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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러뱅interrobang Oct 13. 2024

3. 망각의 반대 방향으로

-우울 속을 걸으며-


친구가 말하길. 자기는 괴로운 일을 잘 잊어버리는 게 장점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건망증이 심한 편이라 열쇠 같은 물건도 잘 잃어버리지만 싫은 기억은 걸핏하면 떠오릅니다

남들처럼 잠잘 때 이불속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도 말이죠.

망각은 과거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울한 감정을 자의와 상관없이 자주 떠올리게 되는 저로서는  

쉽게 망각한다는 점은 나름 부럽기도 합니다.

 어두운 과거를 쉽게 털어내고 새로운 나날을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되니까요.  

마치 새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새 종이를 펼치듯 말이죠. 


 우울이 밀려올 때 저는 어느샌가 망각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나 현재의 괴로움을 잊을 수 없다면 

차라리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히려 그것에 대해 질릴 정도로 생각해 보자는 심보로요.

어찌 보면 꽤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망각이 잘 되지않는 저에게 주어진 길은 일방통행뿐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요.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 어찌 보면 스스로를 속이는 듯한 느낌도 들어서

저 나름대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던 마음도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우울함을 마주 보고, 되새기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준비물이 하나 필요했습니다.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그것도 혼자만의 긴 시간이.

저는 주로 산책을 하며 그런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시간, 때로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에 우울함을 느끼는지, 우울함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절 우울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관점으로 보기도 하는 등 

   우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한껏 지친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 일을 반복해 보니 알게 된 것은 

 우울함의 형태가 끝이 막힌 동굴 같은 것이 아닌, 터널과 같다는 것었습니다.

분명 그 입구는 어두침침하지만 길을 따라 걸어보면 분명  

그 끝에는 빛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믿을 수 없겠지만 따스한 빛이. 

우울에 관해서 생각하다 보면 우울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현재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혹은 그런 방책을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2시간 동안 스스로의 내면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것에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그 만족감이 오랜 산책으로 인한 세로토닌의 분비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적어도 마음은 홀가분해지니 우울에 골몰하기 시작할 때보다 

심적인 여유는 생기는 거죠.


지금도 우울함을 느끼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그것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시간은 

무척 적어진 것 같습니다.

삶에 치여서, 체력이 약 해져서 같은 변명을 해보지만

사실은  다시 우울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서, 그리고  게을러져서라고 고백해봅니다.

우울감이 많이 차오른 지금

  다시 한번 그 터널로 발걸음을 옳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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