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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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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8일~5월 19일, 진해, 최유진 

 

  나는 멋쟁이 노인이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일상의 세계로 돌아왔다. 햇살은 눈부셨고 반쯤 열린 차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그리움의 냄새가 났다. 택시는 신호등 한 번 걸리지 않고 시원하게 달려 나갔다. 마유미도 레몬의 관리인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켄 사장과 마유미는 자폐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사이, 어느새 택시는 멈춰 있었다.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확장 이전한 미용실은 한적한 주택가 공터에 지어진 2층 단독 건물로 꽤 큰 규모였다. 건물 앞에는 자동차 10대도 거뜬해 보이는 주차장도 있었다.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아니더라도 내부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티가 제법 났다. 특히 깔끔한 격자무늬 타일의 바닥과 큰 거울이 달린 가구들이 고급스럽게 보였다. 보안에도 신경 쓴 듯 곳곳에 CCTV가 보였다.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며 서 있자, 노랑머리 여자 미용사가 원장실이 위치한 2층으로 안내했다. 계단에 다 올라서자 시끌벅적 정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태우 엄마! 여기야.” 

  낙인을 찍듯 그들은 아직도 나를 태우 엄마라 불렀다. 프로방스 풍 가구들에 둘러싸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 반가운 언니 동생들이었다. 

  “자주 좀 놀러 와.” 

  “아니, 진해로 아예 들어와. 아들도 다 컸는데, 일본에서 혼자서 뭐 하는 거야. 여기 일도 좀 도와줘.” 

  그들의 폭풍 수다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도대체 얼마나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돈도 돈이지만 피곤하지도 않아? 나이도 생각해야지.” 

  “내가 원래 가진 게 체력이라. 걱정일랑 마라.”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원장 언니가 귀밑머리를 만지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있잖아. 며칠 전에 9시쯤인가, 영업 마치는 시간에 미친놈 하나가 갑자기 들어왔어.” 

  “여기?”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그래. 그날은 최 부원장만 혼자 남아 있었는데.” 

  “그래서?”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들어와서, 서른을 갓 넘었을까, 커트하겠다고 손으로 가위 시늉을 하더래. 그래서 우리 최 부원장이 착해 빠져서 마감 시간이었지만 커트를 해 줬다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이 미친놈이 어어 하며 손짓으로 얼굴을 가리키더래. 그래서  어디 불편 하냐고 물어봤는데 아무 말이 없어서 계속 커트를 했는데, 가만히 있지 않고 어어 동물 소리를 내면서 계속 얼굴을 가리키더래. 그래서 머리카락 때문에 간지러워 그러나 싶어 솜으로 얼굴을 털어줬대. 그랬더니 난데없이 이 미친놈이 짐승처럼 헉헉거리며 벌떡 일어나더니, 어어 거리며 발버둥을 치더라는 거야. 가위 던지고. 드라이기 던지고.” 

  “아이고, 재수 옴 붙었네.” 원장 언니 동생이 말했다. 

  어머, 어머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경찰이 와도 막무가내인 거야. 말도 안 통하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쏜다고 위협해도 샤워기로 온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완전히 개판이었대. 사람이 아니었다는데.... 겨우 경찰 두 명이 테이저건인가 뭐, 전기 총인가로 제압해서 개 잡듯이 끌고 갔지. 그 뒤로 무서워서 CCTV를 5개나 설치했지 뭐야. 저기 앞에 봐봐. 2층에도 이쪽, 저쪽, 2개나 있어. 이거 한 달 유지비만 해도... 어휴 내가 못살아 정말.” 그녀는 계단과 안쪽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고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그 미친놈이 정신 병력이 있는 놈이었대. 아무튼 그런 놈들은 아예 세상에서 격리하던지 해야 피해가 없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정신 병력?”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뭐 자폐라나 조현병 뭐라나. 보호자가 와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갔어. 엄마인지 할머니인지 펑펑 울면서 하는 말이,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가면 그렇게 난리가 난다고 싹싹 빌어서 그냥 알았다고 했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앞면 가리개 같은 거 얼굴에 씌워 달라 그러던가. 아무 말도 없이. 미친놈이 왜 밤에 혼자 기어 나와서 그 난리를 피우냐고. 방구석에 가만히 처박혀서 보호자가 신문지 깔고 머리 잘라주면 되지.” 

