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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게 묻다 - 9장 : 절필〔絶筆〕

by 준서 Mar 24. 2025

  음울한 마지막 겨울의 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날. 쌀쌀하지만, 희망의 촛불이 꺼지기 직전, 마치 회광반조처럼 빛을 내던 12월이었다.     

  머리를 지배하는 단 한 가지 생각이자 감정, 그러니까 흑백감은 나약한 나를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희망을 잃고 흑백감에 찌든 인간의 모습이 어디까지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였다. 사실 인과관계가 바뀐 것 같기도 했다. 피폐해져 흑백감이 생긴 것일까, 흑백감에 찌들어 피폐해진 것일까. 무엇이든 다 괜찮았다. 머릿속에서 논쟁이 벌어질라치면, 어차피 끝인데 그리 오래 고민해서 무엇하겠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어둠이 사방에 내려앉은 후, 그나마 정신이 말짱할 때의 나는 한참 동안 내 인생을 회고했다. 서너 살 때에 엄마 손을 잡고 붐비는 어딘가의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기억, 또 몇 년 후에 이름 모를 어느 산의 야영장 옆 계곡에서 놀았던 기억…. 처음에는 시간 흐름의 순서대로 기억이 떠올랐지만, 언제부턴가 시계의 중추가 고장난 듯이 아주 먼 기억, 최근의 기억, 어중간한 그사이의 기억까지 몽땅 끌어내어 마구잡이로 내보이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 기억들도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조그만 구슬처럼 영원히 떠나보낼 테였다.          

· · · - - - · · ·          

  피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전에 정의한 피폐에 대한 개념이 문득 떠올랐다. ‘추악하지만 아름답다.’라…. 어찌하여 아름답다고 한 것일까? 도대체 피폐의 무엇이 아름다운 걸까. 한참을 사색하면서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적어도 이 상황은 낙관적이진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교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칠판과 부딪히는 분필 소리가 분명 교실을 울리고 있을 터였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실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이 환하게 퍼져 있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앞은 음침한 그림자투성이였다. 

  왜 그랬을까?

  어제부터, 일주일 전부터, 한 달 아니 어쩌면 일 년과 그 전부터. 마음속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다. 그 구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곧 나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희망이라고 불리던 감정인지 상태인지 단어인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그 정답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나는 펜을 잡고 공책 위에 무언가를 쓰려고 했다. 아마 칠판을 보고 필기를 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손끝은 심하게 떨렸고, 아주 오래전에 나를 괴롭혔던 수전증은 기어코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의식은 아득해져만 갔고, 그 몽롱한 의식 속에서 공책 위에 쓰인 건 그저 흐릿하고 구불구불한 연필 자국뿐이었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당장 교실, 친구 같은 현재하는 단어부터 행복,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 공책처럼 내 삶도, 내 미래도 텅 비게 될 것이었다. 공부에 대한 친구들과의 대화도, 선생님의 질문도 이제는 내게 어떠한 생각이나 감흥도 주지 못했다.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초침과 시침이 째깍거리는 그 순간들을, 다시 말해 하루하루를 버벅거리며 돌아가는 것은 없이 그저 흘려보내기만 할 뿐이었다.     

  희망.

  안개같이 불투명한 내 머릿속을 뚫고 이따금 그 단어가 떠오를 때면 가슴이 물에 담근 종이처럼 먹먹해졌다. 누군가 말하길, 희망은 사람을 살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졌을 때는? 죽는다는 말인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답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

  …희망을 잃은 인간은, 살아있는 시체와 다름없다. 

눈앞의 사물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또렷이 세상을 볼 수 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화려한 색채가 담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쩌면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울고 싶었던 것을 울고 있다고 착각한 것일까?

  이제는 더 이상 쏟아낼 눈물이 없었지만, 나는 내가 울고 싶은지 울고 있는지 울 건지 울었는지…. 혼탁한 기억 위에 떨어져 번진 눈물은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다시 눈을 떴다.

  눈물이 나지 않는 울음은 이렇게 괴로운 것이었구나.

아무도 없는 화장실로 향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아무래도 뇌가 단단히 망가진 것 같았다.     

  아니면, 너무나도 우울했기에 오버플로처럼 그 감정을 행복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뇌가 강제로 다이얼을 돌린 것은 아닐까.

