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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순 Oct 27. 2024

엄마와 아들의 관계

<플래시> 모든 시간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플래시는 저스티스 리그에서 보여주던 어리숙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진정한 능력인 스피드 포스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베테랑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에서 불완전하게 보여주었던 '스피드 포스'를 온전히 사용하여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을 마친 저녁,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에게 말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다면 저희는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어요"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이제 막 영웅이 된 플래시에게 자신이 경험해 온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들을 이야기해준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야. 우리는 그 상처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되어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을 권리는 없어. 애초에 바로잡을 필요도 없고." 


DCEU의 배트맨은 전작에서 자신과 알프레드를 '선하지 않은 자들'로 칭하고 악당들에게 인장을 남기는 등 매우 뒤틀린 행동을 했던 존재이다. 그렇기에 이제 영웅이 되어 활동하면서 불안해 하는 플래시에게 '비극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플래시는 자신이 그것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트맨이 조언해준 대로 "과거는 고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조금씩 '플래시'에서 '배트맨'으로 이동하는 나 자신을 만난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좋고 나쁜 기억들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가 비로소 존재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우리의 실수, 성공, 아픔, 기쁨 등을 통해서 현재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부정적인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 우리의 좋은 점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난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래시는 순간의 실수로 죽음에 이른 엄마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시간을 왜곡시킨다.

그는 시간을 되돌려 '아주 간단한 작은 것'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어머니가 죽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엄마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만난 또 다른 자기 자신은 지금의 자신과 달리 쾌활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보고 분노를 금치 못한다. 또한 어머니의 유품이 되어버린 원숭이 인형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과 엄마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또 다른 자신에게 결국엔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그는 또 다른 세계에 사는 또 다른 자신을 보고 분노한다. 


인간은 오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소중한 무언가가 자신의 손에서 떠나갔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소중했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핍'이 소중함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플래시 역시 자신의 엄마를 사랑하고, 또 다른 자신 역시 어머니를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엄마를 사랑하는 감정은 전혀 다를 것이다. 각자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릴 때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의 머리카락은 엄마를 닮아서 직모이다. 그만큼 뻣뻣하고 머리가 일정 길이로 자라기 전까지는 옆으로 위로 자라는 정말 뻣뻣한 머리다. 그 때 나의 아버지께서는 말씀해 주셨다. 


"주변에서 직모인 친구들은 특이하게 내 머리를 부러워했어. 나는 반곱슬이어서 숱이 많고 굵은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부러워 했고···."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마음이란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하곤 하지. 그래서 부럽거나 질투나거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사태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면 좋단다. 


내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하고 정리해 봐. 아버지도 시간이 걸렸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온전히 바라보고 굳이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 나 자신을 찾게 되었단다."


결국 자신의 무모한 '선택'으로 새롭게 탄생한 세계를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플래시는 세계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고자 한다. 그리고 엄마가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를 찾아간다. 사랑하는 엄마를 끌어안고 자신이 성장한 엄마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엄마보다 더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 뒤 플래시는 원래 세계로 돌아온다.

 

우리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지나온 시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아쉬운 순간들을 바꾸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을 바꾼다고 정말 내가 원하는 '새로운 나의 모습'이 되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뒤바뀐 세계의 배트맨이 플래시에게 말한다. 


"나는 부모님을 잃고 그 고통으로 지금의 내가 됐다. 어쩌면 그게 내 전부일지도 몰라. 난 평생 '과거를 바로잡으려' 애썼어. 마치 망토를 두르고 범죄와 싸우면 부모님이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야···." 


지나온 슬픔과 기쁨이 있었으므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그 어떤 작은 기억들조차 의미없고 쓸모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라고 하는 것은 그냥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필요하고 세계는 수 많은 존재들의 '인과 관계'들이 섞여서 비로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안의 존재라는 것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이다. 


과거는 바로잡아야 하는 게 아니다. 과거는 현재의 우리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이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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