  그녀의 소나기 같은 독설이 내 구멍 난 가슴 속으로 쓸려왔다.  원장 언니는 아직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태우 엄마라고 불렀다. 그런 그녀가 태우를 키우며 고생한 내 마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냉혹한 적대심이 느껴졌다.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는 귀찮은 자들에게는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흘겨보는 눈가로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이고 라는 한숨 섞인 말을 반복하거나 쯧쯧 혀를 차대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사람들은 대화 주제를 다른 사람 얘기로 바꿨다. 

  “거기 신시가지의 소고기 집 이름이 뭐지?” 

  “어디?” 

  “그 낮은 구릉지에 있는 희한하게 생긴 가게.” 

  “아, 데이터 센터 쪽에 있는 거. 거기. 알지.” 

  “데이터 센터?” 

  “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뭐 일본에 있는 큰 IT기업이 데이터 센터라고 만들어 놨잖아. 거기 신시가지 동산 쪽에. 군사 보호구역처럼 울타리 높이 쳐 놓고.... 잘 모르지만 컴퓨터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창고라고 하던데. 일본은 지진도 많고 전기세도 비싸서 한국에 비상용으로 만들어 놓은 거라나. 아는 언니가 거기 청소하러 다니는데 운동장만 한 건물에 안에 들어가면 반짝반짝하는 기계들이 엄청나게 있다고 하더라. 추울 정도로 시원하고 사람도 안 보이고, 먼지 하나 없는 곳을 청소차 타고 슬슬 다니면 별로 할 것도 없어서 편하다고. 아무튼 거기 데이터 센터에서 산을 반대편으로 넘어오면 그 소고기 집이 나와.” 

  사람들은 멋쟁이 노인이 운영하는 가게와 내가 노인에게 듣지 못한 데이터 센터 얘기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예전에 그 가게 사장인가, 내가 한 번 머리해 준 적이 있거든. 사람이 특별해 보이지 않아? 가게도 엄청나게 크던데.” 

  “거기, 음식이 비싸고 위치도 좀 외지고 해서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것 같던데. 장사가 되려나 모르겠네. 그 사장 돈은 좀 있어 보이더라. 재일교포라는 소문이 있던데.”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재일교포?” 원장이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그래요. 언제 진해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인도 일본 사람이고.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지, 별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 우리가 잘 모르면 말 다했지 뭐. 근데 왜? 언니 관심 있어?” 

  “얘도 참.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이 바닥에서 30년 넘게 있었잖아. 딱 보면 느낌이 와. 사람이 신비해.” 

  “신비?”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얼떨결에 웃고 있었다. 

  “언니가 그런 말 쓰는 거 처음 들었다. 뭐가 신비한데? 돈의 신비?” 

  “야. 야. 딱 머리카락을 움켜쥐는 순간 느껴졌다니까. 말로 표현이 안 돼. 진짜.” 

  “그게 뭐여? 찌릿찌릿 한 거야? 나잇살 먹고 돈 많은 노인과 사랑에 빠진 겨? 언니 돈도 많잖아. 왜 그래?” 사람들이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아가들아. 너희들은 30년 가위 손의 그 느낌을 몰라. 내가 한두 번 사람들 상대했겠어. 허구한 날 눈칫밥 먹어가며, 어중이떠중이 기분 맞춰져 가며 머리만 만진 사람이여 내가. 사람이 그런 게 있어. 이게 많이 배운 사람 같기도 하고,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 같기도 하고, 차분한 느낌 같기도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거와는 차원이 달라.” 

  “아, 언니도 참 시시한 소리 그만해라. 돈 많은 아저씨가 그냥 골프 하고 사우나에서 땀 빼고 와서, 좋은 옷 입고 점잔 빼고 딱 앉아 있으면 그런 느낌이 날 것 같은데.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여 뭐여.” 

  사람들의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나는 원장 언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중년의 길을 착실히 밟아 온 남자들이건, 중간중간 일탈한 남자들이건, 보통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이 풍기는 그 느낌이란 게 있다. 어정쩡하게 술과 담배, 연애와 희로애락의 인간사를 거쳐 일과 가정이라는 무게 속에서 발버둥쳐 나가는 그런 일상의 남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남자. 여자의 직감으로 그런 느낌은 정확하다. 

