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쏟아낸다는 것
최근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인간은 진화할수록 점점 더 이성적이 되어가고, 감정 표현을 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감정이 쉽게 격해져 울고, 화내고, 기뻐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자유롭게 드러내지만, 성인이 되면서 감정 표현은 점차 줄어들고 무뚝뚝해지며, 감정을 억제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그러한 진화의 흐름 속에서도 감정의 중요성을 붙잡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놓치기 쉬운 감정적인 부분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며 쏟아내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쏟아냄'을 통해 예술가들은 자신의 감정을 정화하고, 우리에게도 그 감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예술가들은 감정의 원천을 고스란히 느끼고, 특히 슬픔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 더 깊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낸다. <인사이드 아웃>은 이런 '감정 쏟아냄'의 중요성을 슬픔이라는 감정을 통해 아름답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기쁨이, 슬픔이, 분노, 까칠이, 소심이가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감정은 기쁨이다. 라일리가 세상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정은 기쁨이었고, 자연스럽게 라일리의 주요 감정은 기쁨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기쁨과 함께 거의 동시에 슬픔이라는 감정이 태어났다. 이는 기쁨과 슬픔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함께 존재하는 감정임을 상징한다. 작품에서 기쁨이는 슬픔이가 라일리의 핵심 기억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라일리의 감정 제어 기판에도 슬픔이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막는다. 슬픔을 부정하는 이 기쁨의 태도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자 하는지 보여주는 미성숙함의 상징이다. 우리는 늘 기쁨만을 느끼고 싶어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감정의 균형이 깨지고 불안정한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
라일리 역시 슬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 점점 감정적 균형을 잃어가고, 여러 가지 감정 섬들이 붕괴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라일리는 내면의 감정이 무너져 내리고, 자신을 점점 폐쇄적으로 만들며 주변과의 소통도 차단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기쁨이와 슬픔이가 함께 라일리의 기억들을 되짚어 가면서, 기쁨이는 자신의 강박적인 기쁨 추구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라일리의 감정 제어 기판을 슬픔이에게 맡긴다. 이는 기쁨과 슬픔이 어떻게 상호 보완적인 관계인지를 드러낸다.
결국 라일리는 부모님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감정들을 모두 쏟아내며, 기쁨으로만 포장했던 기억들을 슬픔을 통해 진정으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통해 라일리는 그리움, 외로움, 슬픔을 모두 표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감정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었다. 기쁨과 슬픔이 결합된 새로운 감정은 라일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핵심 기억으로 남으며, 그녀는 비로소 청소년기로 넘어가며 더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게 된다.
이 작품을 보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떠올렸다. 나는 올해 초 10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이별했다.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게임 개발을 독학하고 있었고,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기타를 배우고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고, 그로 인해 나와의 갈등이 점점 커졌다. 한편, 엄마 역시 나의 꿈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대학원을 다니는 것 외에는 나의 다른 꿈들에 대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점점 자기 확신을 잃어가며, 불안감과 좌절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주차 중 사고를 냈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큰 꾸중뿐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정리하고, 엄마에게도 내 진심을 털어놓으며 게임 개발에 대한 나의 꿈을 받아들여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인 감정을 쏟아내는 과정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고, 나의 꿈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슬픔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감정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가 슬픔을 통해 자신을 진정으로 표현하듯, 나 역시 그때의 슬픔을 통해 내 감정을 쏟아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과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슬픔이 없었다면 기쁨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슬픔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억눌렸던 감정들을 끌어올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성숙하고, 더 안정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 슬픔은 그 자체로 소중한 감정이며, 때로는 우리 삶에서 가장 큰 성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