  어찌 되었든 내가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거울을 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서있었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수척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환시였는지, 내 본모습이었는지는 끝까지 알지 못했다. 잠깐은 옆의 책상이나 의자 등 거울에 맺힌 상이 색채를 띠었지만, 그 순간에도 거울 반대편의 수척한 누군가는 흑백을 띄고 멈추어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빛이 바래 약간 누런 기가 있는 사진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이런 사람을 누가 좋아해 줄까.     

  점심시간이 되자 몇몇 친구들은 나를 불렀다.

  “야, 나연우. 축구하러 가자.” 민준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춥다. 오늘은 너희끼리 해.” 민준이는 잠시 날 빤히 쳐다보다가 그저 고개만 주억이고서는 교실을 나섰다. 정말 내가 그 모습이었던 걸까?     

  계단을 내려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쟤네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쩌면 너무나 나를 가식적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 걸까? 혹시 내가 사라져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매일 계단을 내려가지 않을까?’     

  또렷하고 행복해 보였던 어린 시절의 나는 날이 지나고 해가 거듭되어 갈수록 희미한 그림자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초라한 그림자.     

  이제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부서진 자존감과 내리막길로만 향하는, 언제 절벽이 나올지 모르는 삶뿐이었다.

  시험 결과도, 가족관계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물론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딘가에선 나보다 슬픈 이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그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만을 반복했다.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 머릿속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 질책은 수위가 점점 높아지며, 따가운 말에 이어 자기혐오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을까? 어쩌면 나도 노력했다면 현우 형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왜 이토록 무기력한 걸까. 내가 잘못된 것인가? 그런 질문을 되뇌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었고, 나는 불면의 밤에 이어 다시 어두운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다시 한번, 깊은 한숨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작은 흠도 없이 맑고 아름다운 가을날의 하늘이 높은 건물들 사이로 펼쳐져 있었지만, 그 하늘은 너무 멀어 닿을 수 없었다.

닿을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 걸지도 모른다.     

  내 말을 내가 부정하고, 그 말을 또다시 부정하는 것을 반복하며 나는 내가 아니게 되었다. 나인가? 아니 내가 나이긴 한 건가? 내가 나인지 내가 나인지 나가 내인지 누가 나인지 내가 누구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때가 오면 나는 그저 창밖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멈춰있는 것 같으면서도 분주한 그 풍경은 잠시나마 내 머릿속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초점을 가까이 맞추니, 책상 위에 놓인 공책 한 귀퉁이에 작은 은방울꽃이 그려져 있었다.

…기말고사 전에 김시은이 내게 그려준 것이었다.

  ‘나연우, 시험 잘 봐라!’

  ‘아, 어.’

그때 ‘응, 고마워. 너도 시험 잘 봐.’라고 답할 걸 그랬나 보다. 뒤늦은 후회와 함께 이제는 통한의 감정이 사무치고 있었다.     

  틀림없이 행복해질 거야.

그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허무하게 들렸는지. 행복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희망을 잃은 인간이 어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쩌면 이런 삶을 누구에게 물려주고 훌쩍 하늘로 떠나버리면 어떨까, 했다.

가능하다면 바로 하고 싶었다.

부서진 희망과 함께 내 인생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전해주지도 않고 내가 떠안고서 떨어지든지 매든지 찌르든지 해서 떠나버리는 것이다.

  괜찮은데?     

  내 멍청한 계획을 스스로 괜찮다고 평가하고 포장하며 안일하고도 음울한 생각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희망을 잃었을 때 또 다른 새 희망을 찾으라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내게는 사치였다. 나는 이미 잃어버린 것, 혹은 그와 비슷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그저 잊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희망이라는 감정, 상태, 단어의 존재를 내 기억과 내 세상에서 통째로 지우려고 애쓰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다고.

  내 목 위에 있는 건 어쩌면 장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이제 내게는 흑백 사진처럼 보일 뿐이었다. 틀림없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은 가식적인 말로, 한편으로는 나를 비웃는 듯한 말로 여겨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데 어떻게 그 문장에 감동하겠는가.

