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울이 가슴에서 목을 넘어 눈 바로 아래, 코에 머무는 일이 잦다. 감정이란 것이 몸속을 떠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정확한 경로를 따라 머무는 구체적인 감각이 느껴질 줄은 몰랐다. 우울이란 늘 머리에서 시작해 가슴을 무겁게 누르고, 발끝으로 사라지는 기분일 줄 알았는데, 요즘은 그게 달라졌다. 마치 목 언저리까지 차오른 감정의 무게가 한껏 가라앉지 못한 채 목구멍에 걸려있고, 코끝에 닿으면 이제 터질 듯이 쌓여가는 기분이다.
대체 뭐가 그리도 힘든 걸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지? 늘 같은 질문을 던져도, 답은 뚜렷하지 않다. 사실 특별한 사건은 필요 없는 것 같다. 사소한 일들, 작은 균열들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터질 때가 있고, 그 순간이 바로 지금 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이유가 없는 우울함은 그래서 더 당혹스럽다.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적어도 그걸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아기 아침을 준비한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커피 향이 방 안을 채울 때, 잠시나마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 순간도 찰나일 뿐, 바로 아기에게 집중해야 한다. 아기의 요구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 요구를 채우는 건 내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다. 커피를 홀짝이며 주식을 잠깐 들여다본다. 아주 잠깐, 그 숫자들이 내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면 눈앞에는 아기와 집안일이 펼쳐진다.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이리저리 흩어진 장난감을 주우면서도 내 마음은 어딘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아기와 놀아주는 시간은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온전히 그에게 집중해야만 하는 시간이니까. 그 순간만큼은 아기가 내 세상의 중심이고, 그의 웃음이 나의 에너지를 채운다. 아기 점심을 준비하고 먹이고, 그 뒤에는 다시 놀아주고, 남은 집안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가끔은 나 스스로가 하나의 기계처럼 정해진 일과를 반복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기계적 움직임 속에서도 작은 변화를 찾으려 노력한다.
저녁이 되면 남편과 함께 아기의 저녁을 준비한다. 함께 하는 시간은 나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되지만, 머릿속에 스쳐 가는 생각들은 여전히 복잡하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웃고 있는 이 모습이 진짜일까, 아니면 그저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춰 만들어낸 허상일까? 그리고 그 허상과 실제 사이에서 느끼는 이 무게는 도대체 무엇일까?
가끔은 그 우울이 콧등에서 눈으로 퍼져, 눈물이 나려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물며 내게 어떤 신호를 주고 있을 뿐이다.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무력한 감정.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아마도 나는 오늘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려 한다. 우울이라는 것은 원래 이름을 붙이기 힘든 감정이니까. 꼭 이유가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니까. 그냥, 이대로 느끼는 것이 우울과 나 사이의 유일한 합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합의 속에서 나의 하루는 다시 시작되고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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