주지하는 게 괴로워집니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세상의 시간이 흐르고 그 속에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이죠.

정신적인 위기에 몰린 사람이 죽음을 택하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매력적이고, 생각만 해도 즐겁고 기대되서가 아닙니다.

단지 생명이라는 직선도로의 반대편으로 향해가다 보니 죽음 밖에는 도착할 곳이 없는 것이지요.




잠깐이라도 세상과 시간이 냉동되거나 느려져서

마음이 정리되고, 고통이 식을 때까지

한숨 돌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란 무한이 전력이 공급되는, 절대 고장 나지 않는 러닝머신처럼

사람에게 계속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길 강제합니다.

산다는 게 숨이 차도 멈출 수 없는 달리기가 되어버린 셈이죠.

러닝 머신의 전원을 끌 수 없는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의 전원을 꺼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근거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지옥에 간다고 자살을 만류하지만

그런 얘기는 자살희망자들에게 유효한 조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이미 세상은 지옥이고, 삶은 천벌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들은 천국으로 가려고 하는 게 아닌

지옥보다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을 뿐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지 않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잘 살지 않더라도

덥지도 춥지도 않으며 언제나 따뜻하면서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그들은 그저 "삶"이라는 달리기 자체가 없는 곳이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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