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낸다
프랑스 국영 2번 채널
일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정오 12시까지
3시간 30분 동안
종교 방송을 틀어줍니다.
7개의 종교가 연이어 쭉 나옵니다.
제목: Les Chemins de la foi
레 슈망 드 라 푸와
믿음의 길
1. Sagesses Bouddhistes 불교
8h30-8h45
2. Islam 이슬람교
8h45-9h15
3. A l'origine, Berechit 유대교
9 h15 - 9 h30
4. Orthodoxie 그리스정교
9h30-10h (격주)
5. Chrétiens Orientaux 동방정교
9h30-10h(격주)
6. Présence Protestante 개신교
10h-10 h30
7. Le Jour du Seigneur 가톨릭
10h30-12h
아무래도 프랑스다 보니 주변에 성당이 많아서 한 번씩 미사를 갑니다.
점심을 미리 만들어 놓지 못하는 날은
그냥 아침 먹고
아침 먹은 거 치우고
점심 만들고
점심 먹은 거 치우고
이러면서 정오까지
들리는대로 듣습니다
오늘은 점심을 10시에 완성시켜서 미사를 한 번 가보려고 합니다.
놀고 있는 아이를 보니 아직 잠옷 입고 있네요..
9시에 아침 먹을 때부터 씻어라 옷 입어라 머리 빗어라.. 했는데
점심 만드느라 신경을 못 썼더니, 아주 그냥 티가 확 나네요.
10시 30분인데 저 인간은 아직 자네요
나는 어제 자기 자는 시간에 일어나
소풍 먹을거리 만들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하루종일 동선이 동일했는데..
아주 숙면을 취하네요
그래, 네가 운전했다.. 더 자라 푹 자라
어제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장장 아홉 시간을 외출했어요
거기다 추가로 잠을 쭉 연결해서 못 자네요.
요즘 이상하게 새벽 3시 20분, 5시 몇 분, 6시 몇 분 이런 식으로 계속 잠이 깨서..
7시경에 일어나서 미사가 시작하는 오전 11시까지 네 시간이 지난 상태인데도
벌써 피곤한 느낌이 드네요.
그렇게 11시 미사는 시작이 되었는데,
미사전례 진행 순서와 미사곡이 적혀있는 플라이어가 없네요.
아니, 너무 절약하는 건 좋지만.. 저 것도 없으면 난 어쩌나요?
성경에 보면
한 어머니가 아픈 아들의 병상을 끌고 와서는
예수님에게 직진하는,
정말이지.. 막 들이대는 그런 장면이 있는데..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맨 앞 줄로 갔습니다.
뭔가 저 무대뽀 엄마처럼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나봐요.
부족한 부모 만나서
고생한다 싶어서
교회에서라도 좋은 자리 앉혀서
사랑 은혜 축복 그 무엇이든
충전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근데
종이쪼가리도 없고
미사곡 가사도 모르겠고
신부님이 뭐라고 중얼중얼 말씀하시는데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튕튕 튕겨져 나갑니다
현타가 옵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대망의 영성체 시간이네요
아이가 너무나 궁금해하는
신부님이 탁탁 잘라서 나눠주는
그 빵 맛
나는 아무런 맛도 들어있지 않다고 했지만
자신은 친구들과 그 맛을 상상해 봤는데
분명히 감자칩 맛과 비슷할 거라고 거의 확신하네요
뭔가 납작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예수님의 몸 예수님의 피,라고 하시네요
슬슬 시동 걸리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제게 한 마디만 하소서..
제가 다 나으리로다...
아이와 손을 잡고 줄을 섭니다.
오른손바닥 위에 왼손바닥을 겹쳐 올리고
준비 완료합니다.
신부님 두 분 중에서
저는 마이클조던 스타일의 신부님 줄에 있었더라고요.
키가 거의 190 정도에 몸무게는 100킬로는 족히 나가 보이는
40대의 아프리카 출신인 듯 보이네요.
워낙 신부님들이 랜덤으로 돌아가며 미사에 오시고
그리고 나도 랜덤으로 오다 안 오다 해서
누가 누군지 이름도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 편합니다.
그렇게 성체를 받아 모시고
또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제게 한 마디만 주소서..
제가 다 나으리로다...
하..
눈물이 확 치밀어 오르더니
왼쪽에서 한번 또로롱
오른쪽에서 한번 주르르
그리고 양쪽에서 줄줄줄
흘러내립니다.
일단 눈을 뜨지 않고
목도리를 휴지 삼아
왼쪽 한번
오른쪽 한번
그리고 전체적으로 꾹꾹
이제 눈을 떠도
흉한 꼴은 안 보이겠다 싶어요.
아....
가사도 모르겠는 미사곡은
이제 드디어 끝을 향해 달려가는군요.
정말 나도 딸아이랑 함께 부르고 싶은데..
나도 여기에 소속감 느끼고 살고 싶은데...
끝까지 입 한번 뻥끗거리지 못하고 가다니..
나도 노래 부르는 거 겁나 좋아하는데..
노래하는 곳에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다니...
종교생활도 결국은 정신줄 잡아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미사가 11시에 시작하면 적어도 10분 전에는 도착해야 저 종이를 획득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실은 우리 뒷 줄 모녀가 한 사람에 한 장씩 가지고 있었어요.
심지어 보지도 않고 모든 미사곡을 다 외우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종이 쪼가리에 눈빛을 쏘는 나를 보지 못할 정도로
그녀들은 그야말로 빠져있었습니다.
황홀경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딱히 달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뭐.. 나도 이제 다음 주에 미사 갈 이유가 생겼네요.
내일을 맞지 못하는 이에겐 안식과..
월요일이든 일요일이든 그 어떤 변화에도 무감각해진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 그에겐 마음의 평화...
모든 형태의 아픔을 홀로 삼키며
오늘 어둠의 터널을 지나느라
내일을 꿈꾸지 않는 이에겐 회복을..
허락하소서
살려주세요
손을 놓지 마세요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벗을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미처 올리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기도에도 귀 기울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