  “중세의 수도사 같은 분위기 아닐까요?” 나는 느낌대로 말했다. 

  “그래. 태우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 스님, 신부님이나 목사님하고는 또 다르고, 교수도 아닌 것 같고, 뭐 굳이 비유하자면 아르마니를 입은 중세 수도사, 그 정도면 비슷하겠다.” 

  “사기꾼은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또 한바탕 큰 웃음을 터뜨렸다. 멋쟁이 노인은 자신이 이렇게 말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적어도 레몬의 관리인이라면 일본의 켄 사장처럼 무색무취한 사람이 어울리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그 특유의 아우라에 매료된다면 쉽게 눈에 띄고 주목을 받게 될 텐데. 사람들의 수다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아들과의 저녁을 핑계로 그 공간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원장 언니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따뜻한 감정이 낯선 거리감으로 종이 한 장의 앞뒷면처럼 순식간에 뒤바뀌는 것을 느꼈다. 나의 가장 아픈 부위를 아는 사람은 그곳에 약을 발라줄 수도, 그곳을 헤집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상처를 헤집으면서 웃고 있는 그녀가 눈앞에 자꾸 아른거렸다. 난동을 피웠던 청년과 멋쟁이 노인은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다. 설사 청년이 피해를 줬다 할지라도 내 앞에서 그녀가 자폐에 대해 비꼬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최소한의 상식 아닌가. 오랫동안 미용실에서 함께 일하며 동고동락했던 그녀가 내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태우와 약속한 저녁 장소에 1시간가량 먼저 도착했다. 시간을 보낼 겸, 입구에 노란색 바구니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왼쪽은 꽃집이었고, 오른쪽은 폭이 좁고 긴 카운트와 4인용 테이블이 5개 정도가 놓여 있는 좁은 공간의 커피숍이었다. 수제 쿠키와 잼이 놓여 있는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노트북으로 만화를 보고 있었다. 여주인은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쓴 딸에게 연신 모니터에 눈을 가까이 대지 말라 야단치고 있었다. 태우를 미용실로 데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태우는 저 여자아이처럼 가만히 앉아서 만화를 보지 못했다. 가위를 두드리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던지고 뛰어다니며 미용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엄마 말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가 너무 부러웠다.  

  얼마 후 태우가 도착했고 우리는 오랜만에 양념돼지갈비를 맛있게 먹었다. 한 손으로 집게를 잡고 가위로 네모반듯하게 고기를 잘라내는 태우의 얼굴에서 남편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냥한 얼굴과 핏대 선 얼굴이 교차로 지나갔다. 고기 두 점을 양념장에 발라 야채와 상추에 싸서 아들의 입가에 갖다 댔다. “아아아.” 

  태우는 쑥스러운 듯 손으로 받으려다 “아아아” 하고 멋쩍게 입을 벌렸다. 엄마 없이도 양치를 잘했는지 그 흔한 금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맛있게 입을 오물거리는 아들에게서 “아” 하고 상추쌈 하나 받아먹지 못했던 어린 태우가 보였다. 남편과의 다툼으로 아이의 입에 억지로 넣으려던 상추쌈이 바닥 구석에 내팽겨쳐지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이는 굿판을 벌이듯 괴성을 지르며 엎어진 밥상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 상추쌈을 밟고 또 밟았다. 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태우도 미용실에서 난동을 부린 청년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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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0일, 진해, 윤정민 

 

  현관 신발장을 열어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의 끈을 하나씩 뒤집어가며 코드 번호를 확인했다. 111, 222, 333, 444, 555, 777, 888, 벗어놓은 999를 빼면 666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 의도대로 공식적으로 내가 잃어버린 운동화는 666이 돼 버렸다. 자기 암시를 반복했다. 난 엄마를 죽게 만든 것도 모른 채 억척스럽게 이 운동화만을 신어왔다. 이제는 이 운동화로 악마가 마수까지 걸려고 한다. 아버지는 단지 운동화 한 짝으로도 자기 아들이 레인보우 원장의 실종과 존 김의 살해 혐의까지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욕실에서 정성스럽게 샤워를 마치고 빳빳하게 다림질된 파란 줄무늬 폴로셔츠와 켈빈클라인 검정 면바지를 입었다. 거울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 아들이 이렇게 멋있게 컸어요. 이렇게 말도 잘할 수 있습니다.” 브라운 재킷까지 걸치고 방에서 나오니, 아버지는 이미 준비가 끝난 듯 소파에 앉아서 물끄러미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데이트하러 가냐?” 

