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를까?
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았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스파이더맨은 (물론 모든 히어로가 그렇지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다. 많은 영웅들이 그렇듯 처음 힘이 생겼을 때는 감정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었고, 많은 영웅들에 비해 아직 자기 자신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는 어린 나이이기에 특히 영웅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히어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최상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영웅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단한 영웅인데 왜 나는 MCU의 스파이더맨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스파이더맨: 홈 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의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엄청난 고통으로 온몸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만큼의 정신적 고통은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가학적인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모든 영웅들이 딛고 일어서야 할 내적인 고통이 역대 스파이더맨들에 비해서 그에게는 뒤따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1대 스파이더맨인 '토비 맥과이어'와 2대 스파이더맨인 '앤드류 가필드'는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숙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두 스파이더맨에게 숙부의 존재는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엄청난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게 해준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톰에게도 '아이언 맨'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존재했지만, 함께 전장을 해쳐나가다 목숨을 잃었지만, 스파이더맨의 상징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메시지를 느끼게 해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일상과 영웅으로서의 삶이 바쁘다. 거기다 두 삶의 교차와 그것을 통한 갈등, 외로움 등 엄청난 고뇌를 하는 존재이지만 역시나 <파 프롬 홈>까지는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없었 다. 그의 옆에는 아름다운 숙모님이 있었고, 자신의 정체를 아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어벤져스'라는 엄청난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로움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순간이 없었다.
스파이더맨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자 한다. 그래서 커다란 리스크인 닥터 스트레인지와의 대립까지 행하며 자신의 잘못으로 세계를 넘어온 뒤틀린 악당들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착오였고 결국 자신의 판단 때문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주던 숙모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숙모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그건 도덕적 사명이 아니야. 너에게는 큰 재능이 있고, 큰 힘이 있어. 그리고 큰 힘에는 언제나 큰 책임이 따른단다."
이미 정체가 드러나 버린 피터는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오는 경찰들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사망한 메이 숙모를 두고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톰의 스파이더맨은 바뀌기 시작한다. 내적 고통을 통해 성장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학교 옥상에서 멀티버스의 선배 스파이더맨들을 만날 때의 모습 역시 지금까지의 가벼운 스파이더맨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톰은 지금까지의 보여주었던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처절함과 분노를 느낀다. 선배 스파이더맨들 역시 똑같이 고통을 경험하면서 성장해왔다. 2002년부터 스파이더맨과 함께한 관객들은 그들이 '친절한 이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분노와 증오심을 견디지 못해 과오를 저질렀을 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훌륭한 작품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그것을 보는 이들의 마음 속에 무언가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만든다. 세 명의 상처 입은 다른 세계의 자기 자신이자 영웅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모든 시리즈를 함께하며 <스파이더맨> 사랑해 왔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톰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분노를 위해' 고블린을 죽이고자 한다. 그리고 톰을 토비가 막아 섰을 때 토비의 눈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선배 스파이더맨들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너는 절대로 나처럼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달라는 눈빛이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대로 저지르려던 살인은 막았지만 앞선 자신의 과오를 통해 발생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 세계를 멸망시킬 멀티버스간 차원의 통로를 보고 스파이더맨은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세상이 붕괴한다면 모든 존재들의 기억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워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피터 파커는 모든 존재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일상을 되찾고 네드와 MJ를 찾아간 톰. 그녀가 작지만 상처 입은 모습을 보게 되고 피터는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돌아선다.
이로써 피터는 더 이상 '어벤져스'의 도움도 없고, 사랑하던 '메이 숙모'도 없고, 삶을 공유할 '친구들'도 잃고 아무것도 없는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문장이 남아있으며 진정으로 '친절한 이웃'이 되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많은 재능을 타고 태어난다. 엄청난 재능으로 세계에 기여할 수도 있고, 별것 아닐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중에 만나게 될 사랑하는 사람, 태어나게 될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좋게 작용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 힘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 것이고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