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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헤어져야 한다면

남자는 배, 여자도 배

by 유영해

남자 친구가 생겼다.

상대는 내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동갑임에도 마음이 묘했다. 선생과 제자의 만남이라니. 금단의 사랑처럼 마음이 달떴다. 연애 초기의 흔한 증상이었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


어학원 수업은 크게 오전과 오후로 나뉘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아침 강의를 마치면 저녁 수업까지 공강은 넉넉했다. 교재를 만들고 낮잠을 자던 시간을 쪼개 데이트를 했다. 각자 학원을 나와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키가 큰 그가 멀리서 손을 흔들면 나도 질세라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우리는 주로 남포동 지하 만화방이나 카페에 틀어박혔다. 피곤하면 서로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감기는 눈꺼풀에 저항하지 않았다. 한낮의 시에스타였다.


“우리 애칭 정할까요?”

“애칭이요...?”


이것이 지역 갈등인가.

따라갈 수 없는 텐션에 식은땀을 흘렸다. 우리는 사귀고도 존댓말을 썼다. 나는 그의 이름에 ‘씨’를 붙여 불렀고, 그는 나를 여전히 ‘쌤’이라고 불렀다. 이걸로 충분한 것 같은데. 기대에 찬 눈빛에 싫다고는 못했다. 얼렁뚱땅 정한 애칭을 그만 곧잘 불렀다.


내 마음을 흔든 호칭은 따로 있었다. 학생들과의 회식은 종종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주는 술을 신나게 받아먹고 2차로 노래방까지 달렸다.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아무도 모르는 연인을 의식하다 주량을 넘겼다. 학생들과 헤어지고 집 앞 하수구까지 와서 토를 하고 말았다.


다급한 발소리가 눈앞에서 멈췄다. 손에 들린 생수병이 기분 좋게 차가웠다. 웩웩거리는 등을 그가 살살 두드렸다. 부끄러움이고 뭐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였다. 다정한 부름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영해야, 영해야. 괜찮아?”


심장의 떨림은 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에게 처음들은 내 이름 때문이었을까.

벌게진 얼굴로 히히 웃었다. 나는 만화를 볼 때도 반전 매력에 약했다. 실실 웃던 캐릭터가 눈을 뜨고 보여주는 카리스마, 그런 설정에 곧잘 빠지곤 했다. 남자 친구는 존댓말 캐릭터였다. 그가 쓴 반말 필살기에 하트를 빼앗겼다. 이래서 술은 많이 마시면 안 되는 것이다.


닭살 행각은 수업 시간에도 이어졌다. 필기하느라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면 익숙한 뒤통수를 찾아 가볍게 헝클었다. 벌떡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눈을 일부러 피했다.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수업을 이어가는 짜릿함이란! 수강료는 내 쪽에서 지급해야 할 듯했다.


“아이는 세 명 이상 낳고 싶어요.”

“... 그렇군요.”


그는 전생에 투석기였음이 틀림없다.

20대 중반에 결혼을 넘어 자식까지 고려하는 담대함이라니. 그래도 막상 얘기를 나누면 즐거웠다. 우리는 조타실의 항해사처럼 앞날을 탐색했다. 잔잔한 물결 넘어 빙하가 관측될 때도 있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준비하느라 휴대전화를 내버려뒀더니 부재중 통화가 서른 통이 찍혀있었다. 목덜미를 타고 불쾌한 열감이 올라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요?”

“아, 그냥 통화가 안 돼서요.”

“몇 번 해서 안 되면 바쁜가 보다 해야지, 받을 때까지 전화할 거예요? 다신 이러지 마요.”


집 전화가 대부분이던 시절, 우리 집 신조는 ‘용건만 간단히’였다. 언제 걸려 올지 모르는 아빠의 일 전화 때문에 통화를 길게 할 수 없었다. 그 영향인지 대학생 때 처음 생긴 휴대전화도 진동 혹은 무음이었다. 연락에 연연하는 성미가 아니었기에 남자 친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바로 수긍했다. 처음 들어보는 나의 단호한 말투에 당황했는지도 모르겠다. 겪어 보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채팅도 통화도 길게 하고 싶어 했다. 반대로 나는 짧고 간결한 소통을 선호했다. 가끔 긴 통화를 하는 날이면 가슴 한편이 더웠다. 이야기를 끊는 건 대부분 내 몫이었다. 생각의 차에도 다툼은 없었다. 모자란 전화량만큼 얼굴을 마주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배를 타고 떠나면 연락이 잘 안될 텐데. 완전 천생연분 아냐?’


사귄 지 반년이 지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 친구는 토익 점수가 부족해 졸업을 못 한 상태였다. 도전은 꾸준했고, 점수는 상승했다. 게을렀던 공부를 만회하려 노력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헤어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다로 나간 그를 마냥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어학원에 입사한 지 일 년을 앞두고 있었다. 광복로패션거리 맞은편에 백화점이 들어섰다.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거리는 들떠있었다. 겨울바람도 연말의 흥분을 누르지 못했다. 퇴근길, 커다란 전광판에 시범 조명이 들어왔다. 어둠을 밝히는 새 건물의 위용에 어쩐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아.’


그렇게 무작정 일본행을 결정했다.

돈을 벌면서 1년간 체재할 수 있는 비자가 있었다. 기왕 가는 거 아르바이트 말고 정식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결심이 서자 가슴이 뛰었다. 때마침 접수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주한 그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 일본에 가기로 했어. 거기서 취직자리 알아보려고. 어차피 너도 배 타러 갈 건데 딱 좋다. 그렇지?”

“어... 어.”

떨떠름한 얼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 감돈 어색한 기류를 모른 척했다. 나는 한껏 들떠있었다. ‘먼저 떠날 줄 알았다가 한 방 먹었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의 뒷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미래의 저녁에서 술 한잔을 걸친 그가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래도 상의 한마디는 해줄 수 있었잖아. 그게 좀 섭섭했어.”


뒤늦게 밀려온 미안함에, 빈 술잔을 두 손으로 가만히 채워줬다.

내 인생에 롱디는 없었다. 군대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는 곰신을 미련하다고까지 생각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그 당연한 진리를 거스르고 싶을 만큼 그가 좋았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니 언제 적 얘기인가. 떠나는 마음은 홀가분했다. 그렇게 나는 먼저 한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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