  “그럼요. 최고로 멋있게 하고 가야지요. 아버지도 오늘 완전 다른 사람 같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렇게나 오래된 옷을 입은 듯했지만 충분히 자세가 나왔다. 그런 그가 외롭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게 가슴이 아팠다. 

  “자, 가자!”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먼저 나갔고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999 운동화를 신고 뒤를 따랐다.

  택시는 시내를 한참 벗어나 구부정한 산길을 여러 번 돌더니 산 중턱에 있는 회색 벽돌 건물 앞에 멈췄다. 밖으로 나오니 기분 좋은 숲의 향기와 새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건물 옆과 뒤로는 부드러운 산등성이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고 위로는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정면의 나지막한 경사 끝으로는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고향은 아니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 엄마가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출입문 한쪽 구석에 검지를 갖다 대자 자동문이 천천히 열렸다. 로비 중앙은 건물의 천장까지 오픈되어 있었고 넓은 공간 곳곳에 띄엄띄엄 소파와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구석에서 엄마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따라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책장이나 사물함같이 생긴 가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마치 도서관에 온 것 같았다. 한동안 말도 없이 걷던 아버지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 곳에서 멈춰 섰다. 딱 눈높이에 있는 네모난 작은 공간. 그 속에 엄마가 있었다. 하얀색 항아리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기억에서 사라진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미지와 달라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내가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도 여러 장 보였다. 대부분 엄마가 한 손을 뻗어 정면을 가리키고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진들이었지만, 단 한 장의 사진만은 달랐다. 엄마와 내가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나는 엄마와 같은 포즈를 하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엄지와 검지를 눈 위아래에 대고 있는 아버지의 주문, 난쟁이의 동작이었다. 아버지가 비밀번호를 눌러 사물함을 열었다. 항아리 뒤로는 아마도 엄마가 아끼는 물건을 보관해 두었을 법한 직사각형 상자 하나가 보였다. 뒤에서 서성이던 아버지가 코를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하얀 종이 여백 속으로 잉크 방울이 스미듯 흐느낌이 번져갔다. 어디선가 속삭이듯 엄마의 자장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울지 마라 아가. 울지 마라 아가.’ 엄마가 말했다. ‘보고 싶어요. 엄마.’ 내 마음이 말했다. 눈물이 하얀 신발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 또 올게요. 봉안 묘를 닫은 후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며 눈물의 흔적을 지웠다. 손으로 눈 주변도 몇 번 마사지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초조해 보이는 아버지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다시 가자.” 그는 중요한 것이라도 두고 온 듯 엄마가 있는 곳으로 나를 다시 데려갔다. 그리고는 봉안 묘를 다시 열어 하얀 항아리를 옆으로 밀치더니 뒤에 놓여 있는 직사각형 상자를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운동화 한 짝과 큰 운동화 한 짝이 들어 있었다. 모두 아식스 운동화였다. 그가 큰 운동화의 첫 번째 신발 끈을 뒤집었다. 666이었다. 경찰에 제출한 666의 나머지 한 짝을 이곳에 숨겨 둔 모양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크게 울렸다. 

  “동작 그만!” 

  단번에 진 형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가락 뼈마디를 하나씩 딱딱거리며 그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뒤에는 스포츠 선수처럼 머리를 짧게 쳐올린 젊은 여자도 한 명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나도 멀뚱히 서 있었다. 

  “그거, 이리 한번 줘 보세요.” 그가 아버지가 들고 있는 상자를 보며 손을 까딱거렸다. 아버지는 그에게 상자를 건넸다. 그가 운동화를 꺼내며 말했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자 사진 찍어!” 뒤에 서 있던 여자가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자, 서에 같이 가 주시죠.” 그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왜 그러십니까?” 나는 밀치며 저항했다. 

  “내가 정민 씨한테 250 사이즈 운동화 아냐고 물어봤을 때 모른다고 딱 시치미 뗐죠?” 그가 나를 째려보며 물었다. 

  “전 그 운동화 정말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시구나. 내가 조사를 해 보니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하얀색 아식스 운동화만 신었더라고. 사이즈만 계속 업데이트시키면서.” 