  유감스럽게도, 내 무채색 기억 속에서 거의 지워진 희망은 이제 가식적이고 유명무실한, 아니 이름조차 희미한 감정 혹은 어떠한 것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깨지며 ‘희망을 잃은 인간의 모습’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공책을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책상 위에는 비록 덮어져 있지만,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그 작은 은방울꽃의 그림이 남아있었다. 남아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우지만 않았다면….     

  행복이라는 게 뭘까.

학교가 끝나고 학원, 학원이 끝나고 어두컴컴하고 쌀쌀한 그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와 숙제하며 허송세월하는 와중에 생각의 끈을 만들어 이어나갔다.     

  행복, 희망. 그 무엇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고 희망에게 물은들 행복에게 물은들 답을 받을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내면의 우울, 그 바다는 투명한 거울처럼 내 모습을 반사했다. 정말 초라하고 혐오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이제 깊게 숨겨진 내 마음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내 원고를 보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글을 써볼까?

적어도 무언가를 남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버린다면 차도에 떨어진 민들레 씨앗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내 마음이 전하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일찍 들어볼 걸 후회하면서도, 세상을 향한 사무치는 원망이라는 감정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갔기에 나는 한층 더 우울해지고 난폭해졌다.

이제 나는 스스로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자신도 통제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도 상상하지 못할 무슨 짓을 벌이기 전에 글을 쓰기로 했다.

‘나의 희망에게’. 그동안 써오던 일기를 조금씩 고쳐 세상 그리고 밝히지 못한 원고를 보는 이들에게 전하는 하나의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다. 

  생기 없고 음침하던 얼굴은 목표를 찾자, 아주 미약하게나마 생명력을 되찾게 되었다. 다만 그것이 회광반조였다는 것은 죽기 직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밤낮 가릴 것 없이 글을 고쳐 썼다. 숙제나 공부 따위는, 어차피 내 앞날…, 어쨌든 쓸 데도, 필요도 없었기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는 몇 번의 퇴고 작업을 거쳐 끝내 완성되고 말았다. 오로지 내 이야기였다.      

  마지막 유서 부분을 쓰고 나면, 언제 죽을지만 고민하면 되었다.          



    

  이제는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무언가 더 짙어진 흑백감이 머리를 지배해 공부고 나발이고, 심지어 그 끝매듭을 짓기 직전의 글도 쓰기 어려웠다.

왜 죽어버리고 싶을까? 스스로에게 물었고 답은 쉴 새 없이 쏟아져나왔다.     

  우선 내가 싫었다.

너무나도 한심하고 무책임하며, 심지어는 그렇지 않은 걸 잘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가 표독해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불안과 스트레스.

공부, 잔소리. 또 공부, 또 잔소리. 또 또 공부, 또 또 잔소리.

  조언은 좋았다. 다만 내게 도움이 되지 않고 마음을 지칠 정도로 찌르기만 하는, 지속되는 잔소리가 싫을 뿐이었다. 내게 꿈을 펼칠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아, 미래가 더더욱 불안했다.

  성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나를 어두운 마음, 그 속에서도 심층부에 잡아두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내겐 고문과도 다름없었다.     

  어쩌면 현우 형이나 박지민 같은 애도 이유에 있을지도 몰랐다. 사교육? 아니면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두뇌? 인기? 사교성?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경은 곧 열등감으로 변질되었고, 열등감은 자기혐오로 바뀌어 흑백감은 스스로를 날붙이 따위로 찌르고 긋게 했다. 그때는 흑백감이 가시어 잠시 평안을 되찾은 것 같아도, 혹여나 누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볼까 전전긍긍하게 했다.     

  그다음으로는 세상을 향한 원망도 있을 터였다.

왜 주위에는 내 편이 없는 걸까. 왜 내 꿈을 밟고서는 자기네들의 이상만 강요하는 걸까. 은연중에 나는 그런 불만을 표현했지만, 엄마나 다른 사람이나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원망했다.     

  …아니면.

어쩌면 엄마 말이 맞았을 수도 있겠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놈이 사회에 나가서 뭘 잘할 수 있겠어, 그래.

  압박감 속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할 뿐이었다. 잠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맞나,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건 나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 소리를 무시했다.

