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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렀던 나는 없다

by 김제주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게으른 사람이었다.
배가 고프면 대충 먹고, 귀찮으면 굶고,
가끔은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게 휴식이라 믿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 느슨해도 괜찮다고 말해줬고,
그게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여백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 세 끼, 간식 두 번.
이 작은 사람이 먹는 모든 시간이
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기분이 조금만 안 좋거나,
밥이 입에 안 맞으면 금세 울음이 번졌다.
나는 배가 고파도 참을 수 있었지만,
이 아이는 참는 법보다 울음을 먼저 배웠다.


그러니 어느새 나는 부지런해졌다.
강제로, 그러나 자연스럽게.


시계를 보지 않아도 밥 때가 느껴졌고,
숨소리만으로도 아이의 컨디션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수고를 보상이라도 하듯
어느 날 문득, 아이가 말했다.


“맛있다.”


입에 꼭 맞는 간식을 먹던 아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 말 없이 볼에 조용히 입을 맞추더니
두 팔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곤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아
남은 간식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 짧고 선명한 순간이
내 하루를 다 채웠다.


지금 이 아이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시간이 길어야 10년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후엔 친구가 세상의 전부가 되고,
조금 더 크면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나겠지.


그러니 나는 오늘을 조금 더 사랑하기로 한다.


한 끼 밥을 챙기는 일이,
간식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안에 내가 전부 담긴다.


게을렀던 나는 이제 없다.


그 자리에,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살고 싶은 내가 있다.


작고 따뜻한 손에 이끌려,
어제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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