  “그런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런 거 모르면 형사라고 할 수 없지. 나한테 배달된 250 사이즈 운동화는 정민 씨가 일산에서 교통사고 날 때 신었던 것과 똑같은 거잖아요. 그죠? 그거 땜에 엄마가 죽었는데도 그 재수 없는 신발을 계속 엄마 곁에 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엄마가 그 신발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고를 당해서 그러신 것 같은데. 때마침 여기 있는 그 소중한 신발과 똑같은 신발을 누가 나한테 배달했던 거야. 그럼 이건 무슨 메시지일까? 고심하다 비밀은 이곳에 있다는 메시지라는 걸 알아냈지. 그냥 필이 딱 오는 거야.” 그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여기는 우리 엄마를 모신 곳인데, 무슨 비밀이 있다는 거죠?”     “그건 나도 모르지. 단,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이곳에 사건을 풀 열쇠가 있다. 그 메시지를, 그 힌트를, 내게 준 건 분명하지. 눈에 드러난 사실이 제일 중요하죠. 누가 그것을 알려 줬느냐는 두 번째 문제지요.” 

  “말도 안 됩니다. 이건 억지고 함정입니다.” 

  “뭐, 함정? 억지라고 했어요?” 그가 어이없다는 듯 비웃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일단 서에 가서 조사하시죠. 분명히 장복산에서 분실하셨다고 진술했던 이 신발 한 짝이, 네? 정민 씨 어머니 봉안 묘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맞죠? 이거는 빼도 박도 못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이게 실종 사건의 유력한 증거로 성립되면 정민 씨는 이제 피의자 신분으로 즉각 전환될 거예요. 바로! 1초도 지체 없이! 이 사건은 오랫동안 시간을 끌어서 빨리 진행할 테니까 그 점 유의해 주시고.” 

  나는 봉안 묘의 문을 닫고 아버지와 함께 진 형사의 차에 올랐다. 아버지의 시나리오에 큰 차질이 생겼다. 그는 현장에서 아들을 핵심 피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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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1일, 후쿠오카, 최유진 

 

  주택, 카페, 잡화점, 지나치는 거리 곳곳의 풍경이 후쿠오카 도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달랐다. 마치 이국의 휴양도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모치 해변가로 눈송이처럼 하얀 털의 큰 개 한 마리가 말처럼 뛰어다녔고, 옆으로 선글라스를 쓰고 피부를 멋지게 그을린 남자가 근육질 상체를 드러낸 채 달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모래사장 뒤쪽으로 띄엄띄엄 이어진 벤치가 나왔고,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한쪽 구석에 있는 빨강 미니 우체통이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 긴 벤치 행렬에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규칙적으로 찰싹대는 파도 소리를 들으니 인공해변 같은 어색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가 나무 뒤에서 슬며시 나타났다. 


  “켄 사장님! 잘 만나고 왔습니다. 근데 제이가 뭔가 알고 있는 듯 신분증을 주기 전부터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내색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불안감이 표출되었겠지.”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요?”

  “걱정하지 말게. 일이 끝난 후 레몬이 결과를 알려 줄 거야.” 

  “설마 제이 김을 죽이는 건가요?”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는 해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해에서 만났던 멋쟁이 노인이 궁금하던 차에 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김 준 사장은 잘 지내고 있지?” 

  “네. 굉장히 멋있는 분이시던데요.” 

  “그 친구, 분위기가 독특하지.” 

  “사실 그분 얘기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레몬 영화관의 시스템도 그렇지만 관리인이 자폐인으로 구성된 것이 사실이에요?” 

  “많이 놀랐겠구먼. 레몬에 자폐인이 많다 해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관리인으로 발탁되는 거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퍼즐 조각처럼 정해져 있는 각자의 자리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야. 퍼즐 판이 막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는 게 묘미이긴 하지만.... 지렁이가 말이야. 전 왜 사자가 되지 못합니까 라고 자각을 못 하잖아. 근데 인간은 한단 말이지. 그놈의 자각을. 그래서 표면이건 이면이건 세상은 계속 움직이는 거야.” 

  “어려운 말씀이네요. 김 준 사장도 자폐인입니까?” 

  “자폐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네.” 

  “그럼 사장님도 그렇습니까?” 