  분명 누군가는 별것도 아니니 버티라고, 지금만 견뎌내면 된다고 하겠지만 내 눈앞에 자살이라는 출구이자 한심하고 나약한, 또 어두운 도피처가 아른거리는 상황에 내 기준으론 이제 잡스러운 말이 어딜 귓속으로 들어오겠는가.     

  …난 왜 항상 이 모양이었을까?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힘내’라는 뻔한 위로 따위는 내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왜냐, 안 괜찮아지리라는 것도, 여기서 더 힘을 낼 수 없다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누가 뻔한 위로를 해도 그게 도움과 위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거센 폭풍같이 몰아치는 생각을 서서히 진정시키고 정리했다.     

  내 삶에는 무엇이 필요했던 걸까?     

  타인의 가식적인 위로? 화목해 보이거나 실제로 그런 가족? 감사하는 마음? 아니면 행복? 근심·걱정 덜한 낙관적인 마음?

  무엇도 답이 될 수 있었고, 어쩌면 무엇도 아닐 수도 있었다.

  인생에서 그 무엇이 결여되더라도 별로 상관없다 느껴질 때, 그때야 비로소 허무만이 빈 마음을, 그것도 아주 가득 채우는 것이다.          



       

  비가 한 차례 쏟아져 내린 뒤의 추적추적한 아스팔트 골목길을 걷는 느낌의 내 마음은 울적한 감정을 우울로 조용히 변환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힘든 사람보다 힘들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힘들다는 것을 누구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다리나 팔을 잃은 사람보다 내가 더 아플까? 

가족을 잃은 사람보다 내가 더 고통스러울까? 더 우울하고 하루하루가 살아가기 힘들까?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이기적이면서도 옳다면 옳은 생각으로 바뀌었다.

  고통과 우울함에 어떻게 우열을 가릴 수가 있을까?

  감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계량할 수 있을까?

  과연 우울함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게 있을까? …그저 다른 사람보다 덜하리라 생각하며 꾹 참아야 할까?     

  허무하면서도 공허한 생각과 함께 집에 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넓은지 좁은지 가늠하기 어려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는 한없이 넓어만 보였던 내 방이, 생각보다 좁아진 것 같았다. 아직 나는 내가 성장해 간다고 느끼지를 못하는데. 쓸데없이 몸만 커진 것 같았다.     

  인생에도 답지가 있으면 좋을 텐데. 가끔 문제가 영 풀리지 않을 때 살짝씩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답지 말이다.

  곧 나는 생각을 돌렸다.

  …첫눈이 내리는 날. 괜찮지 않은가? 별로 낭만적으로 보일 일은 아니지만 꽤 낭만적이잖아.

  아끼는 물건들도 다 줘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팔아버리긴 좀 그렇고.

  이게 맞는 길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 ‘사필귀정’은 일어나지 않는가보다.     

  왜 죽고 싶은 걸까.

  …이유는 대라면 손가락 발가락 다 합해도 부족하겠지.

  내 정신이 약해서 그런 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래도 이 세상은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잘못된 것이었다.           



         

  - …어느덧 12월 중순입니다. 크리스마스까지 2주가 남은 시점에서, 상당히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나흘 후에 전국적으로 눈이 내린다는 소식입니다. 겨울이 왔음에도 대관령 등 강원도의 일부 산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이번 겨울에는 아직 눈이 내린 전례가 없으므로, 이틀 후가 이번 겨울의 첫눈이 오는 날이 될 전망입니다. 이상, 날씨였습니다. - 

  첫눈이 오는 날이면 왜인지 여한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생은 돌고 도는 원무, 우리는 그 속에서 배우로서 살아간다. 세상이라는 무대의 위에서, 사람이라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극을 펼친다. 원무곡은 피날레를 향하여 달려 나가고, 종막이 찾아온 순간 수십 년간 존재해 왔던 이 극장도 기억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진다. 누군가의 종막이다.’

  내가 만들었지만, 꽤 멋진 말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인생에서 스스로에게 한 마지막 칭찬이었다.     

  절필, 이제 펜은 부러졌다. 절필과 동시에 나는 밖으로 나가 개나리 가지를 꺾었다. 나무에 미안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난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강을 건넌 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고민 상담 좀 해줄 사람’

SNS에 글을 올렸다. 아무래도 제일 친한 친구인 민준이에게 말하면 그저 장난이냐 되물을 것 같았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김시은에게서 답장이 왔다.

