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영준이 엄마로만 대해줬던 고마운 사람들

by 은나무


22년도 9월.

영준이가 15살 중2병에 한참 걸려 있었다.


나 역시 온갖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있었다.


<불안장애, 우울, 수면장애, 공황>


어릴 적부터 쌓여온 상처 입은 내면의 내가 결혼을

하고, 재혼가정에서 남의 아이와 내 아이를 키우며

부딪혔던 심적 스트레스, 시어머니와의 갈등,

사회적 상황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뒤엉켜 나를 정서적으로 힘들게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하며 상담소를 통해 나를 포함해 가족 기질검사 등도 함께 받았다.


그때 상담소장님과 면담을 하던 중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소장님 저는 제가 어릴 때 자라온 환경과 성인이 되어서도 막살아온 삶이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 이유인 거 같아 늘 죄책감이 들어요… 특히 영준이는

새엄마라는 걸 알고 만나서 더 조심스러워야 했는데

저는 버릇을 고친다며 아이와 기싸움을 하고 활발한

성격의 영준이를 너무 나댄다고 기를 누르고 고집을

꺾으려고 했어요….


훈육을 핑계로 험한 욕도 하고 아이에게 손을 들기도 했죠…. 저로 인해서 영준이가 받은 상처가 걱정되고

저처럼 엇나가 힘든 사춘기를 보내게 될까 걱정이 돼요 마음 한편은 너무 미안하고 아픈데 반대로 지금도 아이를 보면 밉고 화날 때가 많아요…. 제가 너무 못난 거 맞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느새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미안했던 감정과 나도 힘들었던 순간들이

겹치고 있었다.


-영준이 어머니.

어머니는 훌륭하세요.

무엇보다 영준이에게 엄마가 되어 주셨잖아요.

어머님이 안 계셨다면 영준이는 엄마가 없는 아이로

살아야 했어요.

영준이 어머님은 영준이가 힘들고 미웠을 때도 있지만 영준이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셨잖아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영준이 곁에서 엄마로 계셔 준 것만으로도 훌륭하신 거예요. 남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이에요. 내가 낳은 아이도 힘들어서 상담 많이 오세요.

힘내세요.


그리고…. 영준이 성향이 누군가 단호하게 가르쳐주고 방방 올라올 때 눌러줘야 하는 게 맞아요..

기질 검사상 영준이는 조절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분노조절 같은 걸 하지 못해서 끝까지 가게 돼요. 아무도 말리지 못할 때까지 가게

되면 그땐 더 힘드니 그동안 잘하신 거예요.

그 역할을 아빠가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빠 기질도 그 역할을 하시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라

엄마가 하실 수밖에 없으셨겠죠…


라고 말씀을 하셨다.

친정엄마나 친한 친구 아니면 모두들 나를 색안경 끼고계모 타이틀을 바탕으로 본다. 그 눈치 때문에 작은애도 마음껏 애정 표현 못하고 지냈던 아픈 마음이 눈 녹듯 내려앉았다.


“영준이에게 엄마가 되어주셨잖아요. “


라는 그 말이 그때 어찌나 가슴이 메어지던지 내가

전부 잘못한 것만 같아 자책만 하고 있던 내게 , 영준이도 내가 아니었다면 엄마 없이 자랐을 거라는 위로가 아니라 담담히 상담을 받는 그 시간이 너무 벅찼다.


그리고 소장님은 내게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하는 훈육방식과 아이들을 바르게 양육하는 방법, 가정 안에서 엄마, 아내의 역할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시며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자녀 양육, 부부상담까지 받은 우리는 좀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나와 같은 중2병 아이들을 둔 동지 엄마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수원 살던 영준이 어릴 적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을 만났다.


내게 새엄마라는 선입견을 드러내지 않고 나를 편하게 맞아주었던 고마웠던 엄마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그간의 근황들을 물으며 10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해 가는 우리의 모습이 놀라울 만큼 반가웠다.


우리 넷은 신기하게도 아들들 엄마다.

세명은 아들 둘 엄마들이고 한 명만 아들 하나 딸하나.

아무튼 우리는 모두 15살 중2 남자아이들 엄마다.


아이들의 근황을 들으며 서로 각 가정의 이야기들에

한창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 언니가 나에게 조심히 물어본다.

-영준이 잘 지내지? 내가 영준이 한테 미안한 게 있어.


-네? 언니 영준이 잘 지내죠~ 승효도 잘 지내죠?

그때 언니 고생 많았죠? 우리 영준이 돌봐 주느라 고생 많았어요. 승효가 영준이랑 그래도 잘 놀아 줘서 제가 더 고마웠죠.


-아니 나는,

영준이 엄마가 왜 그렇게 영준이 한테 엄격하게 대했나 생각했었어. 규칙이나 이런 걸 엄격히 지켰잖아.

엄하게도 했고 너무 무섭게 키우는 거 아닌가 영준이 걱정도 처음엔 조금 했었어.

근데 내가 그때 3개월 동안 영준이 봐줄 때 알겠더라.

영준이 엄마가 새엄마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준이 감당 못하겠더라.


사실 영준이 내가 그때 많이 혼냈어.

영준이가 엄마한테 말 안 했어? 나 그때 영준이 봐주는 것도 내가 힘들어서 3개월만 하고 그만한 거야.

나중에 영준이 한테 승효 엄마가 미안했다고 전해줘~

영준엄마 고생 많았지?. 지금은 애들 사춘기라 또 힘들 텐데 요즘은 어때?


그때 막 결혼하고 미용실을 오픈하고 싶어서 동네에

작은 미용실을 계약했다.

영준이 하원 후가 문제였는데 마침 승효 엄마가 시간

알바를 했으면 하고 있었고, 승효엄마에게 영준이

태권도 하원 후 2시간만 돌봄을 요청했었다.

승효와 영준이가 친구고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태권도도 같이 다녀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일일 수고비와 간식도 챙겨 드렸다.

저녁은 남편이 퇴근하면서 챙겨 먹이면 돼서 6시부터 8시까지 부탁해서 주 5일간 3개월 영준이를 돌봐 주었다.


승효 엄마는 3개월 뒤 몸이 힘들어서 영준이 돌봄이

어렵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영준이는 승효네서 3개월만 돌봄을 받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오랜만에 만난 승효 엄마가 내게 고생했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찡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엄마로서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영준이 엄마로 버텨낼 수 있었던 거 같다.


우리를 가족으로 엮은 일도 우연이 아니듯이 그 과정을 힘들어도 버티며 살아낼 수 있도록 우리 곁에 늘 응원의 메시지도 있었다.


이 시간 누군가 우리 가정처럼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위로와 격려를 주고 싶다.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고….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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