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인문학을 좋아하고, 그 토대가 역사나 정치라는 사실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정치 뉴스는 늘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별다른 의견을 갖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러니 시대와 사건을 마주할 때도 특별히 할 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계엄’이라는 단어가 불현듯 내 귓가를 울렸다. 직접 겪어본 적도 없고, 사전에나 나올 법한 낯선 용어였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그날의 공기는 낯설 만큼 진지하고, 사소한 농담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로 짓눌려 있었다. 마치 그 순간, 평소엔 관심을 두지 않던 역사의 한 장면이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 밤 충동적으로 현장 주변을 찾아갔다. 솔직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고작해야 사람들의 움직임을 멀리서 지켜보는 정도였지만, 그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스스로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나는 발걸음을 되돌리며 어쩐지 허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주말마다 이어지는 집회에 조용히 나가보았다. 특별한 주장을 외치지도, 손에 피켓을 들지도 않았지만, 군중의 목소리에 몸을 맡긴 채 흐름을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깨달았다. 사람들은 단지 정치적 이념이나 당파를 넘어,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불편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불편함은 나처럼 정치에 무심했던 이들의 마음에도 파문을 일으켰다. 비록 여전히 전문적인 지식이나 명확한 입장을 갖추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제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현실을 바라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아마도 이 경험은, 내가 소극적으로나마 사회의 한 단면을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젊은 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번을 계기로 사회문제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나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시대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이고,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 모든 움직임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기보다, 그저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등장하든, 어떤 사건이 찾아오든, 이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지켜볼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단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일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이 지나,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하루가 조금 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기를, 나는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