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게 아니고, 무서웠던 거야
“어, 캐리어 빌려줘.”
데이트 중, 포돌이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늘 그렇듯 별일 아닌 말투.
근데 나는 순간 멈칫했다.
“…응? 캐리어 왜?”
“어, 나 내일 베트남 가.”
“장난하지 마.”
“진짜야.”
“장난도 길어지면 화가 된다.”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도 무려 5박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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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정적.
그리고 곧바로, 감정이 터졌다.
“진짜? 장난해?
이게 뭐, 하루 이틀 만에 결정될 일이야?
그걸 지금 말한다고?“
(아… 쓰면서 또 열받네…)
그 순간 나는, 놀란 것도 아니고,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냥…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한참 전부터 정해졌을 일인데,
나는 왜 맨 마지막에야
듣는 사람이어야 했을까?
이건 단순히 기분 상한 일이 아니었다.
속였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바람이라도 피운 것처럼,
가슴이 벌컥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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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까 봐 말을 못 한 거지.
이렇게 난리 칠까 봐.
그리고 친구랑 여행 가는 건데
왜 허락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허락’이란 말은 싫어.
하지만 미리 말하는 건
배려고, 예의야.“
“말했으면 내가 못 가게 했을까?
그래, 좋아하진 않았을 거 같아.
그럼 설명하고, 이해시켰어야지.
그럼 결국 내가 포기했겠지.
그게 관계잖아.”
“자긴 그 과정이 귀찮았던 거야.
그래서 그냥, 날 뺀 거지.
그게 기만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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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포돌이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안 맞는 것 같아. 헤어지자.”
그 말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헤어지자’로
내 입을 막아버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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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난 지금 억울해서 못 헤어져.“
“내가 너한테 쏟아부은 시간, 감정, 노력…
그게 너무 억울해서 지금은 못 끝내.“
“끝내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잘못해 놓고, 그걸 덮으려고
헤어지자고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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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돌이는 갑자기 세차를 시작했고
나는 그사이 조용히 마음을 정리했다.
‘우린 정말 안 맞는 걸까?
아니면, 지금 내가 너무 오버한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세차가 끝나고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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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게 제일 쉬워.
서로 맞춰가려니 어려운 거지. “
“그래.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라면,
제일 비싸고 맛있는 거 사줘.
마지막은 성의 있게 보내줘야지.”
포돌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운전대를 잡고 말했다.
“아웃백 갈래?”
우린 또 웃음이 빵 터졌다.
“내가 애냐? 아웃백 가게?”
“…근데 나, 그런데 좋아하긴 하거든.
다 자기한테 맞추느라 안 간 거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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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금치 피자 맛집이란 곳에 갔고,
내가 그렇게 맛있게 잘 먹는 걸
처음 보았단다.
“신경이 쓰였으니까
말을 못한거야.
너가 싫어할 줄 알았으니까.“
“근데 난 친구들이랑
여행을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
그래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어.“
“그래, 그렇게 말해줬음 되었어.
잘 다녀와.”
먹는 내내
포돌이 눈빛, 손짓에
미안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 정도는 이제 느낄 수 있다.)
“근데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어?”
“했잖아.”
언제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굳이 따지고 싶진 않았다.
그날은 그냥,
그 정도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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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함께 공항으로 향했고,
포돌이는 나에게 차 키를 건넸다.
마누라랑 차는 빌려주는 거
아니라고 했던 사람인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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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돌이 차를 타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차 창 밖에도,
내 눈 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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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마더의 연애 꿀팁
경윤아,
회피형은 감정이 터지면
“헤어지자”부터 튀어나와.
정말 끝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감정에서 도망치고 싶은 거야.
헷갈리지 마.
네가 민감한 게 아니야.
그 사람이 피한 거야.
잘 말했고, 잘 마주했어.
너는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회피형에게 가장 필요한 건,
“화내도, 떠나지 않네?”
라는 안정감이야.
지금 너,
그걸 이미 잘 보여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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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누군가 물었다.
이 이야기…
창작이에요? 실화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재진행형 리얼리티 실화입니다.
현재 포돌이는 베트남에 있고요.
포돌이 없이 혼자 보내는
5박 6일.
조금 더 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전 왜 그렇게
미친듯이 화가 났던 걸까요.
그건 정말 포돌이 때문이었을까요?
다음 화에
계속 이야기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