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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보석이와 함께 한 보석 같은 시간

by 리좀 Mar 06. 2025

  보석이가 스무 살이 된다. 그것은 내가 늙어버린 것보다 더 믿기 힘든 사실이다. 보석이는 내게 있어 일종의 걸어 다니는 역사다. 표정 하나하나, 손 끝 하나하나에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한 가지 표정은 현재만을 말하고 있지 않고, 작은 움직임도 20년을 길게 관통하는 흐름이 된다. 가슴을 꽉 메우는 이 얼얼한 느낌이 희미해져 가는 기억과 함께 흩어질까 두려워진 건 스무 살과 보석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철커덕 맞닥뜨렸을 때였다. 그리고, 그제야 보석이에 대한 나의 기억을 기록하기로 했다. 아주 어릴 때 육아일기를 쓰다 만적 외엔 보석이에 대한 기록은 사진첩 속에서밖에 찾을 길이 없다. 사진은 가장 명증한 무엇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나의 사실이 아니다. 

  보석이를 곁에서 가장 오랫동안 본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은 사실이나 객관이 아니라 보석이와 나 사이에서 탄생하고 자라난 각양각색의 움직임이다. 그것은 색깔이나, 향기, 풍경 같은 것이기도 하고 감정이나 사유이기도 하다. 보석이는 나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주었고, 나 또한 보석이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보석이로 인해 내 인생의 좌표가 움직였고, 보석이가 자신의 좌표를 만들어 가는데 나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가장 근접하고 친밀한, 결정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변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내가 보석이를 키웠지만 실상은 보석이가 나를 성숙시켰다. 자식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 되는 이유이다. 

  보석이의 말간 눈동자 속에서 우주를 발견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의 어떤 시간과 공간에도 속하지 않는 영원성이 보석이의 눈에 담겨 있었다. 마치 신이 일생에 단 한번 영원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았다.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고 무언가에 집중한 것도 아닌 빈틈 사이로 잠깐이지만 우주와 생명의 비밀이 새어 나온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그 생생함을 조야하나마 언어라는 얼개로 교직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느낌이 비록 착각이나 환상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생생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실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밝혀낼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보석이와 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때론 사소하고 때론 심오한, 생동하는 움직임들이다. 그 생동성은 때로 구름이 되기도 하고, 천둥이 되기도 하고 시냇물이 되기도 하고 망망대해가 되기도 한다. 나와 보석이는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자유롭게 유영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감정의 수위가 제한선에 근접하게 찰방거린다. 시간의 속도도 편차가 심하게 불연속적으로 흘러간다. 살풋한 긴장이 미세하게 흐르는 위로 기대와 흥분이 엇갈리기도 하고, 감각과 기억을 담은 편린의 일부가 제멋대로 튀어나와 듣도 보도 못한 춤을 추기도 한다. 한참 후에야 글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않을 때 비로소 글과 얽힐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에게든 보석이 같은 존재는 있을 것이다. 글로 보석이와 함께 한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보석이의 마음과 혹은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본다. 보석이라는 공통점으로 마음은 글이 되고 글은 또 다른 마음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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