[ 왜? ]

  [ 좀 긴데 ]

[ 괜찮아 말해봐 ]

  [ 진짜? ]

[ 엉 ]

  [ 아니 그냥 씨발.. 너한테 말해도 되나 모르겠다 진짜 내가 세상에 진짜로필요한 존재인지를 ㅂㅁ모르겠어. 괜찮은 척을 하기도 이제는 지쳤어 안괜찮아 사실은 하나도 안괜찮다고 힘들어 진짜 그냥 자해 충동이 밥먹ㄱ듯이 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서부터 자기 직전깍지 그냥 그 계속 들어서 뭘 할 수가 없다고 그냥 ㅎ학원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고 쉬고 싶어... 아 난 쉬ㅣ고 싶은데 왜 어짜피 미래도 없는 인생인걸 왜 그럻게 열심히 살아야하고 어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가야하고 그런건데 걍 죽어버릴까 ㄹㅇ ㅅㅂ 아니 이게 맞나 모르겠어...그냥 내가 노력이 부족한건지 시발 아니면 하 그냥 힘든데 아무한테도 힘들다고 말하지를 못하겠어 걍 믿을 사람이 없어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데 ]

이런. 저질러 버렸다.

‘방금 읽음’.

늦은 것 같지만, 이내 급발진하며 시은이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 방금 뭐 있었는데 ]

  [ 아 별거 아님 친구가 폰 뺏어서 혼자 지랄한 거야 신경쓰지마 ㅋㅋ; ]

[ 아... ㅋㅋ 엉 ]

  설마 캡쳐를 하지는 않았겠지.

  다음으로는 어쩌면 내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는, 늘 동경했던 1학기 반장. 박지민에게도 연락을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왜인지 울적해졌다.     

  몇 분 정도가 지났을까,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김시은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소식이 나 몰래 얼마나 퍼졌는지, 메시지와 디엠이 오고 부재중 전화가 쌓여갔다. …이렇게만 보면 제법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창문 밖의 풍경은 여느 때와 같은 무채색이었다.

늘 주위가 똑같았지만, 그날의 나는 달랐다.

방 안은 어둠에 잠겼고,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는 한 장의 종이와 내가 아껴 쓰던 펜이 있었다.

  원고의 결말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부분을 쓰는 동안 손은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했다. 한참을 괴롭히던 수전증이 나를 놓아주나, 싶었다.     

“희망을 찾으러 가자.”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펜을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버티며 달려온 길 끝에서, 나는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었다. 무거운 돌덩이를 억지로 짊어지고 계속 가는 것은 이제 불가능했다. 교육이라는 거대한 무게가 나를 짓눌렀고, 내 좁은 어깨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더는 버틸 수 없었기에, 나는 내 희망에게 인생에 관한 것을 물으러 갈 채비를 했다.

  과연 내 희망은 무엇일까.          





  컴퓨터에 타자로 입력했던 유서 겸 원고의 뒷부분은 어딘가에 처박혀있던 만년필을 찾아서 내 손으로 직접 종이에 썼다. 결말인 만큼 그것만은 컴퓨터 타자나 프린터기가 아닌 내 손이 썼으면 했다.

  나는 손끝에 닿는 차가운 만년필의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마지막 종결어미를 씀과 동시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글을 우리 집…아니, 부모님 집 책상에 두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는 봐줄 것이었다. …설마 청소 대행업체가 다 불태워 버리는 건 아닌지 몰라. 

  나는 나무로 된 탁자 위에 내 연극의 종막을 알리는 음악, 그중에서도 끝세로줄을 두고서, 나는 다시금 학원으로 향했다.     

  “엄마, 갈게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한 계단, 한 계단.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지 않았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사람 같지만, 죽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썩 부러워하지는 않을 터였다.

  내가 다니는 수학 학원이 4층이었고, 여기는 5층이었으니 옥상까지도 올라가야 하는 걸 생각하면 지금은 벌써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까지 올라왔고, 이제 세 층만 더 올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는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 고작 죽기 위해 전기를 쓴다는 것이 미안하니까. 그게 내가 한 사회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층이 바뀔수록 몸은 굳어갔다.

