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우리는 기억 속의 피자 한 조각과 누군가와 함게 들었던 음악을 위해 살아간다.
나는 이 작품을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물론 '첫째 날'을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전개에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보고 박수를 치면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맛있는 아포칼립스 세상과 인간의 힘과 기술로 어찌해볼 수 없는 강대한 적에 있다. 대개의 공포 영화들이 눈과 귀를 막았던 것과는 달리 입을 막게 하는 색다른 연출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스릴을 선사해주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1편의 시간은 사건이 발생한지 472일째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첫째 날'에 인류가 어떻게 습격을 받았고 어떤 식으로 멸망했는지 알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이 세계관의 팬이라면 전작들과 같은 아포칼립스, 코스믹호러 등이 가미된 작품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갔을 것이다. 거기다 전작의 배경과는 다른, 길을 가다 걸음을 멈추면 안된다는 대도시인 뉴욕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지 예고편부터 엄청난 기대를 품게 만들었고 역시나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공포와 코스믹 호러에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우리가 지금까지 끔찍하게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던 것을 주인공인 '사미라'를 통해, 그녀의 기억 속 피자와 어릴 적 아빠와 함께 듣던 재즈를 통해 보여준다. 그녀는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환자다. 그런 까닭에 매우 비관적인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사태가 일어난 후 매우 강박적으로 '피자를 먹기 위해' 움직인다.
간호사이자 친구인 '루벤'이 함께 뉴욕 시내로 나가자고 했을 때도 그녀에게 동의하며 배달이 아닌, 뉴욕 시내에 직접 가서 피자를 먹고 싶다고 말했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선착장으로 달려 갈 때도 그녀는 피자를 위해 사람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중 그녀는 자신의 반려묘인 프로도를 따라온 에릭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은 두 사람의 뜬금없는 동행에 대해 거부감과 함께 억지 스토리 라인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에릭은 물 공포증이 있고, 직전의 습격으로 수장될 뻔했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 뜬금없이 고양이를 통해 만난 두 사람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동행한다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에릭은 '팻시스 피자'에 피자가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걸 먹고 싶다는, 죽어가는 사미라에게 '좋아요'라고 말하며 그 여정에 동행한다.
두 사람은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서로에게 아주 큰 힘이 된다. 수장된 지하철을 헤엄쳐 나갈 때 정신을 잃으려고 하던 에릭에게 사미라는 큰 힘이 되어주었고, 진통제가 필요한 사미라에게는 걸을 수 있는 에릭이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사미라는 죽어가고 있었기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비관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그 순간에 다다라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그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에릭의 모험을 통해 '붙이는 진통제'를 받은 사미라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아름답게 연주하셨어요. 아빠 일터에 따라가 연주를 보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재즈 클럽이었는데 팻시스 옆이였죠. 끝나면 피자를 먹었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그녀 역시 곧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세계가 무너지는 이 상황이 되어서야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부정하고 잃어버렸던 것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진통제로 하룻밤을 보낸 사미라와 에릭은 조용해진 뉴욕 거리를 걷는다. 조용해진 광장과 길거리, 텅 비어버린 농구장, 낙옆이 쌓여있는 길가의 체스판 등을 지나쳐 '팻시스 피자집'에 도달했다.아빠와의 추억이 있는 팻시스 피자집은 불에 타고 망가져 있었다. 주저앉아버린 사미라를 일으켜 세운 에릭은 비어버린 술집에 그녀를 앉혀 놓고 밖에 나가 다 식어버린 피자 한 판을 찾아와 그 위에 '팻시스'라는 이름을 적어 그녀에게 건넨다. 여정을 마무리 하려는 사미라에게 에릭은 그녀를 술집 무대 위에 앉히고 카드 마술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로의 옷을 바꿔 입고, 사미라는 프로도와 에릭이 온전히 배에 탈 수 있게 소음을 내어 그들이 온전히 바다에 뛰어들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팻시스에 돌아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어 걸어두었던 사진을 발견하는데 그 순간 배에 탄 에릭은 사미라의 가디건에서 그녀가 넣어둔 쪽지를 발견하게 된다.
"고마워요 날 집에 데려다줘서.
다시 살 수 있게 도와줘서.
도시가 들려주는 노래를 잊고 있었어요.
고요할 때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다시 돌아와서 좋았어요"
그렇게 그녀는 뉴욕의 도시 안쪽으로 이어폰을 꼽고 걸어가다 이어폰을 뽑으며 스피커로 전환함과 동시에 영화는 끝을 맺는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작품이 주는 압도적인 괴물의 존재와 눈과 귀를 막아야 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입을 막게 하는 색다른 공포감에서 오는 스릴 때문에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세계가 멸망했고, 멸망해가는 와중에도 사랑을 통해 아이를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갈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춘기 딸에게 가족을 위험에 빠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널 사랑한단다"라는 수화를 남기고 소리 치는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2편에서는 역시나 멸망한 세계이기에 뒤틀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화한 사람들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강점일 것이다.
<첫 번째 날>은 액션과 스릴에 중점을 둔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멸망한 세계 속 사람들 간의 관계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호불호가 더 많이 갈렸을 수도 있지만 나는 에릭이 아무 이유 없이 사미라와 동행하겠다고 하는 그 순간, 그리고 두 사람이 처음 맞이한 비오는 날 밤에 천둥 번개와 함께 소리를 치는 모습에서 이 작품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영화는 시작할 때 이런 문구를 스크린에 띄운다.
"뉴욕의 평균 소음은 90 데시벨이며 이는 끊임없는 비명과 같은 수준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엄청난 소음을 들으며 조용함에서 오는 소중함, 그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 등을 잃고 살아간다. 사미라는 그 많은 소음 속에서 잃어버렸던 것을 괴물들이 가져다준 고요함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기억 속의 피자 한 조각과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들었던 음악'이었고 그녀는 이제 뜬금없이 함께하게 된 에릭과 함께한 며칠을 통해 그것을 되찾고 고요함 속에서 엄청난 소음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 안의 소음과 고요함에 귀를 가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