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겨울은 코끝이 시리다

by 김제주

인터넷을 보다가 '노즈워머'라는 물건을 발견했다. 코끝만 덩그러니 감싸주는 뜨개질 제품이라니. 처음엔 웃음이 나다가도, 점점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매년 겨울마다 코끝이 얼얼해서 손으로 쓱쓱 문질러대던 내게, 이 물건은 구세주처럼 보였다. "이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내 지난 겨울들은 대체 뭐였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장바구니에 넣을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상상해 봤다. 코끝에 그 노즈워머를 얹고 거리를 걸어가는 내 모습. 주변 사람들이 눈길을 주고, 지인이라도 마주친다면 "그건 뭐야?"라고 물어볼 게 뻔하다. 나는 과연 그 질문에 "아, 이건 코끝 보온용이에요"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을까? 내 상상 속의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얼른 노즈워머를 벗어버렸다.

결국 나는 사지 않았다. 코끝이 시린 건 어쩌면 내 겨울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얼얼하게 만들 때마다 나는 비로소 겨울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불편하긴 하지만, 그 얼얼함마저 겨울의 맛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그걸 뜨개질된 작은 조각으로 막아버린다면, 내 겨울은 왠지 맹숭맹숭해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날,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코끝이 시려본 적이 없단다.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정말? 겨울 바람 불면 코끝이 안 시려?" 그 말이 충격이었다. 내게는 겨울의 신호처럼 여겨지던 감각이, 누군가에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험이라니.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감각이나 경험도 모두의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걸.

결국 노즈워머는 사지 않았지만, 그걸 발견한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코끝이 얼얼해질 때마다, "그 물건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고 웃으며 상상할 수 있으니까. 때로는 이런 사소한 고민도 겨울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코끝이 시린 겨울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나는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낭만이 되긴 좀 어렵고, 그냥 한 번쯤 생각해볼 이야기 정도로 남겨 두기로 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0화나는 지금 우울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