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테러뱅interrobang Oct 06. 2024

2. 삶과 짐

-짊어진 게 없는 삶이란 게 존재할까?- 


당신의 삶이 아니라 당신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지난 주였을까요? 산책하다가 본 거리에 버려진 비닐봉지에 쓰인 문구입니다.

정확히 저렇게 쓰인 건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저랬습니다.

비닐봉지 하단에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로고가 있는 걸 

봐서는 아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귀라는 걸 추정할 수 있었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괴로울 때 짐이 아니라 삶을 내려놓게 되는 걸까요?

삶과 짐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자체가 힘든 사람도 있다고 나름 결론을 내렸습니다.

살아만 있어도 인생은 계속 흘러가지만, 짐을 지지 않는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그 짐이 스스로 짊어진 것이든, 다른 이가 얹어준 짐이든. 그 짐이 자신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다르게 말하자면 그 짐을 지지 않는 

자신의 삶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테면 평생 무언가를 업으로 삼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은 장인에게, 그 업이라는 것을 빼앗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가지고 있는 짐을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속세의 이름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한다거나, 혹은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스스로 퇴직하고 초야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경우 등.

그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그에 따라 새로운 짐을 짊어지게 됨은 당연한 일이고 

그 짐이 전에 짊어졌던 것보다 가볍거나 휴대가 편할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산다는 것은 어떤 짐이든 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죠.


짊이 너무 무겁다면 덜어내거나, 내려놓는 게 답이지만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짐이라면, 혹은 자신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 

생각을 바꿔서 삶으로 관점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삶을 잠시 내려놓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목숨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짐을 지기는 버거운 마음의 체력을 회복하거나 보충할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 역시 나름의 체력이 존재하니까요.

지금껏 짊어진 짐이었다면, 예전보다 컨디션이 나빠진건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짊어지기 무거운 짐이지만 반드시 끌어안고 가고 싶은 것이라면 근력을 기를 필요가 

있지요. 

그러므로 잠시 짐과 삶 모두를 캐비닛에 넣어두고 생존에 기본적인 것만을 챙기며 

마음의 체력을 회복하거나 증진시키는 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캐비닛"이라고 부를 만한 게 누구나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으나 

겨우겨우 일해야만 의식주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얻을 는 사람들에게 힐링이라는 것은 사치에 

불과한 데다가 여전히 정신건강을 이유로 휴식을 청하는 게 아직은 생소하고 부담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정신과적 질병을 이유로 휴직을 하고자 하면 반기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인 데다가

자영업자라면 그 공백기동안의 손실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짐을 짊어지고 길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라면 

그 과정에서 다들 한번 이상은 지치기 마련이고, 혹시나 길을 가는 도중 큰 위험과

마주하거나 사고를 당해 상처를 입는 일도 있을 겁니다

고속도로에 누구나 이용가능한 졸음 쉼터와 휴게소가 있듯

사람의 삶에도, 시동을 잠시 끄고, 깊은 잠에 빠지거나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요.

이미 우울증 환자나 자살률이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증가하는 이 사회에는

더더욱 그런 곳이 절실합니다.

이전 02화 1.  죽음을 설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