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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by 리좀

그토록 오랜 시간 네 곁을 지나갔어도

한 번도 눈길 주지 않았다

꽃과 초록을 잃고 앙상하게

차가운 계절 길가에 서있는 네게

한 번도 마음 주지 않았다

수피에 사무친 외로움이

굳은살 되어 떨어져 나가도록

외롭게 떨며 온기를 기다릴 때도

나는 네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삭막한 도시의 그늘을 쏘다니다

젊음을 다 흘려보내고

어둡게 웅크리며 숨어든

정원의 고요를 수없이 통과한 후

어깨를 누르듯 무겁게 내려앉는

어느 봄 햇살 아래에서

생때같은 잎사귀 하나하나 떨구며

추운 겨울 눈바람을 이겨낸

네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파아란 눈물 몰래 훔치며

뜨거운 선혈로 새잎을 틔우는

너의 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계절만을 쉼 없이 오가느라

굴곡진 너의 계절 너의 이야기

한 번도 귀 기울이지 못한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 가눌 길 없어

고개 떨군 나에게

너는 태연하게 굽어보며 말했다

보고도 보지 못한 채

네 곁을 오가던 수많은 시간 동안

언제나 그랬듯이

변함없이 그랬듯이

괜찮다고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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