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면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조개 고추장찌개가 생각난다. 조선호박과 맛조개를 넣고, 고추장과 미원, 다시다만으로 간단하게 끓여주시던 찌개는 들큼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어릴 적 나는 할아버지와 자주 갯벌에 나갔다. 할아버지는 70이 넘으셔서도 제부도 앞바다를 누비며 조개를 캐셨다. 주말이면 삽과 자루를 들고 갯벌로 향했지만, 사실 어릴 땐 가기 싫어 울기도 했었다. 개흙에 무릎까지 빠져 몇 번이고 할아버지가 나를 꺼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가 잡던 조개는 요즘 흔히 보이는 맛소금으로 잡는 맛조개와는 달랐다. 새벽부터 갯벌로 나가 동이 트는 시간까지 손으로 직접 구멍을 찾아야 했다. 도랑을 건너고, 갯벌에 발이 베여 쓰라렸던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갯벌에서 조개의 구멍을 찾는 데 능숙하셨다. 발뒤꿈치로 갯벌을 눌러 맛구멍을 찾고, 삽으로 깊이 파서 조개를 잡아내셨다. 나는 흉내를 내보려 했지만, 할아버지의 숙련된 손길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렇게 잡은 조개는 무거운 자루에 가득 담겼고,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의 손길이 더해졌다. 할머니는 조개를 깨끗이 씻어 소금 한 됫박으로 해감을 하셨다. 그리고 전날 잡아둔 바지락이나 참맛조개를 까서 냉동실에 널찍이 펴 보관하셨다. 그 조개는 찌개든 볶음이든 어떤 요리에 들어가도 환상적인 맛을 냈다.
특히 조개찌개는 가족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였다. 저녁이면 아버지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셨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밥상은 늘 간소했다. 나물 몇 가지와 조개찌개, 계란 프라이 정도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그 소박함 속에는 가족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보내드리러 고향으로 향했다. 정겨웠던 장외리,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어느새 이름 모를 무당의 당집이 되어 있었다. 누나와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읍내 서신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맛조개 고추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읍내 구석진 곳에서 찌개를 파는 식당을 발견했다. 자연스레 이끌리듯 그곳으로 들어갔다. 주문한 찌개가 나오자, 우리는 서로 말없이 그릇을 앞에 두고 밥을 먹었다. 조개와 국물을 음미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음식이란 그런 것 같다. 누군가와 나눈 따뜻한 한 끼는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 맛있는 음식은 순간 혀에 남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은 마음에 남는다.
그날의 찌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 그리운 추억,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