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다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유난히 길었던 올해 추석연휴.
강릉으로 향했다.
원래는
포돌이는 본가에,
나는 그냥 바람 쐬기 위해
출발한 길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계획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포돌이와 함께할 땐 특히나…
아니, 애초에
계획 자체를 세우질 않는다.
“큰집으로 와라.”
포돌이 아버님의 한마디.
그 말 한 줄에
명절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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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은 북적였고,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강릉 사투리가 방 안을 메웠다.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들리던 말투였다.
그리웠다.
잊고 지냈던 북적거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
포돌이는 차례를 지내러 갔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포돌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지금 강릉 와있어.
남자친구네 본가야.”
“우리 딸, 남자친구 있었어?”
“응.”
“한과이모 집에 전화해 놓을게.
가서 가져가.”
외가에 들르자
제일 비싼 한과 세트를 챙겨주셨다.
머쓱하게 받아 들고 나와
포돌이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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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에서 윷놀이를 한다기에
다시 큰집으로 가려는데
포돌이가 묻는다.
“갈 거야?”
멈칫했다.
왜 저런 말을 하지?
싫다는 건가?
오해가 커지기 전에
얼른 설명하라 했더니
포돌이는 짜증을 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설명해야 해?”
어이없었다.
난 더 화가 났다.
“아니, 화장실은 설명 안 해도 돼.
근데 이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설명해야 해.“
“난 너 기다릴까 봐 밥도 안 먹고
서둘러 달려왔단 말이야.”
정적이 흘렀다.
포돌이가 말했다.
“햄버거 먹을래?”
그 와중에
난 “응.”이라고 대답했다.
웃기지만, 이게 우리다.
햄버거를 먹다가
내가 조심히 물었다.
“왜, 이러다 헤어질까 봐 그래?”
포돌이는 역시나 조용했다.
“난 안 헤어져.”
그 말에
포돌이는 어이없이 웃었다.
그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잠시 후,
그는 말없이 햄버거를 잘라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큰집으로 향했다.
윷놀이가 시작되고,
나는 그 틈에서 또 웃고 있었다.
낯선 공간 속에서도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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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돌아오는 길.
엄마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평생 “괜찮다”던 엄마가
이번엔 안 괜찮았다.
불길한 예감에
카드를 찾는데,
보이질 않았다.
그때,
자기 카드를 내미는 포돌이.
괜히 울컥했다.
‘내가 더 잘할게.’
속으로 다짐했다.
⸻
엄마는 결국
생애 첫 수혈을 받으셨다.
헤모글로빈 수치 5.
처음 듣는 숫자였다.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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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엄마는 무사했다.
혈색이 돌아왔고,
숨소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남자친구, 뭐 하는 사람이야?”
“경찰이야.”
“우리 경윤이 좋대?”
“응, 내가 좋아해.”
“사진 보여줄까?”
“선하게 생겼네.”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그냥 믿어주셨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다음엔 직접 소개드릴 수 있겠지.’
그렇게 엄마와 단둘이
응급실에서 추석을 보냈다.
⸻
포돌이네 집의 추석은
복작복작, 정 많고 따뜻했다.
우리 집의 추석은
조용했고, 긴박했고, 무서웠고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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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꼭 다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서툰 마음을
서툰 채로 받아주는 사람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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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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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 팁
경윤아,
회피형은 대답이 느린 게 아니라
생각이 긴 사람이야.
“갈 거야?” 그 한마디 뒤엔
“걱정돼.”가 숨어 있어.
햄버거 잘라주고,
카드 내밀고,
그냥 옆에 있는 사람.
그게 포돌이 나름의 다정이야.
말로 풀려하면 도망치고,
기대를 내밀면 숨는다.
그러니까,
말 대신 행동을 보고,
기대 대신 기준을 세워 봐.
그리고 잊지 마.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을 자격도 있다는 걸.
서운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다정함.
그 둘이 공존할 때
그게 진짜 사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