이 판단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내 뇌는 수백만 가지의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실행하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삶의 의지가 부족했던 걸까?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온 건가?

  사실 지금 뛰어 내려가려면 뛰어 내려갈 수야 있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겁을 먹기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내려가더라도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맘 편히 살면 좋겠는데 어쩌면 누가 도와주지 않을까, 늘 그런 것을 바라왔지만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들을 애써 외면하며 올라갈 뿐이었다.

  무거운 패딩의 진동과 함께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하지만 확인한다면 괜히 세상에 대한 미련이 생길 것 같아, 확인하지 않았다.     

  무언가 좀, 허망한 결말 같지 않나.

10층 건물의 옥상에서 떨어지면 즉사할까? 만약에 비참하게 살아남으면 어쩌지 싶어서, 내가 검색도 해보았다. 그래,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즉사한다. 하지만 내게는 즉사하는 게 가장 운이 좋은 경우일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력에 의하여 생명의 요람과 가까워지는, 한마디로 낙하하는 그 시점에서 기절해서 고통 없이 죽는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원래는 희망을 품고 행복을 바라야 하는데, 기껏 바라는 것이 이런 거라니. 자조할 수밖에 없는 나였다.

  너무 큰 욕심이었는지,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매사에 불평하고 결국 이렇게 된 건지. 이런 삶을 살아왔던 내게 이건 큰 욕심일까, 아니면 마지막 선물일까.

  …희망을 선물로 받았다면 지금쯤 나는 학원 건물의 옥상이 아니라 집으로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내게 그런 선물을 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받지 못한 것뿐인가?

  그래, 어차피 마지막인데 다 내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세상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니 심장이 세차게 뛰는 동시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사후세계는 실재할까?

  이제 질문은 더욱더 형이상학적인 질문으로 변해갔고, 변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몇 계단을 더 올라가자, 조금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마지막 질문이 나타났다.

  왜 사람은 자살하는가?

글쎄.

  …다음 생에는 주인의 사랑을 한껏 받을 수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나 같은 놈에게 그런 동물의 몸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벌써 8층까지 올라왔다.

사실 나는 나의 희망에게 인생에 대한 질문을 하러 간다며, 희망을 찾으러 간다며 옥상에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멍청한 내 뇌를 잠시라도 속이려고 떠올린 생각이었다.

애초에 희망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난 그냥 죽으러 가는 거란 말이다.

  솔직히 이제 와선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하지만 난 내려갈 용기도 없었다.

설령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난 열일곱 번째 해를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몸만 큰 어린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도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난 죽는 게 맞는 걸까.

  무릎을 구부려 내딛기를 반복했다. 정말 억겁의 시간 같이 느껴졌다.

  9층까지 올라오자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그곳이 보였다. 난 그곳에 들어갔다.

불도 제대로 켜지지 않아 음침한 화장실은 공포 영화 촬영 장소로 쓰기에는 딱 맞을 것 같았다.     

  작년…, 언제였더라?

기모 바지에 패딩을 입었었으니, 아마 겨울 이맘때였을 것이다. 올해보다 더 힘들었는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감정은 상대적이고 과거의 감정은 내가 바라보아도 그 차이가 극심할 때가 많으니까.

  버티기가 힘들어서였는지, 정말 마지막 발악이었는지는 지금의 나도 몰랐다. 아침부터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 지속되던 주말이었다. 학원에 간다고 하고서, 죽기 위해 나는 바로 이 건물의 옥상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사실 마스터키는 이때 훔친 것이다. 어떻게 아직 아무도 모를 수가 있지.     

  지금처럼 9층까지 올라갔을 때였다.

9층은 워낙 낡고, 희한하게도 엘리베이터는 8층까지밖에 없어서 임대한 사람도 없고, 거의 꼭대기 층이라 그런지 별 볼일이 없었다.

