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잡을 때면,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오직 칼날과 잘려나가는 재료의 단면에만 집중하게 되거든요. 몇 시간이고 그렇게 칼질에만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칼이 무서운 도구라는 생각이 희미해집니다.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어느 순간 칼이 더 이상 조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착각마저 들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칼은 꼭 “정신 차려!”라고 말하듯, 살짝 제 손가락 끝을 베어내곤 합니다. 그 작은 상처 하나가 저를 다시 겸손하게 만들고, 칼 앞에서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줘요. 오늘도 마찬가지였어요. 자만심에 빠져 있던 제게 칼은 또다시 날카로운 경고를 던진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정적인 삶도 칼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게 평온하다고 해서 너무 안심하고 살다 보면, 삶 역시 어느 순간 날을 세우고 우리의 마음을 아플 만큼 찌를 수도 있거든요. 마치 “나, 언제든 너를 상처 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해요.
결국 칼이든 삶이든, 익숙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가장 편안해 보이는 순간에도, 익숙하고 친근한 도구 앞에서도,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해요. 그런 마음가짐을 놓지 않을 때, 진짜 평온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