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마음
저녁 산책 가기 좋은 바람이 붑니다. 산책을 가기로 마음먹고 운동화 끈을 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예쁘게 보기로 합니다. 아파트 유리창에 비친 오렌지빛, 노을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엄마와 아들, 본인이 하늘인 줄도 모르는 것들. 노래를 들으며 나무를 바라보면 울컥해옵니다.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들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춤을 추는 듯하고, 한참을 바라보다 걷다 보면 소리가 끝난 줄도 모른 채 무언의 대화를 나눕니다.
저도 모르게 지는 해를 따라 걷습니다. 어제 꾼 꿈의 답이라도 구걸하듯 홀려 걷고, 눈이 찡그려져도 그저 걸음을 이어갑니다. 저 멀리 있는 것조차 살게 하는데, 내가 날 품어주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어제와 같은 풍경 속에서도 어제와 다른 내가 있습니다. 그게 참 위안이 됩니다. 여름 벌레까지 사연 있어 보이는 날이면 원고를 고치기도 합니다. 무심코 적은 모난 부분을 다듬는 일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작은 습관이 됩니다.
저 붉은 빛이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빛을 보지 못하는 존재에게 해를 볼 수 있는 눈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구의 모든 자원과 재산을 똑같이 나눈다면, 우리 모두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만약 불행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가 단순히 ‘못 가져서’라면, 그리고 행복을 물질과 동일하게 바라본다면, 저는 다 같이 행복한 것을 원합니다. 작은 나눔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길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주고 싶습니다. 둘을 가져도 하나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중합니다. 그렇게 달이 뜰 때까지 걷고, 달을 찾기 위해 하늘을 올려보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도 동화되어 고개를 젖히면 괜히 뿌듯해집니다. 제가 뜨게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지만,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걸음과 숨에 집중합니다. 내일도 이런 걸음을 걸을 수 있기를, 그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진 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월, 붉은 박명을 따라 걸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