  허름하고 음침한 화장실이 시선에 들어왔고, 난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스위치를 올리자, 깜빡거리던 형광등은 곧 허옇게 제빛을 발했다. …적어도, 나도 깜빡거리던 순간이 있었더라도 그 형광등처럼 환하게 방을 비출 수 있는 역할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무언가 잊은 것 같은 감정이 계속됐었다. 적어도 그 감정은 흑백감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그 화장실, 아니 이 화장실에서 세수를 좀 하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아마 희망이었던가. 왜인지는 모른다. 희망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희망이라도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언가를 찾고 나서는, 한 걸음씩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들어가 스위치를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잠시 껌뻑거리더니 꺼지고 말았다.

  어둡고 추워 세수할 겨를이 없었다.

세수하고 싶지 않았던 건가?

  그 말은, 작년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10층을 넘어 긴 계단의 끝자락에 옥상 문이 보였고, 머릿속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었다.

  훔친 열쇠를 문손잡이의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린 후, 손잡이를 내려 문을 밀자 불쾌하고 불편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초록색으로 방수 페인트칠이 된 전형적인 한국 옥상이었다.

  나는 살면서 어느 건물이든지 옥상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함을 느꼈다. 

  아, 할머니 집 옥상이 있기는 했다.

  그럼 정정하지. 큰 건물의 옥상.

  옥상에는 무언가 잡다한 기계 장치들도 있었다. 하지만 만졌다가 잘못된다면 내가 죽더라도 우리집 주소로 청구서가 갈 테니 만지지 않기로 했다.     

  분명 도시라 별빛이 흐릴 텐데도, 내 눈에는 문학인들이 그리도 좋아 죽는 별들이 하늘에 뿌려져 있었다. 환각인 양, 너무 인위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격분하여 환각을 만들어내는 머리에게 소리쳤다. 밤하늘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그제야 별은 뻣뻣하게 오열을 맞추어 하늘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제 어미의 품에 안겨있듯이 포근하게 하늘을 감쌌다. 제법 마음에 들었다. 하늘이 참 좋았다.     

  나는 옥상의 끝자락으로 다가갔다. 딱 내 무릎 높이가 될까 말까 한, 담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벽 비슷한 것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밑을 내려다보니 개나리 나무와 인도, 그 건너에 차도가 보였다.

제각기 다른 차들은 자기들의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내심 부러움을 느꼈다.

나도 저렇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어두운 남색 하늘이 나를 반겼다.

아니, 분홍색인가. 확실했다. 노을이 질 때 보이는 주황색과 연분홍색 사이 그 어딘가의 색채를 띠고 있는 하늘의 색이었다. 정말 확실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겨울의 밤에는 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편에서 누군가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지간, 계속 난간인지 벽인지 담장인지 주위에 있다가는 지나가는 사람이 신고해서 정신병원의 철창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만을 보며 살아갈 가능성도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건물 옥상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내가 건물 옥상의 중심부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기분 나쁘게끔 바람은 자꾸만 나를 떠밀었다. 자른 지 두어 달은 되어 눈을 완전히 덮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인 머리가 휘날렸다. 거센 바람은 나와 벽인지 담장인지 모를 그것을 밀착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설마 바람 때문에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예보는 아주 정확했다. 옥상 문을 연 그 시점부터 하늘에서 작은 결정이 내려오더니, 여기서 10분 정도 고뇌하며 머물고 있자 점점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도로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있겠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눈이 나를 배웅해 주는 것일까.

내가 눈을 배웅해 주는 것일까.

눈은 언젠가 녹아 없어진다.

나도 언젠가 녹든지 뭐, 어쨌든 없어진다.

언젠가를 앞당기고 있었다.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내려갈까.

내려가서 희망을 찾아볼까.

아니다. 저 분홍빛 하늘이 희망인 건가.

아닌데, 그럴 리는 없다. 나연우, 현실을 직시해.

아니, 현실을 직시했다면 애초에 여기 있지도 않았겠지, 병신아.

어지럽다. 이게 맞나. 진짜 겁이 난다. 나 두려워.

세상이 이렇게 만든 걸까.

아닌데, 그냥 내가 나를 망쳐놓은 거야?

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뭐가 잘못된 것이고,

누가 잘못한 것일까.

  벌써 허연 눈이 얇게 깔리기 시작했다.

마지노선은 이미 무너졌다.     

  죽고 싶다. 아니면 이미 나는 죽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살고 싶은 건가?

  흰 눈 같은 삶을 살면 좋을 텐데.

