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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위 > 는 다 써놓은 뒤 분할해서 연재 중이라, 완결에 다다를 때까지 매일 올릴 예정입니다!
주사위의 해석이 시사하는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외계의 문자 체계
그 순간 미동 없던 대뇌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논문을 작성할 때에는 제목이 가장 가독성이 떨어지는 형편없는 문장이라는 동료 연구자의 말이 어렴풋이 기억에 떠올랐다. 논문을 표방하려고 한 듯한 글의 형식처럼 그것의 제목도 적당히 길었으나, 그 두 줄은 논문보다는 주간지에 실리는 자극적인 기사에 더 어울릴 듯했다. 그가 이 글의 저자인지, 택배가 잘못 도착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섞인 호기심들은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자극에 주물러져 저릿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뇌는 빠르게 글을 읽으라는 명령만을 손과 눈에 하달했다. 제목 밑으로 이어진 내용은 이러했다.
수 년간 주사위 연구는 진척을 이루지 못해 왔다. 십 년 전 중앙 광장에 등장한 다섯 개의 정육면체를 우리는 주사위라고 불렀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등장했다. 누군가 광장의 향해 던진 것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공중의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생겨났다. 마치 그것들이 없던 세상의 전반부와, 있는 세상의 후반부를 잘라 이어붙인 듯것 같았다. 공중에 고정되어 중앙 광장의 공기 흐름을 타고 흔들리는 그것들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주사위들은 저마다 크기가 달랐다. 네 개는 사람의 주먹보다 조금 큰 크기였으나, 가장 오른쪽 ( 중앙 광장을 입구에서 바라봤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 의 하나는 나머지의 절반을 조금 넘는것에 그쳤다. 각 정육면체의 모든 면에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그것들이 등장하던 순간 중앙 광장에 있던 누군가가 주사위 같다고 표현한 것이 그 이름의 시초였다.
나를 비롯한 물리학 연구자들에게 주사위는 필수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그것들의 비과학성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질량을 가졌음이 확인되었으나 다른 이에 의해 중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 연구진은 강체의 성질을 증명했고 다른 연구자는 유체의 성질을 증명했다. 주사위는 그 등장만큼이나 모든 것이 인간의 과학을 한참 벗어난 존재였다.
곧이어 연구에 참여한 언어학자들은 물리적 성질보다는 주사위에 나타난 그림들에 주목했다. 그들은 그림과는 거리가 먼, 선이 엮여 면을 이룬 듯한 것들의 조합을 새로운 문자 체계라고 주장했다.
두 학계의 의견이 조합되어, 주사위는 외계에서 보내온 문자 신호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러한 흐름이 일 년도 넘게 이어진 것은, 반박할 만한 가설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주장조차도 오래 가지 못했는데, 그것은 문자를 한 글자라도 해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주사위 해석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주사위를 찾는 사람은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글의 서론으로 보였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는 듯 했지만, 새로울 것은 없었다. 주사위는 십 년 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대상이므로, 이 정도는 당시에 정부에서 발간하는 주간지를 챙겨 읽었을 정도의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알 만한 내용이었다. 주사위를 해석하는 것은 중력의 발견만큼 위대한 업적이라는 말까지 돌았던 적이 있었다. 이 역시 글에 적힌 대로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만, 주사위를 해석했다는 제목을 읽고 반사적으로 흥분할 정도의 기억은 남아 있었다. 나는 숨을 고쳐 쉬고 독서를 이어 나갔다.
이쯤에서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주사위가 해석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외계의 문자라는 주류의 주장 역시 일부, 아니 대부분은 옳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글은 주사위의 해석 과정과 그것들의 의미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잠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