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을 자는 사람

나는 겨울에 사라지고, 봄에 다시 시작된다

by 역마자

작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차분히 시간을 되돌려 보면, 3월까지의 기억은 희미하다.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는 흔적도, 특별히 성과라 부를 만한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삶 전체가 잠시 멈춰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 겨울은 늘 그런 계절이다. 면역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감기와 기침이 오래간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은 이미 지쳐 있고, 해야 할 일 앞에서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날이 늘어난다.


작년 초도 마찬가지였다. 계획은 잔뜩 세워두었지만, 실행은 번번이 다음 주로 미뤄졌다. 운동도, 공부도, 새로운 시도도 모두 ‘몸이 좀 나아지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삶에 대한 욕심 자체가 옅어진다. 잘 살고 싶은 마음보다, 그냥 버티는 게 목표가 되는 시기. 그런데 신기하게도, 봄은 늘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4월이 되자 몸이 먼저 깨어났다. 갑자기 아침이 덜 괴롭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또다시 11월까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작년에도 그랬다. 갑자기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고, 새로운 일에 손을 댔다. 사람을 만나고, 학원을 등록하고, 시험을 보고, 글을 쓰고, 계획을 실행했다.
“요즘 왜 이렇게 바쁘세요?”

라는 말을 들을 만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나조차 설명할 수 없었지만, 늘 같은 패턴이었다.


예전에는 이 리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나는 꾸준하지 못할까. 왜 남들처럼 사계절을 같은 속도로 살지 못할까. 겨울의 나는 늘 봄과 여름의 나에게 미안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어쩌면 나는 ‘항상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쉬어야 다시 달릴 수 있는 사람’ 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무기력은 결함이 아니라,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는 목표를 세울 때도 조금 달라졌다. 무조건 거창하게, 전력 질주하듯 살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내가 오래 마음에 품어온 것들을 하나씩 현실로 옮겨보고 싶다.


올해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보조출연이다. 주연도, 조연도 아닌 자리에서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다. 카메라 뒤의 공기,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이름 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다. 어쩌면 내 인생의 또 다른 단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개인 사업도 조심스럽게 시작해보고 싶다. 대단한 성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작지만 내 이름으로 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 실패하더라도, ‘시도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


올해도 아마 겨울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무기력해지고, 다시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고 싶다. 사라지는 계절이 아니라, 준비하는 계절로.


나는 겨울에 사라지고, 봄에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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