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이혼하는 거보다는 내가 영준이 데려다 키워주마! 그래도 중학교는 여기 화성 시골중학교에서 보내는 거보다 그쪽이 나으니 초등학교 때까지만 내가 봐주는 걸로 하는 게 좋겠다. 어미 너는 이제 다시는 가정을 깨니 이혼을 하니 마니 그런 소리는 입에 담지 말거라.
-네 어머니. 영준이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영준이도 할머니 댁으로 자유를 꿈꾸며 호기롭게 전학을 갔다.
주말마다 교회를 갔다가 만나면 영준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애가 꼬질꼬질한 것이 씻고나 다니는 건지 도대체 말이 안 나왔다. 얼굴은 하얗게 텄고 머리는 지저분하게 눌려있고 옷도 꼬질꼬질한 것이 진짜 누가 봐도 엄마 없는 애 그 자체였다.
속으로 속이 상해 눈물이 났지만 금방 마음이 약해질 수 없었다.
-송영준! 너 맨날 샤워 안 하니? 머리가 그게 뭐야? 언제 감았어! 할머니 댁에 있으면서 엄마 잔소리 없으니까 아주 씻지도 않고 다니는 거야?
-어미야 안 씻긴 왜 안 씻냐! 엊그제 씻었다. 겨울인데 이틀에 한 번만 씻어도 되지 뭐 그러냐.
-어머니 그래도 애가 얼굴이 하얗게 터서 다니잖아요. 로션이라도 잘 챙겨 발라주세요.
-지가 안 바른다고 난리야.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니아들.
-어머니 손자예요.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속으로 영준이 모습을 보면 속이 상했지만 어머니도 한번 겪어 보셔야 아실 거라 생각했기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남편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영준이 1년만 있다 데려오자.
-응? 중학교 때까지 맡기자며.
-애 꼴을 봐. 지금 한 달도 안 됐는데 애가 지금 멀쩡해 보여? 어머니가 절대 신경 못쓰셔. 어머니 본인 챙기시기도 힘드신데 영준이를 어떻게 키우셔.
-그럼 왜 보낸 거야?
-어머니도 영준이도 하도 내 맘도 몰라주고 서로 그러니까 한번 살아보라고 그런 거지. 둘 다 한번 살아봐야 알 거 아냐.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고 어머니도 나한테 맡기는 게 맞는구나 하실 거고 영준이도 엄마 아빠랑
사는 게 편하고 좋은지 알 거야.
-나는 자기가 영준이 미워서 그런 줄 알고 조금 서운했어. 그래도 영재도 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었지.
-내가 영준이를 왜 미워해. 얄미운 건 있어도 내가 키운다고 했는데 책임을 져야지. 지금도 할머니네 보낸 거 애한테 안 좋은 거 알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어머니도 영준이도 알아야 할거 같아서.
당신한테 미안해 속상했지? 그래도 우리 맘 아파도 1년만 참아보자.
-그랬구나. 알았어. 난 당신 뜻에 따르지. 고마워
그렇게 우리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기야, 오늘도 엄마가 전화 와서 영준이 데려가라고 난리야. 말 안 듣는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아니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러셔. 이제 겨우 한 달 지났는데. 거봐 애기 때랑 다르지 영준이가 보통애야?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와서 일을 못해.
니 새끼 왜 나한테 떠넘겼냐고 당장에 데려가라. 혈압 올라 쓰러진다. 난리야. 영준이가 이제 엄마말을 아예 안 듣고 무시하나 봐. 밥도 안 먹고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하루종일 게임만 하나 봐
-안돼 그래도 더 있어야지. 어머니 지금 데려 오면 또 그러실 거야.
어느 날 어머님께 내게도 전화가 왔다.
-어미야, 니아들 데려가라.
나는 늙어서 이제 힘이 없다. 영준이가 말을 당최 듣지를 않는다. 맨날 반찬투정하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게임만 하고 도대체가 미치겠다.
내가 미안하다. 네가 고생이 많았겠다. 엄마 아빠가 키워야 맞는 거지 할머니랑 있으니 둘 다 힘들어 죽겠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저한테 사랑으로 키우라고 하셨잖아요. 어머니말 잘 들었다면서요. 어머니도 사랑으로 키워 주세요. 저는 지금 영재하나 키우기도 힘들어요.
시어머니는 이제 나한테 까지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아버지 기일에 시댁에서 모두 모인 날 나의 지랄 맞은 성격을 모두에게 드러낸 사건이 일어났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시어머니께 영준이 담임선생님이 전화 오셨는데 영준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때렸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한차례 더 큰 사건이 있었고 어머니는 우리를 대신해 학교에 찾아가 사과를 하고 해결하신 일이 있었는데 이날 하필 영준이가 학교에서 또 친구를 때리고 온 것이다.
어머니와 영준이는 나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봐 숨기려 했는데 담임 선생님의 전화로 인해 그전 사건까지 다 알게 되었다. 나는 조용히 영준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손만 안 들었지 나의 민낯을 단단히 드러내는 험한 욕설과 폭발한 화는 문밖에 있는 시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에게 그대로 실체가 드러났다.
시아버지 기일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 쌓여있던 내 마음의 응어리는 사실 영준이가 아니라 가족들에게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지랄 맞은 며느리가 되었다. 남편 또한 그동안 기센 여자들 가운데 순한 사람 만나서 좋다고 했는데 착각이었다고 알고 보니 그중 제일 센 여자가 나라고 했다.
어머니도 더 이상 내게 잔소리와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물론 맘에 들지 않으시거나 하실 때 얼굴 표정이 굳으시긴 하셨으나 굳이 내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대로 할 말은 하고 예의는 갖추고 살았다. 어머니는 점점 더 남편에게 영준이를 데려가라 날마다 전화를 하셨고 성화에 못 이긴 남편은 결국
-자기야 나 엄마 때문에 하루가 너무 힘들어.
도대체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어 일 년을 버티기 힘들 거 같아. 엄마가 다시는 간섭 안 하고 자기한테 잘한데.
영준이 그만 데려오자. 응? 내가 죽을 거 같아.
엄마가 하루종일 전화하고 내가 영준이 한테 말해도 말을 안 들어 그 자식이. 자기밖에 없어. 응?
-흠….. 이제 겨우 6개월인데…..
그래! 당신이 일을 못할 정도면 안되지. 어머니한테 단단히 약속받아. 다시는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그리고 영준이 양육 문제도 마찬가지야 알았지?
-응응 엄마가 그렇게 하신대. 나한테 이미 약속했어.
다신 안 그러신대.
-알았어 대신 나도 당신한테 조건이 있어!
내가 그동안 힘들었던 거, 그리고 앞으로 또 내가 고생할 거 당신도 겪어봐서 알지?
-어어 그럼 알지 알아 당신 같은 여자가 어딨어.
다들 학을 떼고 떠났잖아 며느리들이.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앞으로 당신이랑 영재 영준이 잘 키울 거고 어머니한테도 할 말은 할 거지만 도리는 다 하는 며느리로 살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래서 뭔데 빨리 말해 뭐가 이리 길어
-나 모닝 타고 다니기 싫어!! 무서워!!
나 아반떼로 차 바꿔줘~!!!!!!!
-그래! 지금 그게 문제냐! 아반떼사라사!! 영준이 데려온다고 당장 전화 드릴게!! 고마워 여보~