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엄마가 13시 온대서 12시에 아이와 파리 도망 나갔다가 밤에 돌아왔다
나는 ‘참 착한 딸’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이쁘다 착하다 해주셨고
수퍼 아줌마는 내가 소풍 갈 때마다 플렉스 해주셨다.
두 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낮잠을 잘 때는 엄마 등 뒤에 가서 누우면서
동생을 꼭 껴안아주라고 했다고 한다.
커가면서 부모에게 어리광도 거의 부리지 않고
사춘기로 엄마 아빠를 골치 아프게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질량보존의 법칙이란 것,
요놈 요거… 만만하지 않다.
저 도도한 것의 직격탄을 피해갈 도리가 없었다.
돌고 돌더라도 반드시 찾아와서 질량값을 채운다.
10대에 거치지 못한 통과의례는
40대에 더 길고 매운맛의 관문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경우이다.
복리에 복리가 붙어 청구서가 무겁다. 캄캄하다.
별 도리 없다.
마흔에 저놈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호라,
이리저리 패대기질을 당하다 정신이 번쩍든다.
그러나 여전히
온 몸으로 그 파도를 다 받아내고있는 것이
헉헉대는 현실이다.
이때,
사춘기의 환영이
사십춘기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끄질고가면서
내가 내게 말한다.
“중년의 니 면상, 왜 그 모양이지?
오늘도 네 작은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내던데, 뭐하자는거니? 십년을 액받이하더니 입만 떼면 독설이지?
당장 폭력을 멈춰야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저놈보다 더 심각한 유죄야.
우유부단한 엄마로 이도저도 못하던 십년을 지나
이제 너는 나쁜 엄마의 길로 들어가려는거니?
당장 멈춰!
아이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너까지 보태면
아이는 절망할거야.”
STOP!
오늘도 나는,
내가, 내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지난 십 년 또 지난 사십 년
당한 것 경험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지만
히스테리적인 나의 이 브랜뉴한것도 분명한 폭력이다.
선명한 모양새가 드러나면서
이 관문은 이제 박제되어 버렸다.
더 이상 펄떡펄떡 활어의 형태가 아니다
이제 이문을 열고 나갈 때가 온 듯하다.
이렇게 겨우 관문의 반대쪽, 출구까지 와낸 듯하다.
10대에 열고 닫았어야 했던 그 문과 문을
반백을 코 앞에 두고 겨우 겨우 여기까지 온 듯하다.
하지만 그 십 년을 내 딸아이가 함께 해 왔다.
이 나의 혹독한 시련기가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어린 시절
착한 장녀라는 마법에 갇힌 엄마를 둔
똑같은 마법에 걸려서 착한 장녀로 살아온 아이적내가
오늘도
착한 내 딸아이에게.
독설과 가시돋힌 말을 했다.
그러고보면,
‘네 아빠 닮았네’는
착한장녀였던 엄마의 엄마가 세월의 직격탄을 맞고
내게 한번씩 한 말인데.. 그말을 요즘 내가 똑같이 하네
미안하다
많이 미안하다 엄마가..
오늘도 미안할 짓을해서 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