  “난 아니네. 모든 사람이 자폐인은 아니야.” 

  “왜 진작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요?” 

  “그런 건 처음부터 누구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네. 지금 내가 자네에게 말하는 사실도 일부분일 뿐이지.” 

  그가 다시 말을 아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와 자네 아들은 레몬 관리인이 될 자격이 충분해.” 

  “태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처음부터 제가 자폐증 아들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건 아니네. 자네를 만난 후에 알게 되었지. 오래전, 레몬에서 내게 자네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네.” 

  “조사라니요? 저를요?” 

  “그렇다네. 관리인이 필요할 때 하는 사전 조사지. 조사해 보니 자네와 태우가 관리인으로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어.” 

  “잠깐만요. 솔직히 좀 당황되는데요. 전 아직도 레몬이 왜 운영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요.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온 사람들을 관찰해서 수집한 정보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두어 시간 친구나 연인, 가족들과 재미있는 시간 보내려는 사람들에게 무슨 대단한 걸 얻으려 하는지. 혹시 그런 정보들이 큰돈이 되나요?” 

  “그건 말이네.... 영화관이라는 장소는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지. 확실한 것은 영화관에서 얻는 정보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 안면인식 정보는 지문보다 정확하다네. 사람을 볼 때 얼굴로 판단하잖아.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야. 지문은 속일 수 있어도 뇌와 연결된 안면인식 정보는 절대 속일 수 없어. 그래서 우리의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만 알아두게.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어. 성실성, IQ, EQ, 예술지능, 운동신경, 서비스 정신, 이런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일이지.” 

  “최소한의 자격 같은 것이 있습니까? 자폐가 심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외국어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 세부적인 판별요건 같은 것은 모르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목숨을 걸고 추천할 만한 사람을 고른다는 것이지. 자네가 놀라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은, 레몬의 세계는 노출되는 순간 게임 끝이야. 관리인들은 자기 일이 노출되면 죽음 외에는 방법이 없네. 불문율과 같은 것이지. 그래서 레몬은 애초부터 밧줄로 온몸을 꽁꽁 묶고 귀마개, 눈가리개, 입마개까지 하며 본능을 이겨내려 애쓰는 그런 류의 인간들은 처음부터 제외하네. 인간 본성을 속박하는 도구들은 본성을 이길 수 없거든. 의지와 노력은 유한하네. 언제든 변할 수 있어.”    

  “그럼 관리인들은 인간 본성을 없앤 사람, 결국 사람이 아니란 말씀인가요? 전.... 사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일을 제 아이에게 시키고 싶지도 않고요. 그냥 아들과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이가 연관되면서 그러기가 힘들어졌어. 물은 이미 쏟아졌단 말이야.” 그는 엿듣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혹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까?” 

  “지금은 없지만, 나 같은 베테랑도 거의 모든 시간을 감시당하고 있다고 보면 되네.” 

  춥지도 않은 바닷바람에 몸이 떨렸다. 그의 측은한 눈길에 오싹한 기운이 돌았다. 

  “겁먹지 말게. 나도 이 일을 한 지 오래되었지 않나. 그냥 자신의 할 일만 하면 되네. 그리고 ‘존재하던 것을 없앤다.’는 표현보다는 ‘처음부터 욕망이 없는’이란 표현이 적합할 것 같네.” 

  나는 욕망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고, 사람 잘못 봤다고 말하고 싶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멋진 곳으로 여행 다니며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나였다.   

  “김 준 사장은 한국 레몬의 책임자인가요?” 

  “그렇다네. 그곳이 한국 레몬의 본부이지. 한국 레몬의 데이터들은 모두 그곳으로 집적되네.” 

  “태우는 어디 관리인으로 추천을 하셨습니까?” 

  “레몬에서 자네를 조사시켰던 것은 한국에 새로운 관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야. 창원 레몬에서 문제가 생겼거든. 결국 관리인 둘은 죽었고 태우는 창원으로 내정되었어.” 

  “창원 레몬의 관리인들은 왜 그런 일을?” 

  “한순간의 방심 때문이겠지. 그들도 오랫동안 잘 지내온 사람들인데, 정말 한순간이지.” 

  노부부가 다가오더니 우리와 벤치 2개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에 차림새만 봐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켄과 나는 일어서서 도로 쪽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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