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라! 삶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

나에게 달려들어라!

2024년 3월 31일 부활절주일


부활절이지 오늘?


뭐가 생각나?

쇼콜라랑 토끼랑!


미사 후에 달걀 아니면 초콜릿 줄 거야.

정말?


그렇겠지? 한국에선 보통 달걀을 주는 데.. 확실히는 모르겠네

나도 모르겠네..


그럼 고르기 놀이해볼까?

응!


1. 달걀 2.쇼콜라 3.둘다있다 4. 둘다없다.

몇 번 고를래?

3번!




부활절 일요일 오전과 하루 전 토요일. 시청에서는 달걀 찾기 행사를 준비한다. 오전 10시에서 정오까지 동네 공원은 부활절 토끼들과 곳곳에 숨어있는 달걀을 찾기 위해 모인 어린이와 부모들로 북적인다.


토요일 오전 10시에는 아이의 영어수업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이다. 오전 11시면 마치니까 바로 공원에 갈 수 있었지만 제이는 아이와 도서관으로 가서 게임을 한 시간하고 집으로 왔다.


아이는 부활절 당일 일요일에도 공원에 가지 못했다. 토끼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고 달걀 찾기를 하지 못했다. 제이는 부활절 오전에 집을 나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요일에 갔다가 다음날 월요일에 돌아올 거라고 했다. 전날 분명히 내 의견을 밝혔지만 그는 내 신호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또 모든 것을 잊었을 거라 생각했으리라. 여느 때처럼 아이를 늦지 않게 준비시키고 가방까지 다 챙겨 두었을 것이라 기대하며 눈을 뜨고 일층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오고 가고 6시간 거리이다.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갈 곳이 두 곳이다. 엄마집. 아빠집.


올해 부활절에 갑자기 그곳에 가기로 결정된 이유를 알 것 같다. 잘 안다. 수용하지 않는다. 예의가 없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예스라고 하지 말라, 안그럼 당신 마음에 병이 생길 것이라고 한 마담 방쌍의 말이 내 결정에 한 몫했다. 든든한 정신적 지원군.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큰 죄책감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을지. 거절하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 세월이 어느덧 십 년이다. 무질서하고 감정 과잉의 그곳을 방문해서 며칠을 보내고 흙탕물이 이제야 좀 가라앉아 진정되던 참이다. 겨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빨리 가자고 종용하는 아빠에게 아이는 이번에는 안 따라가겠다 한다. 오후에 갔다가 내일 바로 와야 하는데, 피곤할 것 같다 한다. 나를 의식하는 것 같다. 아빠를 따라가라, 할머니집에도 가고 할아버지집에도 갔다 와라고는 했지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아이는 바로 알아차려버린다.


유교정신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나는 60대 그들을 공경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십 년이다. 낮고 조용하게, 미안해 이번에는 못가겠어,라고 말했다. 이곳이 프랑스 맞냐며 소리를 지르고 집안의 모든 문들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현관문을 쎄게 닫고 떠나버렸다. 혼자서. 핏덩이를 기다리며 단장하고 있을 엄마에게로.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감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교회에 도착한다.


담배 냄새에 쩔어있는 그의 자동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우리에겐 두 다리가 있다.


내게 두 다리가 있다는 것을 그의 부재로 깨닫게 된다.



10년 만에 처음이다. 부활절에 교회 온 것이, 부활절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것이.


마음이 무겁지만 또 한 없이 가볍다.



오늘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다. 거의가 가족단위인 것 같다. 오늘 특히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세례식도 있고 꽤 길다. 11시에 시작한 미사가 12시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한국에서도 성당이나 교회를 꾸준히 나가보지 않아서 부활절 행사를 어떻게 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교회에서는 달걀을 줬던 것 같은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다.


슈퍼가 열려있다. 폐점시간은 13시라고 적혀있다. 12시 45분.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초콜릿 천지다. 아이가 하나를 골랐다. 슈퍼쏘닉 은색 메탈릭 포장지로 부케꽃처럼 부풀려 과장된 것 하나를 고른다.



엄마. 집에 가면 정원에서 초콜릿 찾기를 할 거야. 부활절 토끼들이 벌써 왔다 갔을 거야! 빨리 가자.


손에 든 슈퍼쏘닉 초콜릿 상자를 흔들며 신나게 걸어가는 아이에게 미안하다.


정원 그 어디에도 달걀은 없을 거야




제이가 돌아왔다. 초콜릿을 들고.


봉투가 두 개다. 그의 엄마에게서 받은 것은 유명 초콜릿 장인의 이름을 앞세운 쇼콜라티에의 것이다. 색과 크기가 절제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토끼쇼콜라, 꼬꼬닭쇼콜라, 병아리쇼콜라, 달걀쇼콜라...


또 하나에는 나보다 겨우 네 살 많은 부인을 둔 그의 아빠에게서 받은 슈퍼마켓에서 산 저렴하지만 알록달록한 달걀초콜릿이 가득 들어있는 달걀바구니, 킨더달걀초콜릿들 그리고 커다란 핑크토끼초콜릿이 들어있다.




요즘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 개의 키워드가 머릿속에서 돌림노래처럼 소용돌이친다.


전통 문화 뿌리


가족.. 유려한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족.. 지지기반이 터무니없이 약하다면?


너무나 상투적이지만, 내가 전통의 뿌리를 내리고 문화를 만들고 이것이 계승되어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놓아야 한다.로 생각은 이어진다.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느껴보지 못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없는 것을 만들어 내고, 바람이 불어도 지켜내고 땅이 꺼져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하는 그 전통과 문화에 대한 열망, 결국은 뿌리를 내리고 땅심을 기르고 싶다는 그 갈망이 내 안에 있다.




2024년 3월 31일


부활절 달걀을 품어 줄 정원이 있었다.

부활절 달걀을 주렁주렁 매달 나무가 있었다.

부활절 달걀 찾기를 하며 풀밭을 달리고 싶어 하던 아이도 있었다.


전통을 이어가는 엄마는 없었다.

몰랐다. 익숙하지 않았다.라는 핑계만 있었다.



아이는 정원을 돌아다니며, 나뭇가지 위 풀 속 화단 옆을 뛰어다니며 오색빛깔 달걀을 찾아다니며 꿈꿀 수 있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할 수 있었다. 내가 그 기회를 안 준 걸까. 앗아간 걸까. 못 준 걸까.



기존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도대체 나는 어떤 전통을 만들어가고자 했던 것일까.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내린 뿌리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



오만함이 깃털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내 몸의 껍질을 모두 벗겨내서라도

털어버려야 한다.

들어내야 한다.

뽑아내야 한다.


내 입에서 한 올의 오물이라도 나온다면,

내 오장육부를 다 뒤집어서라도

닦아내야 한다.

씻어내야 한다.

토해내야 한다.


죽음이 죽음에서 끝나지 않도록.

삶이 삶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지독하게 고독하게 살아내야 한다

지독하게 고독하게 죽어내야 한다


나에게 이르기 위해

나에게 닿기 위해서


오늘,

내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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