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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욱 Nov 28. 2024

할머니와 파래

파래와 함께한 어린 시절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 중 하나는 단연 파래였다.


내가 기억하는 파래는 지금의 매생이나 감태와 가장 흡사하다.


봄이면 할머니와 아버지는 파래를 뜯어 오곤 하셨다.


그 모습은 지금 서울에서 흔히 보는 널찍하고 거친 식감의 파래와는 전혀 달랐다.


수로에서의 파래 뜯기


자세한 모습은 흐릿하지만, 할머니가 가끔 이야기해 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수로 쪽,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그곳에서


할머니와 아버지는 봄이면 파래를 한 소쿠리씩 뜯어 오셨다.


서울에 와서 마트에서 식재료를 살 때 놀랐던 것은 야채 가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맛도 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선한 야채의 맛


우리는 야채가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땅에서 막 뜯어낸 햇상추나 시금치, 쪽파의 맛은


마트에서 사 먹는 야채와는 다르다. 뭐랄까, 단맛이 더 난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강했다.


야채를 수확하자마자 비타민이 파괴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더 많은 과학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 그 깊이까지 공부해보진 않았지만,


만약 텃밭에서 직접 야채를 수확해 먹어본 적이 있다면 나의 말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에서 만난 파래 무침


서울 생활 중 또 놀랐던 것은 백반집에서 나온 파래 무침이었다.


식초가 들어간 파래 무침을 처음 먹었을 때 정말 화들짝 놀랐다.


새콤달콤한 그 맛은 내가 어린 시절 먹던 파래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파래 무침은 조선간장과 쪽파 정도만 넣어서 간단하게 무쳐주시곤 했다.


처음 입에 넣으면 바다의 짭짤한 맛과 약간의 기분 좋은 쓴맛이 느껴졌다.


그 쓴맛은 밥과 함께 먹으면 묘하게 끌리는 맛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하고 차분해졌다.


한 젓가락 가득 입에 털어 넣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맛이었다.


지금은 내가 직접 요리하지 않으면 그 맛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다.


무 싱건지 국물과 파래


또 기억나는 것은 무 싱건지나 짠지 국물에 파래를 풀어 먹던 것이다.


싱건지 국물에 파래와 청양고추를 넣고 하루 이틀 냉장고에 두었다가 먹으면,


시원하고 얼큰한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짠지를 여러 번 물에 담가 국물을 이용해 만든 파래 냉국은 해장용으로도 그만이었다.


스무 살 무렵,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사발로 두 그릇씩 거뜬히 마셨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와의 추억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밭일을 하셨고, 아버지와 함께 파래를 뜯으러 나가시곤 했다.


말라비틀어진 할머니의 손을 보며 나는 늘


 "할머니, 그냥 사 드세요. 그거 얼마나 한다고 아직도 밭에 나가시고 바다에 나가세요?"라고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 아니면 이런 거 구경이나 하겠냐!" 하시며 호호호 웃으셨다.


할머니가 남긴 맛과 기억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할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할머니가 없으니 그 맛을 떠올리며 추억만 할 뿐, 재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파래는 나에게 할머니와의 추억이다.


그 시절의 파래 무침과 싱건지 국물에 파래를 풀어 먹던 그 맛,


그 모든 것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파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나의 어린 시절과 할머니의 기억이다.


아버지 손 나의 손 할머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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