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오전 7시가 좀 넘었을 것이다. 살짝 찌푸려지는 미간을 이불로 덮고 다시 잠을 청한다. 옅은 음식 냄새, 그리고 또 한 번 쟁그랑쟁그랑 그릇 소리, 물소리… ‘이건 자장가다. 아무렴, 자장가지.’ 몸을 반대로 뒤집고 깨지 않으려고 주문을 외운다. 조용해진다. 작은 인기척이 느껴지지만 참을만하다.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진다. 즐거운 꿈을 꾸지도, 가위에 눌리지도 않는 기절 같은 잠이다.
아침 9시 반, 알람이 울린다.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침구를 정돈하고 방에서 나온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TV를 보고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알은체를 한다. 아침은 잘 챙겨 먹었는지, 메뉴는 뭐였는지, 소들은 괜찮은지 소소하고 일상적인 짧은 대화 후 그는 헬스복을 챙겨 나간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면서 세수를 마친다. 보통은 욕실 청소를 겸한 긴 샤워를 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어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 좋아하는 곡들을 처댄다. 말 그대로 ‘처댄’다. 박자고 음정이고 엉망이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혼자 있을 때가 아니면 피아노를 칠 일은 없다. 학창 시절에는 교내합창대회나 교회에서 반주도 하고 비올라나 클래식기타, 드럼을 연주하기도 했다. 악기 다루기라면 꽤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들어도 소음공해에 가깝거니와 남자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다.
음표와 쉼표 사이로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평소와 다르게 뭔가 급박하다. 악보를 접고 CCTV를 켠다. 아니나 다를까 송아지 한 마리가 우리 밖으로 나와 있다. 38선을 사이에 둔 이산가족처럼 송아지도 어미 소도 애가 달아 울고 있다.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송아지가 나왔어. 1번 카메라 확인해 봐.”
다시 카메라를 돌려본다. 우리를 벗어난 어린 송아지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다른 방 소가 옆의 소를 올라탄다. 인공 수정 시기가 된 것이다.* 확대해서 귀표 번호를 적어둔다.** 시계를 보니 11시 반이다. 곧 남자가 돌아와 송아지를 어미 곁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다.
그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처음 만났다.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한 학년이 두 반뿐인 사립초등학교였지만, 그는 5학년 때 전학해 온 나와 한 반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다른 동창의 여자 친구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로 10여 년간 ‘좋은 느낌의 동창생’이었던 그 남자는 지금 나의 남편이 되어있다. 그런데 그 ‘남편’이라는 당연한 호칭이 그리 달갑지 않다. 오랫동안 동갑내기 친구였기 때문인지, 결혼 후에도 역할이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여하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딱히 마땅한 호칭이 없어 남편이라 불러야 할 때면 어김없이 끝맛이 시금털털했다. ‘남자’는 한 여자의 남편이나 애인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니까 그를 남자로 부르기로 하겠다.
우리는 여느 부부들처럼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행하거나 정해진 절차를 밟아가며 살고 있지는 않은데 사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백 명의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은 백 가지의 다른 인생인 것이 당연할 테니까. 나는 자칭 개인주의자다. 개인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이 있겠지만, 그 근간은 나와 상대방이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사람의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데도 기어이 누군가를 바꾸려 들거나 그의 삶에 간섭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태도는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개인주의자는 기호나 성향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할 수는 있지만,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꼰대질은 하지 않는 부류일 것이다.
전체주의에 비견할 공동체주의로 나나 내 가족을 재단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경험상 그런 행동이 그들 자신의 개인 콤플렉스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여하튼 그들의 비난이나 오지랖은 주로 나처럼 반작용이 없는, ‘그래, 너에게는 너의 생각이 있고 그걸 말할 자유가 있어.’라고 생각하는, 개인주의자를 향해 쏟아진다. 남자의 성격은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근거 없는 비난을 결코 감수하지 않는다. ‘바로바로 시정한다!’가 그의 신조다. 얼핏 보면 너무 다혈질로 보이지만, 누군가 자신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사실 냉정하리만큼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다. 외양이 다른 개인주의자 둘이 만나 공동체로 연대하고 있는 것이 우리 부부다.
남자는 돌아오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송아지를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그가 씻는 동안 점심으로 가볍게 양배추와 당근을 넣은 카레볶음밥과 달걀국을 준비한다. 금방 뚝딱 한 상이 차려진다. 채소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재료이므로 항상 세척 후 소분해 냉장고에 넣어둔다. 남자가 좋아하는 밑반찬류는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두니 시간이 단축되기도 하지만, 점심 준비로 10분은 꽤 여유 있는 시간이다. 사실 독신일 때는 음식을 공들여 차려 먹을 시간도 없었고 거의 밖에서 해결하기 일쑤였다. 어쩌다 쉬는 날 집에서 요리한대도 음식물 쓰레기가 부담스러웠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재료와 노동으로 맛있게 먹을 궁리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좋다면 그와의 식사는 언제나 유쾌하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맛있게 먹는 태도로 완성된다. 식사를 즐겁게 반기고, 그 맛을 음미하며, 수고한 손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는 법이다. 그는 그 묘미를 안다.
* 가축의 번식이나 품종 개량을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채취한 수컷의 정액을 암컷의 생식기 안에 주입하여 수정시키는 일.
** 가축의 임자를 밝히기 위하여 가축의 귀에 다는 표지. 이표(耳標), 이어마크(earmark)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