더럽혀지지 않는 순수 그 자체, 깨끗한 것.

  난 그냥 이렇게 죽으라고 있는 운명인 건가. 마지막엔 활짝 웃고 싶었는데.     

  어쩐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허공에 내뱉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크게 말하지 않는 이상 저 밑바닥에서 들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러니까 내 유언은 여기서 지껄이는 말이 아니라 아침에 탁자에 두고 왔던 원고의 마지막 말이라는 거겠지.

아마 원고 마지막에 쓰여있던 말은, ‘개나리 가지가 꺾였다’였을 것이다.

개나리 가지는 희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침 내가 떨어질 것 같은 곳 아래에도 개나리 가지가 있다….     

  나는 두 손을 입 양옆에 모으듯이 두고서는 작다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그저 후련하게 말하고 가고 싶어서.     

  “이젠 너무 지쳤어요. 하늘인지 희망인지,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어쩌면 저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저는 행복해질 수도 있었을까요.”     

  이쪽으로 떨어진다면, 튀어나온 개나리의 가지가 내 몸을 찌를 것 같았다. 난 정말 좋았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껏 찾아왔던 그대에게 찔려 끝을 맞이하겠노라 생각하면 히죽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희망을 찾았다. 희망이 저기에 있다.

  나는 내 희망을 심장 가장 가까이에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희망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끝내 분홍빛 하늘이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짙푸른 하늘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난 미소를 짓는다.

  세찬 바람, 또 하얀 눈과 함께 나의 존재는 먼지가 되어 날아간다.     

현실은 가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을 때가 있다.                                                                                                    


시리고쓰리고아픈 청춘은

원무처럼 제 결말을 맞이하였다.

아무래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별로인 것 같다.     

나의 희망에게 – 유서 원고마지막 말     

  때때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다시 돌아와 내 뇌에 깊게 박혔다.     

  “과연 이게 맞는 일일까? 왜 나는 정해진 이 길을 가야만 할까?”

  다른 질문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 깊어지는 절망과 불안뿐이었다.

숨 쉴 틈조차 없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더는 길이 없다는 것.     

  지금까지 이것은 나의 마지막 격동기, 1년 간의 이야기였다. 바스러지기 직전의 상태인 희망의 끈을 놓은 순간, 이 글을 쓴다.     

  …효도가 본인의 꿈을 펼치고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점수를 잘 받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란 말인가?     

  불확실함의 연속에서, 왜 그분들은, 이 사회는 학생들에게 ‘당신네가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정신력과 집중력, 그리고 재력을 가졌는지 시험해 보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차라리 솔직하게라도 말하던가 말이지.     

  주위에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묻는다. 외려 나만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게 더 비정상적이고 그게 더 문제인 것이 아닌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나는 늘 이 질문을 던졌다.     

  왜 살아야 할까?     

  왜 이 모든 걸 견뎌야 할까?     

  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 어느 곳에서도 말이다.     

  나를 짓누르는 건 교실 안의 공기뿐만이 아니라, 내 어깨를 짓누르는 수많은 기대와 점수표, 그 모든 ‘기대감’이었을 지도 모른다.     

  모두 말한다.     

너희는 자랑스러운 나라의 미래야.”     

공허한 말이다.     

  그럴 일은 없겠으나, 더는 이 사회의 전반적인 것들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 그럴 일은 없겠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을 결심을 하겠지만, 그래도 더는 나같은 사람이 없기를. 적어도 바라는 것만은 해볼 수 있지 않나.     

  내가 마지막이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그저 너무 지쳤을 뿐이니까.     

  이제, 나의 시간이 멈춘다. 그곳엔 희망도, 절망도 없다. 다만, 끝없는 침묵 속에서 나는 나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이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가겠지.     

  …엄마, 아빠 미안해요. 그동안 미운 말 해서.

사랑해요, 고마워요. 난 절대 원망하지 않아요.

끝까지 못 버텨서 죄송해요. 아들도 사촌 형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하셨을 텐데.

그래도, 부디 나 없이도 행복해져요.

-나연우 올림-     

  그렇게 개나리 가지가 꺾였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둘 뿐이다하나는 자살하나는 희망이다                                                                                                                                                                                                                                                               

’ 소리와 함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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